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교칼럼] 정권의 정통성과 정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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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희 기자
입력 2017-07-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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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교칼럼
초빙논설위원·바른정책연구원장(전 상명대 교수)
 

[사진=서성교]


정권의 정통성과 정당성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70일 되었다.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의 얼개도 갖추었다. 국정공백을 하루빨리 메꿔주고, 국가혼란을 정리해주길 바라는 국민의 기대는 여전히 크다. 역대 대통령에 비해 높은 지지도에는 잘해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바람이 담겨 있다.
정치에서 흔히 정통성과 정당성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정권 수립의 합헌성을 의미하는 정통성(legitimacy)과 권력 행사의 정당성(justification)은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옛날 왕조 시대에는 혈통 승계 원칙이 정통성을 가져다줬다. 통(統)이라는 한자어는 실 사(糹)와 가득할 충(充)의 합성어다. 즉, 계승의 연결성과 순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를 통한 합법적인 당선이 정통성을 부여해준다. 즉, 국민들이 권력에 동의하고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통성은 권력의 뿌리요 체제 유지의 근간이다. 하지만 정통성을 가진 정권이라도 권력 운용 과정에서 정당성이 훼손되면 국민들의 반대와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통치의 절차적 합법성, 도덕성, 효율성이 정당성의 주요 요소들이다. 막스 베버가 말한, 국민들의 지배자에 대한 자발적인 협력과 지지를 받을 때만 원활한 국정운영이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는 탄핵에 대한 반대급부로 탄생했다. 전 정부의 실패로 집권했다고 해서 무제한의 도덕적 우위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 대중의 합의에 기초한 권력의 운용과 정책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정책 결정의 과정을 보면 조급함에서 오는 독주와 독선이 배어 있다. 외부의 시선과 비판은 진영 논리로 애써 무시하려고 한다. 민주적인 토론의 과정은 생략되고 성급한 결론이 앞선다.
이런 현상은 초기 인사 문제에서 두드러졌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국민에게 약속한 5대 배제 원칙은 무너졌다. 장관 후보자들마다 위장전입, 탈세는 기본이고 논문 표절, 음주운전, 특혜성 전관예우, 부동산 투기 등 문제 없는 후보자가 없을 지경이었다. 문재인 정부도 과거 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팽배하다. ‘임명하지 못할 중대한 사유가 없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형식적 요건일 뿐’이라는 비민주적인 인식을 드러내며 임명을 강행했다. 공자는 정치의 요체는 인사이고, "바르고 곧은 사람을 등용하여 그릇된 사람 위에 쓰면 백성들이 따르고, 그릇된 사람을 등용하여 바르고 곧은 사람 위에 쓰면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 결정도 논란을 낳고 있다. 지난달 27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가 열렸다. 8조6000억원이라는 거액이 투입되어 공사가 진행 중인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 결정이 이루어졌다. 국무회의는 국정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이고, 원자력 발전소 건설 중단은 국가 중대 사안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토론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되었다. 국무조정실장이 구두로 보고했고, 발언자는 대통령을 포함한 3명뿐이었다. 주무 부처 장관들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였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공사 중단은 결정되었다.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는 활발한 토론이 생명이다. 대통령이나 총리의 지시를 하달하거나 준비된 안건을 이의 없이 통과시키는 국무회의는 살아 있는 국무회의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원전 담당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정부 결정을 뒷받침하기에 바빴다. 고위공무원 출신인 사장을 포함한 이사진은 호텔에서 공사 중단 찬성을 결정했다. 애초 한수원은 ‘정부의 공사 중단을 따를 법적 의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었다. 한데 이사 13명 중 12명이 공사 중단에 찬성했다니, 어떻게 전원 찬성에 가까운 결정이 이뤄졌을까?
원전 찬반 결정을 공론조사와 배심원단 표결로 하겠다는 방식도 어처구니없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공론조사를 할 수는 있다. 공공의 의견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국가 주요 정책 결정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기반으로 정부가 책임지고 내려야 한다. 짧은 시간 내에 일반인들이 학습과 토론을 통해서 결론을 내린다니,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가 떠오른다.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으로 대중의 감정에 휩쓸리고 단기적인 사적 이익에 집착하는 우중정치로 흐르고 말 것이라고 2300년 전에 경고한 바 있다.
한나 아렌트는 권력(macht)과 강권(gewalt)이라는 개념으로 현대 공공 정치를 설명했다. 권력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능력이자 그 자체가 목적이다. 반면에 강권은 물리력과 재정과 소통의 수단이다. 달리 말하면 정통성은 목적 그 자체인 권력의 문제이고, 정당성은 수단인 강권의 문제이다. 권력의 생성은 정통성이 근본이지만, 권력의 유지와 소멸은 정당성의 문제이다. 강권적 수단은 올바른 목적을 위해 올바른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정당성을 가진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은 권력의 소유자라기보다는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수권자이다. 국민들은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권력의 운용, 정책의 결정과 집행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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