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 26대 서울대 총장]
87년 체제에서 계속되는 대통령의 불행
가족에서 대통령으로 번진 권력형 비리
탄핵으로 두 번 대통령 파면과 구속수감
5년 단임제에서 5번의 평화적 정권교체
파탄 난 87년 헌법을 넘어 제7공화국헌법
대통령 직선에서 의원내각제는 불가능
단원제의 경솔 극복할 양원제 절실
중앙권력의 지방이양으로 지방분권
1987년 헌법은 1948년 제헌헌법 이후 10번째 헌법이다. 39년간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명멸해 간 헌법은 한국 헌정사의 굴곡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이승만과 박정희의 장기집권은 민주화를 가로막았다. 87년 헌법의 핵심은 대통령 직선제와 더불어 5년 단임제다.
1988년 이후 9번째 대통령이 재임 중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0년 ‘서울의 봄’을 무참하게 짓밟은 5·18 광주의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김영삼 대통령 재임 중 제정한 5·18특별법으로 전두환과 영어의 몸이 되었다. 김영삼의 개혁정치는 국민적 호응을 얻었다. 금융시장을 정상화한 금융실명제와 군사정권의 유물인 하나회의 척결로 문민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임기 말에 터진 IMF 구제금융으로 모든 개혁의 효과가 허망하게 무너졌다. 게다가 호가호위하던 아들의 구속으로 개혁정치의 명분까지 상실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의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5·16 설계자인 김종필과 진보·보수 대통합으로 정치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여소야대 국회에도 불구하고 DJP연합의 위력으로 IMF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정치적 통합의 길을 열었다. 하지만 세 아들이 구속되는 참화를 감내해야 했다. 이회창 후보를 물리치고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상고 출신 법조인인 노무현 대통령은 서민정치시대를 열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가 추구한 새정치는 기성정치의 반대에 직면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헌법상 제도에 터 잡은 정치, 정당국가 원리에 입각한 정치가 아니라 정치는 여전히 대통령의 개인기에 의존한다. 김영삼의 문민정부, 김대중의 국민의정부,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추구한 개혁정치도 이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노태우의 민주자유당은 김영삼의 신한국당으로 변신하였다. 정권교체의 위업을 달성한 새청치국민회의도 김대중의 새천년민주당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새천년민주당으로 당선되었지만 총선 목전에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였다. 신구 세력 간에 정치적 갈등이 표출된 결과다. 지지부진하던 열린우리당은 대통령의 의도적 도발로 볼 수 있는 공개적인 지지 선언에 따라 여당의 분열로 이어졌다. 새천년민주당 잔존세력과 야당인 한나라당이 합세하여 전대미문의 대통령 탄핵소추에 이르렀다. 무모한 탄핵소추는 오히려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압도적 승리와 새천년민주당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여의도에 소위 ‘탄돌이’ 전성시대를 구가하게 된다. 새천년민주당 잔존세력은 그 후 회한과 오욕으로 지리멸렬해갔다.
범여권 내부의 갈등과 이합집산으로 인기가 고갈된 노무현 정부는 결국 한나라당의 이명박 정부가 탄생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샐러리맨 신화를 등에 업고 서울시장 재임 중 청계천 복원을 이루어 낸 이명박은 단숨에 대통령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여권 내 제2인자인 박근혜 대표와의 갈등은 새로운 대통령상을 요구받았다. 게다가 10년에 걸친 권좌에서 내몰린 야당의 파상공세는 취임 후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노무현 정부는 여권 내 한·미 FTA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행하여 한·미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하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김영삼·김대중이 아들들 때문에 치욕을 겪었다면 노무현과 이명박은 재임 중 형들로 인해 수모를 겪었다. 결국 ‘만사 형(兄)통’이라는 비아냥거림 속에 임기 말 형들이 구속되는 불행을 자초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에 대한 향수는 ‘대통령의 딸’ 박근혜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하는 국가에서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례는 외국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박근혜는 대통령의 딸일 뿐만 아니라 ‘선거의 여왕’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선거 과정에서 얼굴에 자상(刺傷) 테러를 당하고도 ‘대전은요!’라는 명언으로 선거판을 흔들었다. 하지만 밀실정치·폐쇄정치·비선정치에 총선 공천 과정에서 당대표의 ‘옥쇄파동’을 거치면서 민심이반으로 이어졌다. 정치적 혼돈 과정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세력은 야당과 결탁하여 탄핵소추를 강행했다. 노무현과 박근혜의 탄핵소추가 다 같이 여권 내부의 분열로 비롯되었다. 하지만 노무현의 탄핵소추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된 것과 달리 박근혜는 인용 및 파면 결정으로 최초로 임기를 마치지 못한 대통령이 되었다. 탄핵 이후 구속 수감된 박근혜는 특검의 ‘경제공동체 이론’의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만 6·3 지방선거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박근혜의 정치적 부활은 대구시장 선거에서 김부겸의 패배로 귀결되었다.
세 번째 정권교체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탄핵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국민을 통합하는 데 실패했다. 야당은 탄핵당한 세력이라는 상처를 씻어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노무현의 비서실장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공화국으로 인한 노무현의 비극을 교훈 삼아 소위 검수완박(檢搜完剝) 정책을 펼쳤다. 고향 봉하마을에 칩거 중이던 대통령을 대검 중수부로 강제소환한 검찰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재임 중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민심이반을 자초했지만 여대야소 덕분에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임기 말에 이르러 정부 내에 미증유의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정치적 무능으로 이어졌다. 결국 법무장관은 사퇴를 강요당하고 검찰총장은 퇴임 후 몇 달 만에 야당의 대선 후보로 등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치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도리어 정치검사를 대통령으로 옹립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필자는 대선 중 아주경제신문이 주관한 포럼의 기조발제에서 “문명국가에서 전직 검찰총장이 직선 대통령이 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검찰개혁과 헌법, 2021.11.5, 페어몬트 호텔). 하지만 정권교체의 열망에 더하여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50번 넘게 자유를 강조하였다. 민주를 동반하지 않은 자유는 결국 극단적 자유주의로 내닫기 마련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주권주의에 기초하여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한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때부터 여소야대라는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새 대통령은 여소야대를 슬기롭게 타개할 정치적 지혜가 필요했다. 더구나 2024년 총선에서 87년 체제에서 처음으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수를 확보했다. 자매정당인 조국혁신당까지 합치면 더더욱 전무후무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두 개의 국민적 정당성이 병존하는 체제에서 최후의 국민적 선택에 더 많은 정당성을 부여하기 마련이다. 즉 2022년 대선이 아니라 2024년 총선에 무게를 싣게 된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대통령과 국회는 헌법상 제도를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파행을 거듭하였다. 결국 2024년 12·3 비상계엄으로 파국을 맞게 된다(성낙인, 87년 체제의 종언과 제7공화국, 2025).
비상계엄 이후 대통령 탄핵소추,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결정에 따라 박근혜에 이어 윤석열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였다. 문명국가에서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250주년을 맞이한 미국식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사례는 있어도 탄핵된 사례는 없다. 의원내각제가 작동하는 유럽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아니라 총리가 국정의 중심이다. 그러나 총리는 탄핵 이전에 내각불신임으로 물러나기 때문에 탄핵제도는 유명무실하다.
40년에 이르는 한국식 대통령제를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적인 역사적 교훈과 미래를 조망하게 된다, 첫째, 5년 단임제이긴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은 제왕적으로 군림하려 한다. 모든 국민의 눈이 청와대로 향한다. 대통령들은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가능한 한 최대한 행사하려 한다. 여대야소일 때에는 말할 것도 없고 여소야대일 때조차도 마찬가지다. 5년 단임을 애써 눈감고 있다가 임기 말에 이르면 비극적 상황으로 내몰린다. 헌법은 여소야대에서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만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회는 마주 달리는 기차를 쳐다보기만 하고 더욱더 아집에 사로잡힌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옹립해 준 정당을 내버리고 새로 창당함으로써 스스로 정당국가 현상을 애써 외면했다. 정권교체 주기는 보수 10년, 진보 10년, 보수 10년 이후 이제는 채 5년에도 못 미친다. 권불십년이라 했는데 5년 단임제에서 5년도 못 채우고 낙마한다. 임기 말에 두 대통령의 아들들, 두 대통령의 형님들이 구속되었다. 최근에는 가족이 아니라 영부인을 포함하여 두 대통령 자신이 구속되었다. 이를 오로지 정치검찰의 무소불위로 휘두른 검(劍) 탓만 할 수는 없다. 5년도 안 되는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제왕적 권력에 취한 결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임기 초에 남용하는 제왕적 권력은 결국 임기 말에 부메랑이 된다. 제왕적 권력 행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때가 되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헌정회(회장 정대철)가 제시한 권력분산적 대통령제이든 아니면 이미 전 세계적으로 제3의 정부 형태 모델로 인정받는 이원(집)정부제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책임정치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의원내각제가 이상적 모델이다(성낙인, 헌법학 제26판, 381면). 지금쯤은 의원내각제를 도입할 때가 되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대통령 직선을 원한다. 그렇다면 직선 대통령과 직선 국회 사이에 완충적인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내각이 존재해야 한다. 즉 의회의 신임에 기초한 내각은 의회의 내각불신임권의 대상이 된다.
셋째,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강조한 입법·헹정·사법의 3권 분립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권력분립은 정부 내에서도 작동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내각은 국회와 대통령의 이중의 신임에 기초해야 한다. 국회도 이제 양원제로 가야 한다. 선진 민주국가에서 양원제를 채택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단원제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었다. 이제 의회권력도 ‘나눔의 미학’이 실천되는 장이어야 한다. 단원제 국회의 과격함과 경솔함을 제어할 상원이 필요하다. 상원은 경륜을 갖춘 이성적 인사들의 원로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다만 상하 양원을 합한 의원 숫자는 현행 300인 이하로 하여야 한다. 하원 200명, 상원 100명 정도가 바람직하다.
권력의 민주화는 중앙권력의 민주화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방권력의 민주화도 동시에 요구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초단체장과 광역단체장을 역임한 전무후무한 정치인이므로 지방분권 구현의 적임자다. 지방권력의 민주적 통제는 중앙정부 권한의 대폭적인 이양 이후에 실현되어야 한다. 한국과 같이 단일국가이면서 중앙집권의 폐해가 가장 심각한 프랑스에서도 헌법의 개정으로 국가조직의 지방분권을 명시한다(성낙인, '프랑스의 지방분권 헌법개정', 공법연구(한국공법학회) 54권 1호). 동시에 그간 분리되었던 광역단체는 정보사회에 걸맞게 전남광주특별시와 같이 통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수도권과 규모의 경제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파리2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한국공법학회 회장(2005~2007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2009년 1월~2012년 12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2010~2013년) ▷동아시아연구중심대학협의회 의장 ▷제26대 서울대 총장(2014년 7월~2018년 7월)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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