[반도체 정보戰] 글로벌 기업들, 민감 사안 ‘공란’ 처리…美 다음 노림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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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기자
입력 2021-11-0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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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상무부, 강경 자세서 한발 물러났지만…방대한 DB 갖출 전망

  • 자국 내 ‘일관생산체제’ 구축 속도…또 정보 제출 요구할 수도

“자발적 설문에 응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 다른 수단을 검토하겠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이 지난 9월 23일(현지시간) 열린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의 화상회의에서 참석 기업들에게 정보 제출을 요구하면서 꺼내든 엄포 아닌 엄포다. 8일(현지시간) 정보 제출 시한이 도래하면서 최종 자료를 받아든 백악관이 다음 어떤 작업에 돌입할지 전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당시 회의에서 러몬도 장관은 ‘자발적 설문’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국방물자생산법(DPA) 적용까지 언급했다. DPA는1950년 6·25전쟁 당시 제정된 미국 법률로,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연방 정부에 주요 산업에 대한 직접 통제 권한을 부여한다. 대다수 반도체 기업들은 사실상 거부할 수 없는 ‘강제적 설문’에 응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설문조사 항목은 기업으로선 매우 민감한 고객사 정보와 반도체 재고, 주문, 판매 등 기업의 내부 정보를 망라한 26가지 문항으로 돼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칩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다만 미 상무부는 처음의 강경한 자세에서 한발 물러나, 고객사 정보의 경우 자동차용, 휴대전화용, 컴퓨터용 등 산업별 자료를 제출할 수 있도록 양해했다. 이런 분위기 덕에 이번에 자료를 제출한 다수의 기업들은 ‘일반인 비공개’와 ‘공개’ 중 비공개 정보 제출을 택했다. 고객사 정보도 공란으로 비워두거나 “밝힐 수 없다”며 사실상 정보 보이콧을 하기도 했다. 미국의 압박도 무시할 수 없지만,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고객사 정보 공개에 따른 소송 등 후폭풍을 우려한 탓이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이번에 획득한 각 기업의 정보를 바탕으로 방대한 ‘반도체 데이터베이스(DB)’를 갖출 수 있을 전망이다. 이를 통해 갈수록 상황이 심각해지는 자국 내 반도체 수급 차질 상황 해결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미국 정부는 그동안 강조해온 ‘자국 내 일관생산체제 구축’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6월 반도체 공급망 재편 보고서를 공개,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점차 배제하고 미국 내 일관생산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이를 위한 방법론으로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자 △미국 내 제조기반 확충 △동맹국과의 협력 강화 △대중국 제재 강화 등을 제시했다.

이미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과 연구소를 상대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R&D에 사활을 걸고 있다. 또한 미국 내 제조기반 확충을 위해 삼성전자, TSMC 등을 상대로 ‘적극적인 투자’를 강조하고 있다. 그 대가로 투자를 결정한 글로벌 기업에게는 엄청난 규모의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당근으로 제시하고 있다. 중국을 배제하는 동시에 동맹국과의 협력 강화 제스처는 최근 열린 G20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등 14개국 정상과 첫 공급망 회의를 주재하면서 여실히 드러났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이번에 획득한 정보를 당장은 후방산업 영향력이 큰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문제 해결에 활용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중국 견제 카드로 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보 제출 요구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존 정보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계속 정보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반도체 리딩 기업으로선 미국에 제출한 정보가 인텔 등 미국 기업에 흘러들어갈 것을 우려한다.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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