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TSMC의 비밀] 기술혁신·고객신뢰·정부지원, 3박자가 성공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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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기자
입력 2021-03-10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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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네 마리 용 가운데 코로나19에도 대만경제 승천 이끌어

  • 삼성에서 배운 '초격차'를 무기로 압도적 투자...정부의 전폭 지원도

‘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홍콩·싱가포르·대만)’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에도 유독 높이 승천 중인 나라가 바로 대만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주요국 성장률이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한 반면 대만은 3.0% 성장해 30년 만에 중국(2.3%)을 앞질렀다. 실업률도 지난해 5~6월을 제외하면 꾸준히 3%대를 유지했다. 경제 역동성을 보여주는 산업생산은 코로나19가 창궐한 작년 2월 외에 단 한번도 줄어든 적이 없다. 글로벌 IB(투자은행)들은 대만이 올해도 4% 가까이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독한 ‘저성장의 늪’에 빠졌던 대만이 불과 10여년 만에 다시금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데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굴기’가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심에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TSMC가 있다. 

TSMC의 성공은 한 분야만 집요하게 몰입해 이룬 △기술혁신 △객호신임(客戶信任·고객신뢰) 원칙 △국가 차원의 적극적 지원과 인재육성 등 3박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졌기에 가능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강한 오너 리더십, 다양한 사업 분야, 자체 브랜드에 집중한 결과 파운더리 분야에서만큼은 2위 자리를 면치 못하고 있다.
 

TSMC 사옥 입구 [사진=TSMC 트위터]

삼성의 ‘초격차’ 전략 벤치마킹해 파운드리 1위 굳건

TSMC의 성공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삼성전자가 강조해온 ‘초격차’ 전략을 벤치마킹한 데 따른다. 초격차는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이 쓴 표현으로, 경쟁사를 압도하는 투자와 기술 개발로 2위와 격차를 계속 벌려 1위 자리를 공고하게 한다는 전략이다. 

파운드리의 첨단기술 경쟁력은 반도체 회로의 선폭(線幅)을 얼마나 정밀하게 그릴 수 있느냐 달려 있다. 이를 미세가공이라 부르는데, 선폭이 나노미터(nm·10억분의 1) 단위까지 발전한 상태다. 반도체 업계는 미세화의 한계를 넘고자 회로 설계 혁신, 신 공정 도입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화성캠퍼스에 극자외선(EUV) 전용 ‘V1’라인을 본격 가동하며 초미세공정을 향해 힘쓰고 있다.

하지만 삼성의 노력은 TSMC의 선견지명에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미 2019년에 7나노미터 공정 중 최고 수준 제품을 양산에 성공했고, 작년 5나노 제품을 선보인데 이어 오는 2022년 하반기에는 3나노 제품까지 생산할 예정이다. 현존하는 기술력의 극한으로 여겨지는 2나노 제품도 2024년 양산을 목표로 현재 공장부지를 확정한 뒤 연구개발이 한창이다. 

이에 질세라 삼성전자도 2019년 7월 갤럭시 노트 10용 AP인 엑시노스 9825에 7나노 공정을 적용했고, 이후 2019년 후반 6나노, 올해 5나노 제품 양산에 성공했다. 하지만 5나노 제품의 경우, 수율(웨이퍼 한 장에 설계된 최대 칩(IC)의 개수 대비 실제 생산된 정상 칩의 개수를 백분율, 즉 불량률의 반대말) 면에서 TSMC에 현저히 밀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TSMC 연구원이 직원들과 공정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TSMC 홈페이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 애플·인텔 등과 공고한 신뢰관계 구축

특히 TSMC가 여타 기업과 차별화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사훈을 상기하면 된다. 소위 객호신임의 원칙에서 비롯된 경영 철학은 창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글로벌 파트너들과 굳건한 신뢰 관계를 맺는 기반이 됐다. 실제로 미국 애플이나 엔비디아 같은 세계적 반도체 설계회사(팹리스) 고객사들은 자신들의 핵심 기술을 넘길 정도로 안심하면서 TSMC에 위탁생산을 맡기고 있다.

특히 애플은 지난 2015년부터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생산 전량을 TSMC에 맡기고 있다.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TSMC의 높은 기술력때문이라지만, 삼성전자의 ‘갤럭시’를 경쟁사로 의식해 기술 유출을 우려한 CEO 스티브 잡스가 파운드리 업체를 삼성에서 TSMC로 변경하라고 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TSMC는 세계 파운드리 시장 기업 중 하나인 인텔과도 전략적 제휴 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최근 인텔은 시스템 반도체 생산 미세공정 기술력에 있어 삼성과 TSMC 양사에 모두 밀리자, 차라리 양사에 위탁생산을 결정한 상태다. 특히 최근 7나노 이하 제품을 사실상 TSMC에 맡길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의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나 PC 메인보드에 탑재되는 칩셋 등에 탑재할 시스템 반도체 대부분을 삼성이 아닌 TSMC 몫이 될 공산이 커졌다. 

이는 TSMC가 일찌감치 미국에 짓고 있는 공장의 위치를 파악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Chandler)는 인텔 반도체 제조의 본산이다. 인텔과 TSMC가 시스템 반도체 양산의 베이스캠프를 공유하면서 삼성보다 훨씬 더 밀착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TSMC 창업주인 모리스 창 전 회장 [사진=TSMC 홈페이지]

 
모리스 창 회장의 ‘선견지명’...정부가 과감하게 밀어줘

TSMC는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도 받고 있다. 태생부터 1987년 설립 당시 공기업으로 시작한 영향이 크지만, 민영화 이후 6%의 지분을 보유한 정부가 자본은 물론 인력 육성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히 TSMC 창업주인 장중머우(張忠謀·모리스 창·86) TSMC 전 회장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주면서 과감한 의사 결정으로 투자와 기술 개발에 나설 수 있었다. 지난 2018년 퇴임한 창 전 회장은 ‘대만 반도체의 아버지’로 추앙받을 정도다.

미국의 반도체 대기업이었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에 엔지니어로 입사한 창 전 회장은 1978년 그룹 전체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다1985년, 54세의 나이에 미국을 떠나 대만으로 향한다.

당시 대만 정부는 첨단 공업 육성을 위해 대만공업기술연구원(ITRI) 원장직을 물색했는데, 창 전 회장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창 전 회장은 대만 정부의 요청을 수락했고 미래 산업 육성 차원에서 TSMC 설립 구상에 나선다.

그는 반도체 팹리스(설계업체)들과 경쟁하지 않고 오로지 위탁생산만 한다는 순수 파운드리 개념을 생각해 냈고, 1987년 세계 최초로 파운드리 전문기업을 탄생시켰다. 이후 대만 내 소규모 팹리스 업체들도 TSMC에 반도체 주문 제작을 의뢰해 안정적인 사업 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고, 이는 TSMC의 글로벌 기술 경쟁력을 높인 자산이 됐다.

TSMC 본사가 있는 신주과학단지에는 반도체 외에 다양한 기업이 입주해 있지만, 사실상 대만 정부가 TSMC를 위해 만든 대규모 연구개발(R&D)단지라는게 정설이다. 신주과학단지에 입주한 TSMC는 국내외 유수의 반도체 인재를 영입하는 기반을 다진다. 여기에는 정부 차원의 과감한 장학금 혜택과 산학연계 교육모델이 철저히 뒷받침됐다. 
 

TSMC가 본사와 공장 등이 위치해 있는 대만 북부의 신주과학단지 야경. [사진=TSMC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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