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100투더퓨처] 100세를 넘어 건강하게 산다는 것 …한국 장수 연구의 국제적 의미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한국은 지금 유례없는 속도로 고령화 사회를 지나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평균 수명은 늘어났지만, '오래 산다'는 것이 반드시 '잘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물음 앞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집단이 있다. 바로 100세 이상의 삶을 살아낸 사람들, 즉 '백세인(centenarian)'이다. 이러한 백세인의 특성을 규명하려고 노력해온 전세계의 연구자들이 최근 고창에 소재한 웰파크호텔에서 6월9일부터 12일까지 제30차 국제백세인연구단(International Centenarian Consortium)학술대회에 참가하였다.

모두 11개국의 16개 백세인연구팀이 참가하였다. 특히 중국은 베이징팀, 칭따오팀과 홍콩팀 그리고 타이완팀이 대거 참석하여 최초로 국제사회에 중국의 다양한 장수현상을 공개하였으며 남미에서는 브라질, 아프리카의 이집트, 그리고 호주에서도 참석한 명실상부한 맘모스 국제대회가 개최되었다. 세계 각지의 수많은 팀들이 참가한 이유는 그만큼 장수현상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고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번 대회의 성과에 대해서는 차후 구체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오래 산 사람들의 공통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보편적인 장수 요인'이다. 지역과 문화가 달라도 백세인들에게는 공통된 패턴이 있다. 저칼로리 식단, 채소 중심의 식사, 규칙적인 신체 활동, 가족과 공동체의 긴밀한 유대, 만성 염증의 억제, 그리고 FOXO3를 포함한 다인자적 유전적 기반이 그것이다. 

오키나와 백세인들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장수 집단으로, 20세기 후반에는 주민 2,000명당 1명꼴로 100세를 넘겼다. 저칼로리 저단백 고채소 식단이 만들어낸 '적절한 칼로리 제한'이 핵심이다. 심혈관 질환과 당뇨 유병률이 서방 국가는 물론 일본 본토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았다. 그런데 주목할 대목이 있다. 1970년대 이후 식단이 서구화되면서 젊은 세대에서는 이 장수 이점이 크게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문화의 소실에 의한 장수패턴 해체를 오키나와역설(Okinawa Paradox)이라고 한다. 장수는 유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과 생활 방식의 산물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사례다.

사르데냐 섬의 AKEA 연구는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을 제시한다. 세계적으로 백세인 가운데 남성 비율은 평균 10~15%에 불과하지만, 사르데냐 중동부 바르바지아 지역에서는 30~40%에 달했다. 지역 특유의 유전자패턴, 험준한 지형에서의 높은 신체 활동, 전통 지중해식 식단(채소, 콩류, 올리브오일, 와인), 그리고 가족· 마을 공동체 중심의 사회구조가 결합된 덕분이다. 

중국 광시성 바마 현은 백세인 밀도가 국제 기준을 크게 상회하는 곳이다. 옥수수· 잡곡·두부· 채소 중심의 단순한 식사, 미네랄이 풍부한 지하수, 야외 활동, 낮은 스트레스, 그리고 촘촘한 가족 네트워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기후· 수질· 지형· 식문화· 사회문화적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장수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1994년 보스턴 인근에서 시작된 뉴잉글랜드 백세인 연구는 2,500명 이상의 코호트를 구축했다. 이 연구의 핵심 발견 중 하나는 '가족 조사'이다. 백세인의 형제자매는 일반 집단에 비해 100세를 넘을 가능성이 4배 이상 높다. 장수에는 환경과 생활 방식만이 아니라 상당한 유전적 기여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 역시 단일 '장수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다양한 유전 변이와 환경, 생활 방식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한다고 결론 내린다.

1988년 조지아에서 시작된 조지아 백세인 연구는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사는가'가 아니라 '어떤 기능과 질을 유지하며 사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조지아 백세인들은 심혈관 질환, 골다공증, 빈혈, 치매 등 다양한 질환을 동반하면서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적응하며 살아간다. 도쿄 백세인과 비교했을 때 조지아 백세인들은 심혈관 질환 유병률과 BMI가 더 높았지만, 신체· 감각· 인지 기능은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을 보였다. 이는 돌봄 체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환경이 건강을 만들고, 돌봄이 건강 궤적을 바꾼다는 교훈이다.

일본 도쿄 백세인 연구와 일본 준초고령자 연구(105세 이상 추적)는 한발 더 나아가 생물학적 노화의 분자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100세에 완전한 독립적 기능을 유지하는 비율은 불과 20%에 불과하지만, 이 집단이 105세·110세 이상으로 이어지는 핵심 집단이다. 이들의 후성유전체 분석에서는 특정 유전자 부위의 DNA 메틸화 패턴이 젊음을 유지하는 동시에 항염증적 노화를 나타냈다. 혈장 단백체 분석에서는 산화 스트레스 관련 단백질의 특이적 변화가 확인됐다. 쉽게 말해, 초고령 장수자들은 '노화를 억제하는 생물학적 패턴'을 갖추고 있음을 규명하였다. 일본 백세인 연구가 한국에 던지는 중요한 경고가 있다. 일본의 백세인 수는 1992년 서 2018년 사이 16.8배로 급증했다. 그러나 기능적으로 의존 상태인 채로 100세에 도달하는 비율이 더 높게 늘고 있다. 백세인이 많아진다고 해서 건강 수명이 늘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은 평균 수명 연장을 정책 목표로 삼는 시대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불편한 진실이다. 

한국 백세인 연구의 독특한 가치

한국백세인연구가 국제사회에 소개되면서부터 큰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독창적인 팀구성과 방법론을 채택하였기 때문이었다. 우선 기존의 백세인연구단은 주로 의학, 유전학, 영양학, 심리학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지만 한국의 백세인연구단은 생화학, 유전학, 의학, 영양학, 가족학, 생태학, 경제지리학, 노인복지학과 인류학이 참여한 초복합융합팀이었다. 따라서 조사에 대한 관점이 광범위했고 다층적이었다. 또한 연구조사는 반드시 현장방문을 원칙으로 하였다. 이에 따라 다른 국가의 백세인조사에서는 검토되지 못하였던 백세인들의 주거환경, 가족상황과 지역의 환경생태와 문화 그리고 행정적 복지지원상황을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그 결과 산악지역과 평야지역이라는 생태 환경의 차이가 백세인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직접 비교할 수 있었다. 산악 지역 백세인은 곡물· 채소 중심의 식단과 활동량이 높아 체중과 혈중 지질이 낮은 편이었고, 평야지역 백세인은 어류· 해조류에서 풍부한 오메가-3와 무기질을 섭취하는 대신 나트륨 섭취량이 높은 경향이 있었다. 성별과 거주 환경이 건강 결과에 미치는 상호작용도 확인됐다. 여성 백세인은 남성보다 오래 살지만 만성퇴행성질환 부담은 더 크다. 장수는 성별· 환경· 생애사에 따라 질적으로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유전체 분석에서는 DNA 수복 유전자 MLH1와 암유전자인 Brca1의 다형성이 한국 백세인의 장수와 연관성이 있음을 보고했다. 게놈 안정성과 장수의 관계를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백세인에서 높게 검출된 APOE4나 CETP같은 유전자는 유의하지 못하여 채식위주식단과 육식위주식단 차이에 의한 유전자X환경의 상호작용이 작용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한국 백세인의 가장 독보적인 특성은 역사적 경험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극심한 빈곤, 급격한 산업화를 연속으로 겪은 백세인들은 비교적 안정된 사회 조건 속에서 형성된 서구 코호트나 오키나와· 사르데냐 백세인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집단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회복력과 적응력은 단순히 '좋은 유전자'나 '좋은 식단'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강인함, 가족 중심의 가치관, 공동체 결속이 스트레스 저항성을 매개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장수에 크게 기여하였음을 보여주었다.

100세를 넘어 건강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 

국제 비교 연구들이 모두 향하는 핵심 질문은 결국 하나다. '얼마나 오래 사는가'가 아니라 '어떤 상태로 오래 사는가'. 기능적 독립성과 삶의 질이 핵심 지표여야 한다. 도쿄 연구팀이 제시하는 인격 특성도 흥미롭다. 인지 기능이 온전한 백세인들은 개방성 점수가 높았고, 여성 백세인에서는 성실성과 외향성도 두드러졌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유연함, 삶에 대한 능동적 태도가 장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르데냐, 오키나와, 바마, 그리고 한국의 산골과 해안 마을이 공통적으로 가진 것은 '느슨하지 않은 공동체'다. 누군가가 당신을 알고, 당신의 하루를 묻고, 당신이 없으면 빈자리가 느껴지는 관계망. 현대 도시화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한국형 건강 장수 전략을 위하여 

한국 장수 연구는 지금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앞으로 연구가 확장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백세인의 형제자매와 자녀를 포함한 가족 기반 장수 분석, 농촌을 넘어 도시 백세인으로의 코호트 확장, 발효식품· 장내 미생물· 면역 기능의 관계 규명, 한국전쟁·산업화 세대와 이후 세대 간의 비교, 국제 코호트와의 직접적 유전체· 후성유전체 비교 연구, 그리고 한국형 블루존 후보 지역의 체계적 발굴과 검증이 그것이다. 블루존이라는 개념은 유용하지만, 한국 장수의 고유성을 그 안에 녹여버려서는 안 된다.

발효식품 문화, 전쟁 

경험이 빚어낸 회복력, 산악과 해안이라는 이중 생태 구조는 세계 어느 블루존에도 없는 한국만의 특질이다. 이를 토대로 한국형 건강 장수 모델을 독자적으로 구축해야 한다.초고령 사회의 정책 목표는 평균 수명 연장이 아니라 기능적 독립성의 유지여야 한다. 얼마나 오래 사는지가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얼마나 자기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는지가 목표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백세인들에게서 받아내야 할 지혜이고 해답이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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