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분' 올림픽과 정치…아테네에서 평창까지 123년 IOC 정치史

한지연 기자입력 : 2018-02-23 11:06
올림픽 헌장 50조 3항 규정 '사문화' IOC, 북 평창올림픽 참가에 대대적 지원

올림픽 상징/ 구글 이미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창설한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참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은 IOC가 창설된 1896년부터 지금까지 올림픽 정신으로 승화됐다.
 
역대 IOC 위원장들은 쿠베르탱의 올림픽 정신을 강조하면서 “스포츠와 정치는 전적으로 무관하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이는 올림픽 헌장 50조 3항(모든 올림픽 관련 시설, 지역 내에서는 어떠한 정치·종교·인종 차별에 관한 시위, 선전활동도 금지한다)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과연 그럴까. 모든 스포츠는 정치적 이슈와 별개일 수 없다. IOC는 올림픽이 개최될 때마다 ‘올림픽은 정치행사가 아니다. 정치문제와 연관짓지 말라’고 외쳤지만 이는 올림픽과 정치는 늘 한몸이었다는 역설을 드러낸다. 전문가들 역시 IOC가 정치적 이슈에 보이는 ‘알레르기' 반응은 그만큼 스포츠와 국제 정치가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드러낸다고 분석한다. 

◆모든 스포츠는 정치적···올림픽 123년 역사

올림픽은 태생부터 매우 정치적이다. 쿠베르탱이 올림픽을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는 전쟁에서 패한 조국 프랑스의 국가주의를 고취시키기 위함이었다. 1회 아테네올림픽이 개최된 1896년부터 2018년 평창올림픽까지 123년의 시간 동안 올림픽은 2차 세계대전, 냉전, 독재 등 복잡한 국제정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올림픽의 정치색이 극단적으로 치닫던 시기는 1930년대 중반이다. 독일 나치 정권이 개최한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히틀러 정권의 국외 홍보수단으로 인종차별, 배타적 민족주의를 명분으로 개최됐다. 이에 반발해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는 IOC가 독일(서독과 동독), 일본, 이탈리아 등 2차 대전 전범국가들의 참전을 불허하기도 했다.

냉전 당시에는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간의 갈등으로 '반쪽 올림픽'이 개최되기도 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며 미국을 비롯한 서독·일본·한국 등 67개국이 불참했고, 4년 뒤의 LA올림픽에는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14개 국가가 불참했다. 중국은 대만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아 IOC를 탈퇴, 1984년 LA올림픽 이전까지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개최국 내부 정치상황도 주요 변수다. 올림픽 개최 전후에 군부가 시민들의 시위를 유혈 진압해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멕시코(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와 한국(1988년 서울올림픽), 신장 위구르 자치구 독립·티벳독립운동·인권문제 등을 야기한 중국(2008년 베이징올림픽) 등은 보이콧 논란을 겪기도 했다. 이밖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흑백 분리정책으로 IOC로부터 출전 금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사진=아주경제 DB]

◆남북단일팀 등 평화·평창올림픽 흥행에 미소짓는 IOC
 
평창동계올림픽도 예외는 아니다. 해외 언론 및 국내 여론은 '평창올림픽이 스포츠 정치의 끝판왕을 보여줬다'고 평가하고 있다. 연출자는 IOC, 주연 배우는 대한민국과 북한이다.

실제 IOC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남북 최초의 단일팀 구상이 실현됐으며, 북한에서는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현송월 예술단장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사전점검단으로 내려왔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깜짝 방남한 김여정 제1부부장 일행은 첫 방남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짧은 기간 동안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들이 터지면서 곳곳에서 “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흥행에 성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목할 점은 이 모든 중심에 IOC가 있다는 사실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올림픽 개최지가 ‘대한민국 평창’으로 선정되면서부터 IOC의 평화올림픽 구상은 시작됐다고 분석한다. 한 외교 전문가는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의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 스포츠를 통해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IOC 의도에 적중했을 것”이라며 “한국의 올림픽 흥행과 IOC 위원장의 욕망이 결합된 합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IOC의 막강한 정치력이 작용했다. 북한은 올림픽에 자력으로 진출한 종목도, 엔트리 마감도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IOC의 ‘와일드카드’ 권한으로 북한은 여자아이스하키, 피겨스케이팅, 알파인스키, 크로스컨트리 등 4개 종목에 선수 10명을 출전시켰다. 

특히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여를 적극 독려했다. 바흐 위원장은 남북 단일팀 제안, 북한 선수단 지원, 북한의 마식령스키장을 활용한 분산 개최 방안 등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림픽 전문매체 ‘인사이드 더 게임스’지는 “남북 단일팀은 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에서부터 기획됐을 것”이라며 “평창올림픽의 성공은 궁극적으로 유엔 사무총장을 노리는 바흐 위원장이 통과해야 할 중요 관문이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IOC 위원장이 UN 사무총장이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논란과 별개로 바흐 IOC 위원장의 '포스트 평창' 행보에는 거침이 없다. 그는 평창올림픽 폐막 후 올림픽위원회와 남북한 합의의 일환으로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2020년 예정된 도쿄올림픽의 북한 참가도 지원한다.

바흐 위원장은 "2020년 도쿄올림픽에 북한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도쿄올림픽에서도 (평창올림픽처럼) 엄격한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겠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위해 4년 전부터 각국 정부의 관계자들과 접촉해 정세 분석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방북 후 북한 측 인사들과 만나 IOC의 북한 선수 지원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의도가 어찌 됐든 IOC의 이런 행보는 한국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전직 외교부 관계자는 "평창올림픽은 '행동하는 평화'라는 대외적 메시지 전달로도, 바흐 IOC 위원장 개인적인 입지 굳히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며 "바흐 위원장이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에서 펼쳐지는 동계올림픽 정신을 오래 끌고 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만큼 앞으로 IOC가 스포츠, 문화 교류 등을 통해 남북 관계 해빙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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