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페미니즘 웹툰 작가 민서영 “소수자·약자 조롱 없이도 좋은 작품 만들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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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은 기자
입력 2018-07-1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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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미니즘 웹툰 '썅년의 미학', 자극적 소재 없이도 ‘사이다’ 대사로 인기몰이

“절대 소수자와 약자를 조롱하거나 희화화하지 않고, 혐오성 단어를 쓰지 않겠다는 게 내 철칙입니다.”

페미니즘 웹툰으로 알려진 '썅년의 미학'의 작가 민서영(26)씨는 13일 가진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민 작가는 타인을 제물 삼아 웃기는 콘텐츠가 만연한 요즘, 누구를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고도 재미를 선사하는 크리에이터로 꼽힌다.

민 작가가 그려내는 작품의 재미는 ‘사이다’ 같은 대사에서 나온다.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썅년의 미학' 46화 ‘여성혐오 돌림노래’에는 한 남성이 “요즘 여자 만나기 너무 무섭다”며 볼멘소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투(#Me Too, 나도 피해자다)'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합의금을 노린 꽃뱀인지 알 수 없단 이유에서다. 이를 듣던 여성은 “나도 남자 만날 때 돈’만’ 뜯길까봐 걱정해보고 싶다”며 미투 여성을 향한 꽃뱀 프레임을 정조준한다. 이를 속 시원히 반박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식이다.

하지만 그런 민 작가도 처음부터 페미니즘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다. '썅년의 미학' 연재 계기를 묻자 민 작가는 “딱히 어떤 사명을 가지고 페미니즘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건 아니었다”며 “그저 ‘가장 개인적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답했다.

민 작가가 말하는 개인적인 얘기란, 대한민국 여성으로 살며 겪은 크고 작은 경험들을 가리킨다. 민 작가는 이런 경험을 흘려보내지 않고 만화로 묶어뒀고, 어느 순간부터 '썅년의 미학'을 ‘페미니즘 만화’라 부르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그러자 민 작가의 서사는 ‘개인적 이야기’에서 ‘보편적 이야기’로 바뀌어갔다. 자신의 얘기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겪은 불편함까지 만화에 담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흔히 사용하는 표현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곱씹어보게 됐다는 민 작가는 “'썅년의 미학'에 한국 여성을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비유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여자는 24세까진 프리미엄이 붙고 25세엔 제값이고 26세가 되는 순간 똥값이라는 뜻”이라며 “관성적으로 들어온 얘기지만 이를 불편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어떻게 대항해야 할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사진=윤지은 기자]


민 작가는 이런 과정을 거쳐 페미니즘 웹툰 작가로 활동하게 됐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철학은 누구보다도 확고하다.

민 작가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란 ‘문명사회’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는 "우리 사회는 그동안 성적으로 기울어진 측면이 있었다"며 “여성이든 남성이든 삶을 잘 살기 위해선 누군가를 착취하거나 괴롭히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 작가는 ‘탈코르셋(남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꾸미지 않을 것을 주장하는 사회적 운동)’ 논의에 대해선 “사람마다 코르셋이라고 느끼는 범위가 다르다”며 “나는 스스로를 코르셋에 조인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타인이 그렇게 여긴다면 그건 내게 새로운 코르셋을 씌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로 존재할 권리”라고 강조했다. 

민 작가는 두터운 매니아층을 보유하고 있지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놨다. 그는 “내 만화는 4컷 만화다 보니 의미를 최대한 함축해야 해서 아쉽다"며 "만화에 담지 못한 이야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칼럼으로 소개한다"고 말했다.

4컷 만화에 미처 담지 못한 민 작가의 못다한 이야기는 이달 발매될 '썅년의 미학' 단행본에 고스란히 담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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