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 26대 서울대 총장]
1960년 3·15 및 1967년 6·8 선거는 가장 치명적인 부정선거다. 부정선거를 방지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를 헌법상 독립적인 기구로 도입하였지만 부정선거 주장은 끊이지 않았다. 이에 김영삼 정부에서는 1994년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기존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의원 선거법을 통합하여 통합선거법인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을 제정하였다. 법률 명칭에 ‘선거부정 방지’를 명시한 것은 부정으로 얼룩진 선거사를 종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민주화 이후 부정선거가 잠잠해지면서 2005년 공직선거법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른다. 부정선거방지에 법률의 초점을 맞추다 보니 공직선거법은 규제 중심의 법제다. 민주주의의 모국이라 일컫는 영국에서도 한때 부정선거가 논란의 초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영국을 비롯한 선진 각국의 선거법제는 선거운동의 자유로 전환되었다. 반면에 민주주의의 축제가 훼손되는 최고의 적은 바로 금권선거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로 연결된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선거의 자유보다는 선거의 규제법으로 작동한다. 이에 선거운동의 자유는 허울뿐인 명제에 머물고 선거운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규제 일변도로 점철된다. 이를 위해 중앙선관위를 비롯한 각급 선관위는 선거 운동과 관리의 중추기관으로 자리 잡으면서 무소불위의 법해석·법적용·법집행기관으로 작동한다.
'부정선거는 과연 이 땅에서 사라졌는가'라는 질문에 예라고 분명히 대답하기 어렵다. 부정선거는 부실선거와 혼동되기 때문이다. 부정선거 유형 중 상당수는 부실선거와 겹친다. 가장 큰 기준점으로는 고의 여부에 따라 부정과 부실이 갈라진다. 기성세대가 목도한 3·15와 6·8 부정선거에 비추어 보면 작금의 투표용지 부족으로 비롯된 사태는 부실선거다. 그런 점에서 지난 수년 동안 일부에서 주장하는 부정선거론은 배척되어야 한다. 그새 부정선거 주장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2030세대는 생애 처음으로 목도한 총체적 부실선거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들은 부실선거를 치유하기 위해 재선거를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의 부정선거 주장은 부실한 선거관리에 따른 부정선거이지 선거 자체가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부정선거 주장과는 구별된다.
부정선거와 부실선거의 차이를 분명히 가리는 일은 쉽지 않다. 이를테면 부정선거의 전형적인 유형의 대부분인 개표부정, 공개투표, 투표제한, 투표무효화, 부정발표 등이 부실선거 관리에도 해당한다. 바로 그런 점에서 2030세대가 주장하는 ‘부정선거, 재투표’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하여 참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유권자들이 많았다. 이는 곧바로 신성한 주권 침탈의 문제로 귀결된다. 부실한 선거관리는 이미 ‘소쿠리 투표’ 사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부정선거와 재투표 주장에 따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기되어 있다. 또한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쟁송과 당선쟁송도 제기된다. 지방선거에서는 선거주무관청인 선관위원장을 상대로 행정심판의 일종인 선거소청과 당선소청을 제기할 수 있다. 선거의 효력을 다투는 선거쟁송은 일종의 민중소송으로 누구나 제기할 수 있다. 반면에 당선의 효력을 다투는 당선쟁송은 정당 또는 후보자만 제기할 수 있다.
선거쟁송과 관련된 대표적 사례가 2021년 독일 베를린에서 실시된 선거이다. 베를린 헌법재판소와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부실한 관리로 선거의 당락에 영향을 미친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재선거를 실시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사례는 다르지만 선관위에서 당락을 결정한 서울시 비례대표의원선거에서 송파구 미개표 투표함의 개표 결과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1명의 당락이 뒤바뀐 바 있다. 투표함이 완전히 개봉되어 개표가 종료되기 전에 당선인을 확정한 선관위의 경솔한 결정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지방선거에서 당락이 뒤바뀔 가능성은 오로지 쟁송으로 결론이 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방송3사가 오후 6시에 출구조사를 발표한 이후에도 투표용지 부족사태로 인하여 밤 10시까지 진행된 투표의 적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도 필요하다. 특히 비례대표 시·도 및 시·군·구의원 선거에서는 매우 적은 표 차이로 당락이 바뀔 수 있다. 실제로 전국의 상당수 투표구에서 미세한 차이로 당락이 갈라진 사례가 드러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을 수밖에 없다. 공정과 신뢰가 생명인 선관위가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공정에 기대어 대법관과 고위법관으로 작동되는 선관위원장 체제 또한 치명타를 입었다. 사상 처음으로 대법관인 중앙선관위원장과 사무총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했다. 차제에 선거관리의 현실적 대안과 미래지향적 대안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첫째,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적인 기구로 60년 이상 작동한다. 이는 선거관리의 흑역사를 청산하고자 하는 국민적 의지 반영의 결과다. 중앙선관위는 대통령, 국회, 대법원 각 3인 추천으로 구성하고,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헌법 제114조 제2항). 그런데 관례적으로 중앙선관위원장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대법관이, 지방선관위원장은 현직 법관이 담당한다. 현직 법관이 겸직해온 선관위원장은 과중한 재판 업무 때문에 제대로 된 선거관리를 할 수 없다. 헌법상 최고 독립기관의 비상임위원장으로는 선거관리의 총체적 책임자가 되기는 어렵다. 생업을 가진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들에게 상근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실제로 선관위원장은 한 달에 한두 번 잠시 출근한다고 한다. 그런데 제도개혁에 중점을 두어야지 공직자 개인에 대한 마녀사냥식 비판은 자제해야 한다. 유사 이래 작동하던 잘못된 관행을 특정 시점의 특정 개인에 대한 비난만 가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헌법기관장의 부부동반 해외출장은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영부인 단독 출장도 문제가 된 바 있다. 차제에 대통령을 포함한 5부 요인의 해외출장 관행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비상임인 선관위원의 수당 지급 방식도 월별 고정 수당, 사안별 수당, 매회 회의 수당 등이 논쟁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 등 다른 비상임 국가기관의 위원 수당과 비교하여 종합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파행에서 본 바와 같이 한국적 현실에서 합의제 회의체기관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가급적 독임제 행정기관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중앙선관위 이외의 각급 선관위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중앙선관위에는 장관급인 상임위원과 사무총장이 병존한다. 상임위원은 관례적으로 대통령이나 여당이 지명한 위원이 차지한다. 이에 따라 상임위원은 중앙선관위와 정부·여당의 소통창구가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선관위의 선거 법령 및 선거관련 행위의 유권해석은 때로 선거의 방향을 좌우할 수도 있다. 실제로 선관위의 합법·위법에 대한 판단이 여러 차례 정치적 논쟁을 촉발하기도 한다. 이제 선관위법을 개정하여 중앙선관위원장은 대법관이 겸직할 것이 아니라 상임위원장이 되어야 한다. 또한 3인 정도 상임위원제로 정부·여당 몫, 야당 몫을 두어 내부에서 상호견제가 가능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중앙선관위도 명실상부한 최고의 합의제 의결기관으로, 사무처는 위원회를 보좌하는 실무기관으로 작동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도 합의제 의결기관인 중앙선관위를 비롯한 각급 선관위가 전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투표지 인쇄를 몇 %로 할 것인지는 사무총장 산하 실무진에서 결정하였다. 투표용지 부족사태에서도 선관위에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선관위 실무자 또는 지방선관위원장 혼자서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거 당일에도 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원들이 비상대기하지 않았다. 비상임이라도 선거 당일부터 개표완료 시까지는 선관위원은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새로 도입된 사전투표에 대한 불신도 높다. 본투표와 사전투표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갖가지 불신과 부작용을 초래한다. 차제에 사전투표를 폐지하고 본투표를 2일로 늘리자는 안도 제기된다. 그러나 사전투표는 국민편의성을 제고하여 투표율 상승에 효과적이다. 이에 현행 금·토요일 사전투표를 토·일요일로 하는 부분수정안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사전투표지의 우편 이송에 따른 불신은 해결하여야 할 과제다. 사전투표 시에 투표용지는 현장에서 출력한다. 본투표도 현장에서 여분의 투표용지는 직접 출력할 수 있도록 하면 부족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헌법개정을 통하여 현행 선거관리위원회 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현행처럼 헌법상 제3의 독립기관으로 존속하는 한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기관이기주의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선거관리는 전형적인 행정적 집행 업무이다. 따라서 투·개표 등 선거관리 행정 그 자체는 행정부에서 담당하는 게 맞는다. 중앙정부의 내무행정담당부(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담당하면 된다. 독일·영국·미국· 프랑스·일본 등 대부분 주요 국가에서는 투·개표 관리 그 자체는 행정부에서 담당한다. 다만 중앙에 선거와 정치활동 투명성을 위한 기구를 설치하여 정치부패와 정치오염을 방지하는 데 중점을 둔다.
한국처럼 제3의 독립기관으로 중앙선관위를 두고 전국에 시·도 및 시·군·구 선관위를 설치하는 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예외적인 모델이다. 270개에 이르는 각급 선관위원장은 전체 법관의 약 8%가 맡고 있다. 비상임인 법관이 선거관리를 책임질 수 없다. 이제 공무원은 믿어도 좋을 정도로 정치적 중립성과 책임성을 담보하고 있다. 실제로 투·개표 실무는 지금도 공무원들이 담당한다. 선거관리는 지금과 같은 느슨한 자기 통제가 아니라 감사원을 비롯한 외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
이번 사태는 3·15나 6·8 부정선거와는 근본적으로 그 궤를 달리한다. 투표용지 부족에서 비롯된 투표관리 부실뿐만 아니라 개표관리 부실로 이어진 총체적 부실선거다. 주권자의 참정권 행사에서 적법절차 위배는 그 형식과 실질을 불문하고 엄중한 사안이다. 2030 청년들의 참정권 침탈에 대한 항의는 신성한 주권의식의 발로다. 정부·여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차제에 미래 한국을 이끌어갈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국회 국정조사와 특검에서도 공정과 정의의 이름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만 미래 한국의 바람직한 선거관리 시스템을 정립할 수 있다.
▷파리2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한국공법학회 회장(2005~2007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2009년 1월~2012년 12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2010~2013년) ▷동아시아연구중심대학협의회 의장 ▷제26대 서울대 총장(2014년 7월~2018년 7월)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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