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메모리 매각]반도체人들의 분노, “우리는 WD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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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기자
입력 2017-10-0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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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바 메모리의 교훈 - (3)

쓰니카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사진=연합뉴스 제공]


도시바는 사내 파벌 갈등을 없애기 위해 ‘의료기기 부문’ 출신인 쓰니카와 사토시 사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사토시 사장도 또 다른 대립을 불러 일으켰으니, 바로 ‘메모리 사업부’의 반발이었다. 일본 언론들은 ‘내부 대립’이라는 표현을 쓰며, 그들의 동요가 도시바 메모리 매각을 지연시킨 또 다른 원인이었다고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들로서는 ‘정당한 불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낸드 플래시 메모리 세계 최초 개발
도시바는 현재 플래시 메모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업체다. 삼성전자도 플래시 메모리 사업을 시작할 때 연구원들이 도시바를 찾아가 배웠을 정도로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일본 반도체 업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기업에 밀려 합종연횡을 통해 생존을 모색할 때에도 도시바는 자력으로 메모리 사업을 추진했다. 기술 경쟁을 주도하고, 제품 판매를 통해 수익도 내는 등 일본 반도체 산업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상징성도 컸다. 모기업이 제대로 지원을 해줬더라면 현재의 메모리 반도체 호황기에 더욱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에 참여한 뒤, 그들에 대해 어떠한 언급을 자제한 것은 비밀유지협약 준수라는 표면적 이유 외에도 도시바 메모리 기술진들의 자부심에 상처를 내지 않겠다는 배려도 담겨 있었다.

이러한 메모리 사업부인데, 도시바는 그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매각을 강행했다. 그룹을 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희생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했다고 해도, 흑자를 내는 기업을 팔아서 적자인 모기업을 살리겠다는 방침에 불만이 고조됐다.

잠잠하던 메모리 사업부 임직원들이 본사의 매각 과정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사토시 사장이 8월 24일 우선협상대상을 SK하이닉스가 속한 ‘한미일 연합’ 대신 미국의 웨스턴디지털이 주도하는 ‘미일연합’으로 바꾼다고 발표한 직후다.

WD은 플래시 메모리를 생산하는 미에현 욧카이치 공장을 공동 운영하는 파트너사다. 하지만 도시바 메모리 임직원들은 매각 결정 이전부터 WD에 대한 반감이 컸다.

원래 도시바 메모리의 파트너는 ‘샌디스크’다.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주력으로 내세우는 WD가 2016년 5월 샌디스크를 인수, 회사 이름이 바뀌었다.
 

◆WD 신입사원 “정보보안 서약서 사인할 수 없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도시바 메모리 임직원들은 “샌디스크가 우리의 파트너다. WD는 HDD 업체로 반도체 산업은 아마추어다”라며 WD을 평가절하 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WD은 도시바 메모리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저질렀으니, 매각 반대를 주장하며 국제상업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와 미국 상급법원에 제소를 했다. 이에 반발해 도시바측이 요카이치 공장에 WD 직원들의 정보접근 권한을 차단했지만 WD는 굽히지 않고 대립을 이어갔다.

특히, 어느 공장이나 처음 들어갈 땐 정보보안 서약서에 서명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WD 신입사원은 욧카이치 공장에 처음 들어갈 때 “그 서약서에는 사인할 수 없다”며 당당히 거부하는 등 사소한 문제부터 WD는 자신들이 ‘갑의 행세’를 해왔다고 도시바 메모리 관계자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우선협상대상으로 선정된 뒤 WD의 과도한 요구는 도시바 메모리 임직원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WD는 도시바 메모리 경영권 획득과 욧카이치 공장에서 생산되는 플래시 반도체의 공급 비율을 늘려달라고 한 것이다. 도시바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매각 시한이 다가오면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는 도시바의 약점을 악용해 도시바 메모리를 손쉽게 가져가려는 WD의 행동에, 도시바 메모리 직원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고, 도시바 본사 관계자조차도 “이제 (WD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야스오 부사장 ‘한미일연합’ 반전 일궈내
WD로 우선협상대상을 바꾸기 전, 욧카이치 공장을 방문한 산업혁신기구 관계자들은 현장에서 만난 도시바 메모리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 뒤 “이렇게까지 관계가 악화 되었나”며 놀라웠다고 한다. 그들은 산업혁신기구 관계자들에게 WD의 미일연합이 “싫은 녀석들만 모아놨다”며 전원이 반대를 주장했다.

모그룹 부실의 책임을 왜 도시바 메모리가 져야 하는 지에 대한 불만과 WD에 대한 거부감, 훙하이정밀공업이 주도하는 중국계 컨소시엄에 인수될 경우 100% 핵심 기술을 빼앗길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도시바 메모리 직원들은 대부분 ‘한미일 연합’을 지지했다.

직원들의 입장을 사토시 사장에게 주장한 이가 바로 나루케 야스오 도시바 반도체 담당 부사장이었다. 도시바 메모리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는 야스오 부사장은 반도체 사업에서 잔뼈가 굵은, 도시바의 메모리 사업을 키운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다. 회사 내에서는 평소에는 온화하지만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에서 자신의 신념이 확고하다면 절대 의견을 굽히지 않는 ‘무투 파’로 불리며 임직원들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야스오 부사장은 채권단과 WD의 압박과 견제 속에서 주관을 잡지 못하고 있던 사토시 사장과 대립각을 세우며, 도시바 메모리 매각을 지연시켰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줄기차게 WD로의 매각을 반대했고, 끊임없이 관계자들을 설득시켜 9월 20일 도시바 이사회에서 예상을 뒤엎고 한미일 연합에 매각 결정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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