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두고 옥신각신] 정부와 기업 간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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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기자
입력 2021-04-20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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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산재 사망자 줄이기 강력 추진…재계 "산업계 위축시키는 과잉입법"

1월 27일 서울 전경련회관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영향 분석 및 대응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사진=전국경제인연합회 제공]

중대재해처벌법에 관해 정부와 기업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올해 1월 26일 제정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사고를 줄이자는 취지로 발의됐지만, 현장의 시선은 달갑지 않다. 시행을 두고 1년이라는 유예기간이 있지만 강화된 사업주의 책임에 부담감을 느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다만 이대로 산업재해를 둘 수는 없다는 사회적 여론은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 사고 사망 통계'에 따르면 한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인원이 약 800~900명에 달한다. 이는 과거보다 다소 줄어든 수치이지만 그래도 안전에 대한 사각지대가 곳곳에 존재함을 암시한다. 정부와 재계 간 물러설 수 없는 기 싸움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산재 줄이기 지상목표···사망자 연 705명 이하로

정부와 국회는 산업재해의 피해자를 줄이자는 목표를 두고 관련법의 진행을 강행하는 모습이다. 다만 산재를 줄여야 된다는 여론의 지지와 명분은 충분하다. 이에 정부는 지금까지 실무자나 하청업체에 부과된 산업재해의 책임을 발주처나 본사에 직접 부과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최고 경영진에게 책임감을 부여함으로써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는 계산이다. 현재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 실행 가능성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방향으로 시행령안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고용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사망자는 연간 1000명에 달한다. 지난 10년간 자료를 살펴보면 불과 2019년 전까지는 900~1100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2019년 885명, 2020년 882명으로 다소 감소했지만, 큰 수치는 변함이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자는 산업 환경에 따른 양극화 현상도 보인다. 전체 사망자 중 51.9%가 건설업에서 발생했으며, 제조업도 22.8%로 높았다.

이 때문에 사고 유형별로는 떨어짐(328명), 끼임(98명), 부딪힘(72명), 물체에 맞음(71명), 깔림·뒤집힘(64명) 등 사고가 잦았다. 사업장 밖 교통사고(54명)와 화재(46명)로 인한 사망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또 규모별로 살펴봐도 5~49인에서 402명(45.6%), 5인 미만에서 312명(35.4%) 등 소규모 사업장에서 대부분의 사망자가 나왔다. 전체 사망자 중 80%에 달하는 수치다.

특히 60세 이상 사망자의 비율은 전년(33.3%)보다 급격히 증가했다. 이를 종합하면 사회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거나 약자‧고령자인 경우 더욱 산업재해에 취약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의 경우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2024년 1월까지 적용이 유예된다. 사고가 빈번한 소규모 사업장이지만 그만큼 재무구조도 열악해 산업재해에 강한 책임감을 부과하기엔 현실적인 한계도 공존한다는 인식에서다.

정부는 올해 산재 사고 사망자를 작년보다 20% 적은 705명 이하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현 정부 출범 직전 연간 1000명에 달했던 산재 사고 사망자를 현 정부 임기 중 절반으로 줄인다는 국정과제 실현 가능성은 실질적으로 높지 않다는 전망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CEO 좌불안석, 경제계 집단 반발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기업들의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특히 이 법은 처벌 대상을 사업주와 기업의 경영책임자로 명시해 기존의 현장 실무자에게 부과됐던 책임 부분의 강도를 훨씬 높였다.

기업은 이전과 다른 환경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다양한 입법포럼과 법률상담을 받는 분위기다.

형사처벌의 경우 하한형을 둬 1년 이상이 징역이 선고되도록 했다. 또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중대재해를 일으킨 경우 5배 범위에서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됐다.

이에 관해 산업계의 반발도 뜨겁다.

지난달 25일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대한건설협회 등 7개 경제단체는 중대재해법에 대한 보완입법 요청사항을 국회 법사위와 관계부처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선 중대재해법이 특별법임에도 산업안전보건법과 피해자 등이 동일하게 규정돼 있어 정의를 엄격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중대재해법이 산안법 규정보다 강력한 처벌 수준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처벌의 전제요건인 경영책임자의 의무규정이 포괄적이고 모호해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경제단체들은 현재 중대재해법은 과잉입법의 소지가 있다고 꼬집었다. 업무상 주의감독(과실)의 책임이 있는 법인에 산안법과 유사한 의무위반을 이유로 최대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5배 이내)까지 묻고 있어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경제단체들은 법인의 책임을 고려한 벌금액 하향과 배상 책임의 범위 3배 이내로 조정할 것을 건의했다.

경영책임자 등의 형사처벌 수준에 대해서는 "기본 과실범 형태의 산재사고에 대해 하한형의 유기징역을 부과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라며 "형벌수준을 상한 설정방식으로 변경해야 한다"라고 경제단체들은 강조했다.

이러한 건의와 문제의식은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상위 1000대 비금융기업을 대상으로 '중대재해법의 영향 및 개정의견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조사에 응답(100개사)한 기업들의 절반이상이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중대재해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로는 '사업주·경영책임자의 책임 범위를 넘어선 의무 규정'이라는 응답이 29.0%로 가장 많았다.

​법 개정 내용에 대해선 중대 재해의 기준요건과 관련해 사망기준을 '일정 기간 이내 반복 사망'(49.6%) 또는 '사망자 2명 이상 발생'(15.4%)으로 한정하거나 '사망 외 중대재해 기준요건 완화 또는 삭제'(25.0%) 등의 의견이 있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산업재해는 중대재해법과 같은 처벌 강화로 예방하기 어렵다"면서 "산업안전시스템을 정비해 예방에 주력하는 동시에 중대재해법을 개정해 산업현장의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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