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21일 각의(국무회의)에서 향후 주요 정책과 다음 연도 예산 편성 방향을 담은 ‘경제재정 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 이른바 ‘호네부토 방침’을 확정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 출범 이후 처음 마련된 호네부토 방침으로, 2040회계연도까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전략 분야에 민관 합계 370조 엔(약 3362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단년도 기초재정수지 흑자화 목표를 철회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카이치 정부는 이를 통해 ‘책임 있는 적극재정’을 경제·재정 운영의 기조로 공식화하고, 국내 투자를 확대해 실질 1%, 명목 3%를 웃도는 경제성장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다만 정부가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을 견제한다는 논란 속에 장기금리가 급등하자, 원안에 없던 일본은행 독립성 관련 문구를 막판에 추가했다.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AI와 반도체, 양자기술, 차세대 에너지 등 전략 17개 분야의 62개 제품·기술을 대상으로 2040회계연도까지 민관 합계 370조 엔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통상적인 세출과 별도로 ‘강하고 풍요로운 일본’ 투자 예산을 신설하고, 성장 분야에는 여러 해에 걸쳐 예산을 집중적으로 배분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40회계연도 민간 설비투자를 연 250조 엔으로 늘리고,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1100조 엔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재정운영의 목표도 크게 바뀌었다. 그동안 재정건전화의 핵심 지표였던 국가와 지방정부의 기초재정수지, 즉 프라이머리 밸런스(PB)는 단년도 흑자화 목표를 폐기하고 여러 해 단위로 관리하기로 했다. 경기 변동이나 투자 필요에 따라 PB가 일시적으로 악화되는 것도 허용한다.
대신 국가채무의 GDP 대비 비율을 안정적으로 낮추는 것을 재정운영의 핵심 목표로 삼았다. 정부 투자로 경제를 성장시켜 GDP 규모를 키우고, 이를 통해 채무 비율을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2001년 첫 호네부토 방침부터 사용해온 ‘재정건전화’라는 표현도 이번에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 확보’ 등으로 바꿨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나친 긴축 기조와 미래 투자 부족의 흐름을 끊고 국내 투자를 대대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재정규율을 약화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국가채무의 GDP 대비 비율이 주요 7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상황에서 적극재정이 국채 발행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부는 국채 발행 규모를 정할 때 시장의 신뢰를 해치지 않도록 하고, 재정운영 방침도 투명하게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행의 금융정책과 관련한 문구도 원안에서 수정됐다. 6월 말 공개된 원안에는 ‘강한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적절한 금융정책 운영이 매우 중요하다’는 표현이 담겼다. 시장에서는 다카이치 정부가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을 견제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확산됐다. 여기에 ‘재정건전화’라는 표현까지 삭제되면서 국채가 매도되고 장기금리가 오르는 한편 엔화 가치도 떨어지는 이른바 ‘호네부토 쇼크’가 나타났다.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9일 장중 2.9%까지 상승해 1996년 이후 약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다카이치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10월 1.6%대였던 장기금리는 현재 2.7%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시장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최종 방침의 각주에 일본은행법 제3조를 인용해 “금융정책의 구체적인 수단은 일본은행에 맡겨진다”고 명시했다. 기우치 미노루 경제재정상은 21일 기자회견에서 이 각주에 대해 “여당의 의견과 지적을 반영한 수정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아사히신문은 자명한 원칙인 일본은행의 독립성을 정부가 굳이 강조하고 나선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다만 독립성 관련 문구를 추가했어도 다카이치 정부의 적극재정 노선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국제통화연구소의 구고 쇼타로 수석연구원은 아사히신문에 “이번 호네부토 쇼크는 금융시장이 다카이치 정부의 재정운영을 그만큼 우려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시장의 경고를 향후 정책에 어떻게 반영할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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