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에 빠진 일본 닛산자동차를 둘러싸고 대주주인 프랑스 르노와 주채권은행인 미즈호의 이해 충돌이 표면화됐다. 닛산 주주총회에서 미즈호 출신 사외이사의 재임안이 이례적으로 부결되면서다. 닛산 재건 과정에서 은행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르노가 견제하고 나선 모양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닛산은 23일 요코하마 본사에서 정기 주총을 열고 이반 에스피노사 사장 등 이사 12명의 선임안을 표결에 부쳤다. 이 가운데 미즈호신탁은행 부사장을 지낸 나가이 모토오 사외이사의 재임안만 부결됐다. 일본에서 회사가 제안한 사외이사가 주총에서 부결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발단은 미즈호의 입김이 짙어진 데 있다. 미즈호는 자금 조달을 거듭해 온 닛산의 주채권은행이다. 그런 미즈호 출신 인사를 닛산은 이번 주총에서 한 명 더 늘리려 했다. 기존 나가이 이사에 더해 미즈호 출신 신보 준이치 후보를 새로 올린 것이다. 채권자 측의 사람을 이사회에 더 들이려 하자, 채권자에게 유리하게 흐를 수 있다는 거버넌스 전문가의 우려가 나왔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르노가 칼을 빼든 데는 이유가 있다. 르노는 한때 닛산 지분 43%를 쥔 압도적 대주주로, 닛산 경영진과 보조를 맞춰 왔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지분을 15%까지 줄이며 동맹의 결속을 스스로 느슨하게 풀어 온 터였다. 마침 2002년 맺은 양사 동맹 계약에는 닛산이 올린 이사 선임안에 르노가 찬성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었다. 이 족쇄가 2023년 11월 개정으로 풀렸다. 르노로서는 오랜만에, 그리고 계약상 제약 없이 주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닛케이는 르노가 이번을 영향력을 극대화할 기회로 봤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대주주와 주채권은행의 셈법은 애초에 다르다. 미즈호가 원하는 것은 자금 안정과 채권 회수다. 닛산은 2027년 이후 거액의 회사채 상환을 앞두고 있다. 배당도 3년째 거를 전망이다. 반면 르노가 보는 것은 주가와 배당, 지분 가치다. 현재 닛산 주가는 300엔대로 2019년 말의 절반까지 내려앉았다. 닛케이는 닛산 주식을 단계적으로 팔아 온 르노가 주주로서의 이익 추구를 더 이상 감추지 않게 됐다고 전했다. 오타루상과대학 데지마 나오키 교수는 닛케이에 "위험을 감수해 성과를 높이려는 투자자와 안정적으로 벌어 원금을 돌려받으려는 은행의 발상은 정반대"라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날 주총에는 주주 660명이 참석했고, 한 주주는 "미즈호 출신으로 독립성에 의문이 있는 사람을 이사로 두는 데 반대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두 세력의 충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미즈호가 닛산과 혼다의 경영통합을 밀 때도 르노는 주주 가치를 앞세우며 다른 편에 섰다. 2024년 12월 시작된 두 회사의 통합 협의는 두 달이 못 돼 깨졌는데 닛케이는 당시 르노가 닛산 주식의 가치 극대화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양사는 이후 북미 생산과 소프트웨어 등 프로젝트 단위 협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만 닛케이는 미즈호가 닛산과 혼다의 자본 제휴 논의를 다시 끌어내려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업계 관측을 전했다. 미즈호 인사의 부결이 이 구상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주총을 거쳐 닛산 이사회 의장에는 쇼지 아키요시 아사히그룹홀딩스 회장이 올랐다. 에스피노사 사장은 "불투명한 환경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확실히 진전을 이뤄 왔다"며 새 중기 경영계획을 올해 후반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 경영진은 구조조정에 더해 표면으로 드러난 대주주와 주채권은행의 충돌까지 떠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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