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투어웨이] 우즈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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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앤드루스=이동훈 기자
입력 2022-07-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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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18번 홀에 위치한 스윌컨 브리지를 건너며 인사를 건네는 타이거 우즈. [사진=EPA·연합뉴스]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52년 펴낸 193쪽짜리 중편소설이다.

작중 어복이 다한 늙은 어부는 망망대해에서 거대한 청새치를 만난다.

이틀 밤낮에 걸쳐 밀고 당기며 사투를 벌였다. 늙은 어부는 뱃전에서 '사람은 파멸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되뇐다.

사투 끝에 물고기를 끌고 항구로 돌아왔다. 바다에서 꺼내 보니 뼈만 앙상했다. 피 냄새를 맡은 상어들이 뜯어 먹은 것이다.

늙은 어부는 오두막에 지친 몸을 누이고 아프리카 초원 사자 꿈을 꾸며 잠든다.

늙은 어부에게 바다가 있다면 타이거 우즈에게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가 있다.

우즈는 1995년 디 오픈이 열리는 올드코스와 사랑에 빠졌다. 아놀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 같은 전설들이 큰 박수를 받는 것에 매료됐다. 

이후 2000년과 2005년 올드코스에서 열린 디 오픈에서 클라레 저그를 들었다.

PGA 투어 최다 동률인 82승(메이저 15승)을 쌓은 우즈는 지난해 2월 차량 전복 사고를 당했다. 이후 크고 작은 수술을 거쳤다.

지난 4월 마스터스에서는 얼음물 투혼을 보였고, 5월 PGA 챔피언십에서는 기권으로 한 발 물러났다. 6월 US 오픈은 건너뛰었다. 7월 올드코스와의 사투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올드코스에 도착한 우즈는 발걸음이 경쾌했다. 한 발로 홀 속 공 3개를 한 번에 집기도 했다. 차도가 보였다.

언듈레이션이 많지만, 평지인 올드코스는 다리를 다친 우즈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올드코스는 우즈에게 시련을 줬다. 첫날 78타(6오버파)를 쳤다. 우즈는 2라운드 66타(6언더파)를 치겠다고 했다. 패배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저, 바람이었나. 둘째 날 75타(3오버파)에 그쳤다. 합계 153타(9오버파) 탈락이다.

우즈는 지친 다리로 18번 홀 스윌컨 브리지를 건넜다.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 1번 홀과 18번 홀을 둘러싼 갤러리가 큰 박수를 보냈다.

이틀 연속 올드코스와 사투를 벌인 것에 대한 보답이자, 응원이다.

늙은 어부는 외로웠지만, 우즈는 외롭지 않았다. 로리 매킬로이, 저스틴 토머스 등도 모자 끝을 잡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린으로 걸어가던 우즈는 두 눈에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훔쳤다. 니클라우스, 파머가 느낀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올드코스가 스쳐갔다.

우즈는 대회 내내 "올드코스에서의 마지막 디 오픈일지 모른다. 마음과 영혼을 바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2030년에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다.

우즈는 아들(찰리 우즈)을 올드코스로 데려오기로 했다. R&A 명예 회원이 되면서 티타임을 잡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우즈는 시련과 고난을 딛고 일어선 부활의 아이콘이다. 재기에, 재기에 재기를 거쳤다.

2005년 우즈의 후원사인 나이키는 한 광고를 만든다. 배경은 2000년 올드코스 디 오픈. 황당하게도 TV에 처음 출연했던 꼬마 시절 우즈가 출연한다. 혼자 백을 메고 스윙한다. 마지막 퍼트를 넣고 우승 기분을 만끽한다. 나이키가 합성한 것이다. 이후 성인이 된 우즈가 나온다.

언제일지 모르는 다음 올드코스 디 오픈에서는 우즈 부자가 함께 출전하지 않을까. 2030년이면 부자의 나이는 55세와 21세가 된다. 공교롭게도 헤밍웨이가 늙은 어부의 모델로 삼은 쿠바인 어부는 소설 발표 당시 5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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