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리뷰] 비평가와 극작가, 진실 앞 연극-현실의 경계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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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조 기자
입력 2018-08-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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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1일까지 두산아트센터 공연

연극 '비평가'의 한 장면. 원로 비평가 볼로디아(백현주, 왼쪽)와 극작가 스파르카(김신록)가 대치하고 있다. [사진=K아트플래닛]


"글자수가 존경심을 나타낸다고 보십니까?"

원로 비평가 볼로디아(백현주)가 보다 긴 비평을 원하는 극작가 스파르카(김신록)에게 무심한 듯 아니꼽게 던진 말이다. 결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극 초반 볼로디아의 고압적인 태독가 묻어난다.

스파르카 또한 기세가 만만치 않다. 10년 전 자신의 첫 작품에 혹평을 쏟은 볼로디아에게 앙금이 남은 스파르카는 신작 발표 후 곧장 그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리고는 다소 무례하게 작품에 대한 호평을 요구한다.

하지만 볼로디아는 흔들림이 없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 설전이 오간다. 어느새 연극의 본질에 대해 고찰한다. 그 과정에서 무대 위 볼로디아의 집 현관문은 수차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고, 책들이 놓여 있던 긴 탁자는 어느새 무대 속의 무대가 된다.

두 여성 배우의 옷 매무새에서는 남성의 느낌이 난다. 목소리 톤에서도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작품이 당초 남성 배우의 2인극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왠지 모를 낯섦이 느껴질 수 있지만, 이내 두 배우의 연기에 묻히게 된다.

특히 스파르카가 탁자 위에서 자신의 작품 속 권투경기 장면을 직접 연기하는 장면은 무척 역동적이다. 권투 스승과 제자의 한 판 대결이지만, 사실은 자신과 볼로디아의 관계를 형상화했다. 성장 동력이 된 볼로디아에게 인정받기 위한 스파르카의 몸부림이 처절하다.

그럼에도 꿈쩍 않던 볼로디아는 종국에 현관문을 박차고 나간다. 스파르카의 작품에서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여겼던 '맨발의 여인'이 알고 보니 자신의 과거 연인을 투영한 인물이었던 것. 연극의 '진실성'을 역설하던 볼로디아 입장에선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이 설전은 스파르카의 승리일까. 그는 볼로디아에게 걸려온 전화를 대신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비평한다.

"우리는 연극에 바라는 것을 삶에는 결코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연극에는 진실을, 완전한 진실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라면 오늘 밤 우리가 본 작품은 우리를 실망시켰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또 한 번의 혹평을 스스로 읊는다. 각자의 벽을 허물고야 만다.

흔히 연극뿐만 아니라 소설, 영화 등의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재에도 허구를 곁들여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장면들을 묘사하곤 한다. 개연성이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스파르카는 볼로디아가 사랑한 여성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냈다. 볼로디아를 관찰하던 중 자연스럽게 알게 된 여성이다. 그렇다면 작품 속 '맨발의 여성'은 온전히 진실일까. 단언할 수 없다.

배우들은 강약 조절이 능숙하다. 극 중 자신의 신념이 깨지면서 혼란을 겪는 볼로디아와 감정적으로 격양됐다가 되레 냉정해지는 스파르카의 입체적인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연극 '비평가'는 오는 9월 1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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