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설 | 기본·원칙·상식] 재판소원, 4심제가 아니라 '헌법의 마지막 문'이다 — 이강국 전 헌재소장의 고언

확정판결 이후에도 기본권은 보호받아야 한다

헌법은 선언이 아니라 작동하는 규범이어야 한다. 종이 위의 문장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지키는 살아 있는 기준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의 구조적 공백을 안고 있었다. 법원의 확정판결은 원칙적으로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이는 사법 안정성과 최고법원으로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장치였다. 하지만 38년이 지난 지금, 그 장치가 과연 국민 기본권 보호에 충분한지에 대한 질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 논쟁의 한가운데에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이 서 있다. 그는 1988년 헌법재판소법 제정 당시 재판소원 도입에 반대했던 입장이었음을 밝히며, 이제는 그 판단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모두 지낸 인사의 성찰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는 제도 변경을 넘어, 사법 체계의 본질을 다시 묻는 문제 제기다.
 

재판소원은 무엇을 다루는가

재판소원을 둘러싼 오해는 ‘4심제’라는 표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재판소원이 지향하는 것은 사실관계를 다시 판단하거나 증거를 재평가하는 절차가 아니다. 확정판결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했는지를 심사하는 헌법적 통제 장치다.
 

재판소원은 판결의 타당성을 다시 따지는 절차가 아니라, 그 판결이 헌법 질서에 합치하는지를 묻는 절차다. 이 차이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논쟁은 공허한 구호에 머물 수밖에 없다.

선진국은 어떻게 운용하는가

미국은 별도의 헌법재판소를 두지 않지만, 연방대법원이 위헌심사권을 행사하며 헌법 해석의 최종 권위를 가진다. 다만 그 문은 무제한으로 열려 있지 않다. 사건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고, 엄격한 요건을 통해 헌법적 쟁점만을 다룬다. 핵심은 최종심의 권위를 유지하면서도 헌법적 통제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럽 다수 국가는 헌법재판소 제도를 통해 기본권 보호의 통로를 명확히 마련하고 있다. 스페인의 암파로(Amparo) 제도는 공권력 작용이 기본권을 침해했는지를 헌법적 관점에서 심사하는 대표적 사례다. 독일 역시 헌법소원을 통해 확정판결에 대한 기본권 침해 여부를 심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 인용률은 매우 낮다. 이는 제도가 남용되기 때문이 아니라, 엄격한 적법요건과 필터링 절차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례들이 시사하는 바는 단순하다. 선진 법치국가들은 최고법원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헌법적 통제의 안전장치를 병행한다는 점이다.

한국형 재판소원, 무엇이 전제되어야 하는가

재판소원 도입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설계 방식이다. 제도는 열정이 아니라 절제로 완성된다.

첫째, 심사 범위는 기본권 침해로 엄격히 한정되어야 한다. 사실오인이나 단순한 법령 해석의 다툼까지 허용한다면 4심제 우려는 현실이 된다. 재판소원이 헌법 위반 여부만을 다루는 절차임을 법률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둘째, 적법요건과 중대성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모든 확정판결을 헌법재판소가 다시 들여다보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중대한 기본권 침해, 헌법적 의미가 분명한 사안에 한해 심리하도록 요건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사전심사와 각하 절차 역시 엄격히 운영되어야 한다.
 

셋째, 사법부 전체의 기본권 감수성을 높이는 방향이어야 한다. 재판소원은 대법원의 권위를 약화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모든 법원이 판결 단계에서 헌법적 기준을 더욱 충실히 검토하도록 하는 촉진제가 되어야 한다. 이는 사법의 헌법화를 심화시키는 계기여야지, 기관 간 권한 다툼으로 비화되어서는 안 된다.

 

최고법원성과 헌법재판권의 경계
 

대법원이 최고법원이라는 명제는 사법부 내부의 최고성을 의미한다. 반면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별도로 부여한 권한에 기초해 존재한다. 헌법재판은 사법권의 하위 절차가 아니라, 헌법 질서 수호를 위한 독립된 통제 장치다.
 

재판소원은 이 두 권한의 경계를 재정립하는 문제다. 설계가 섬세하지 못하면 기관 간 갈등이 상시화될 수 있다. 그러나 설계가 정교하다면 오히려 권력 균형과 상호 견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열광이 아니라 숙고의 문제

재판소원은 정치적 유불리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 기본권 보호의 최후 안전망을 둘 것인가의 문제다. 동시에 사법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은 과거 재판소원 도입을 반대했던 자신의 입장을 돌아보며, 이제는 우리도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법관과 헌재소장을 모두 경험한 인사의 발언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사법 체계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읽힌다.
 

재판소원은 4심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기본권 구제의 문이 닫힌 상태로 남아서도 안 된다. 좁고 엄격한 문으로 설계하되, 헌법이 필요로 하는 순간에는 반드시 열릴 수 있는 문이어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공화국의 길이다. 그리고 선진 법치국가가 보여준 절제의 지혜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이 11일 대법원 최종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재판소원 도입을 담은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여당 주도로 처리된 데 대해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이 11일 대법원 최종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재판소원) 도입을 담은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여당 주도로 처리된 데 대해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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