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민간(대기업) 주도의 ‘납품단가 현실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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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범 기자
입력 2018-04-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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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최전남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남성기전 대표)

[최전남 중기중앙회 부회장.]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표방했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되어 간다. 새 정부는 그동안 중소기업청을 장관급이 지휘하는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시켜 정책 컨트롤타워를 마련하고, 기술보증기금과 같은 산하기관 이전을 통해 정부지원 일원화를 추진했다.

또한 일자리창출의 원천인 중소기업을 청년일자리의 핵심으로도 내세웠다. 지난해 말 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중소기업 일자리는 32만개가 늘어난 반면 대기업 일자리는 9만개 줄었다. 이를 감안한 듯 정부는 수조원이 들어가는 특단의 일자리대책을 중소기업 중심으로 쏟아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말처럼 중소기업은 ‘소중기업(소중한 기업)’으로 자리잡는 듯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현실의 중소기업은 성장원동력을 잃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여기에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과 같은 노동정책의 급격한 변화도 한몫을 했겠지만, 이는 전적으로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 국내 중소제조업체의 41.9%는 수탁기업이며, 이들 매출액의 80% 이상이 모기업에서 나온다. 비정상적으로 치우친 구조에서 발생하는 수·위탁기업 간 협상력의 차이는 ‘납품단가 후려치기’라는 문제를 낳았다.

물론 과거 연 9%의 고도 성장기에는 협력중소기업도 수출대기업의 성장효과를 나눠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쳐 한국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수요 독점적 위치의 대기업은 국내협력사의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방식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과거 낙수효과는 사라지고, 오히려 빨대효과라는 부작용만 강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납품단가 후려치기는 한국경제에 있어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전형적인 예다. 단기적으로 대기업은 눈앞의 이익을 늘리고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노력한 만큼의 제값을 받지 못한 중소 협력업체는 기술개발, 생산혁신, 인력채용 등의 성장 여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일어나고 있다. 선박부품업체 A대표는 “거래처가 최저가를 써낸 업체 1위부터 3위까지 물량을 주겠다는 경쟁 입찰을 실시한 뒤, 선정된 3곳에 동일하게 가장 낮은(1위) 최저가를 적용했다. 지난해 두 차례나 20~30% 낮은 단가로 납품했다”고 하소연했다.

원단 생산 업체 B대표는 “원부자재와 인건비는 계속 상승하는데 20년 전과 같은 단가에 납품하는 곳들이 있다. 지역별 단가가 다를 수 있는데 일부 단가가 낮은 지역 수준으로 맞춰달라고도 요구한다. 당장 문닫을 수 없어 빚을 내 운영 중”이라며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지난 5일 정부와 여당이 발표한 ‘중소기업 납품단가 현실화방안’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이번 방안에는 공공부문의 납품단가 현실화 대책과 함께 그동안 중소기업계가 요구해왔던 표준하도급계약서 개선과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도 적용범위 확대 등이 포함돼 있어 일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납품단가 현실화의 핵심이 민간부문인 만큼 이번 공공부문 납품단가 현실화의 온기가 민간부문으로 확산되도록 하려는 대기업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의지가 요구된다. 특히 법과 제도적 접근만으로는 근본적인 납품단가 후려치기 근절에 한계가 있으므로 민간이 주도하는 자율상생협약을 활성화시켜 최저임금 등 공급원가 인상분을 반영하고 최저가 낙찰제를 지양하는 등 공정원가를 인정하는 문화자체가 조성돼야 할 것이다.

민간 주도의 ‘납품단가 현실화’는 대·중소기업 간 상생의 길이자 한국경제 선순환의 밑거름이다. 제값을 받은 협력업체는 부품기술력 확보와 원가절감을 통해 자체경쟁력을 갖추고, 대기업은 높아진 협력사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그날이 빠른 시일 안에 도래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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