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커스] “살려달라”는 피해자 절규 외면하는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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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지 기자
입력 2018-11-2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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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의 여성가족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한국건강가정진흥원,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등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온 가정폭력 피해자 유가족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아버지는 평소에 6개월만 (감옥에서) 살다 나오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제2, 제3의 피해자가 더는 없도록 실질적인 법을 제정해 주시길 원합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살인사건 피해자의 딸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참고인으로 출석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정폭력에 평생을 시달린 피해자의 딸은 어머니의 죽음보다, 아버지가 출소 후 휘두를 폭력의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4년 동안 6차례나 아버지를 피해 도망다녔지만 아버지는 가족관계증명서, 차량 GPS 부착, 흥신소 의뢰 등 집요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스토킹했다. 2012년엔 “재밌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집에 온 가족을 불러 모아 피해자를 마구잡이로 폭행했다. 2015년에는 칼을 들고 집 앞에 찾아와 살해 협박을 했다.

그때마다 피해자와 딸들은 경찰에 신고했지만 국가 공권력의 보호를 단 한 번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예고된 살인을 알면서도 막지 못했다. 물러도 너무 무른 법 때문이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는 피해자 딸의 호소에 “조속한 법안 처리”를 약속했다. 지난 12일 여성시민단체와 정춘숙·백혜련·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열었다. 그러나 가정폭력처벌법 17건은 20일 현재까지 국회에 방치돼 있다.

여성가족위원이자 법제사법위원인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기자와 만나 “가정폭력처벌법 자체가 가정 보호에 초점이 있고 피해자 보호 중점 법안이 아니라서 논의의 틀을 바꾸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거 같다”고 말했다. 특히 “여가위는 몰라도 법사위는 합의를 이뤄내기가 쉽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 같은 우려는 법사위 내 법조인 출신 남성 의원이 절대적으로 많은 데다가 쟁점 현안 위주로 법사위를 운영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젠더 감수성보다는 법의 잣대로만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 법사위 민주당 남성 의원은 “실무를 해본 사람들은 걱정을 많이 한다. 형사는 민사와 다르기 때문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입증이 돼야 한다. 다른 법과 형량을 맞추는 것도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법사위 여성 위원은 백 의원과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 단 두명밖에 없다.

여가위에선 통과된 4개 미투 법안이 법사위에서 발목이 잡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도읍·이완영 한국당 의원은 당시 법안의 중복, 통합 심사의 필요성, 심사 시간의 부족 등을 이유로 들어 처리 보류를 주장했다. 법 개정을 국회가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제2의 등촌동 살인’ ‘제2의 미투’ 피해자들은 오늘도 늘어가는 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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