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애플 vs 트럼프, 기업들의 반발에 직면한 무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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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국제뉴스국 국장
입력 2018-09-1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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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교수l]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IT 기업들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인텔, 시스코, 휴렛팩커드, 델에 이어 애플까지 중국에 대한 보복 관세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애플은 지난 5일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보낸 서한에서 미·중 무역전쟁이 미국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애플이 미·중 무역전쟁에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고경영자(CEO) 팀 쿡은 지난  4월 백악관 면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역전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차분한 대응책을 권고한 바 있었다.

애플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통제할 수 없는 민간 기업일 뿐만 아니라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최대 기업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중국 정부보다 훨씬 더 껄끄러운 상대일지도 모른다.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은 “관세를 낼 필요가 없는 쉬운 방법은 중국 대신에 미국에서 상품을 만드는 것”이라는 지난 8일 트위터 메시지가 전부다. 비판자에 대해서 무자비한 독설을 퍼붓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상당히 절제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지적재산권 침해, 사이버 공격을 통한 기술 탈취와 같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피해를 보는 IT 기업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에 왜 반대할까? 애플이 무역전쟁에 반대하는 가장 직접적 이유는 애플의 다양한 제품들이 2000억 달러 규모의 대중 수입에 대한 25% 추가 관세 부과 대상 목록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목록에는 애플 워치, 애플 펜슬, 에어 포드와 같이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상품뿐만 아니라 애플 데이터센터와 애플 스토어에서 사용하는 장비와 기자재 등도 포함되어 있다. 만약 추가 관세가 예정대로 이달 중 부과된다면, 애플은 조만간 상품은 물론 서비스까지 가격 인상을 해야 한다.

가격 인상으로 인한 피해는 중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의 영업 이익의 지리적 분포를 보면 거의 절반 정도가 미국에서 나온다. 2018회계연도 3분기(4~6월) 실적을 보면 전체 영업이익 533억 달러에서 미주대륙은 245억 달러로 약 46%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중화권은 95억 달러로 약 18%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사실은 아이폰 뒷면에 새겨진 ‘캘리포니아에서 디자인되어 중국에서 조립된다(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는 문구에 감춰져 있다. 즉, 애플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대부분이 부품을 조립하는 중국이 아닌 제품을 설계하는 미국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최종적으로 조립되는 상품은 공식적인 무역통계에서는 중국산으로 분류되지만, 그 안에 내장된 부가가치가 높은 대다수의 부품과 소프트웨어는 미국에서 개발·생산되고 있다. 만약 애플 제품에 대한 25% 추가 관세가 부과되어 매출이 감소한다면, 향후 5년간 3500억 달러로 기대되는 영업이익 역시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법인세를 내고 있는 애플의 수익 감소는 미국 정부의 세수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애플 직원과 협력사 직원 및 앱 개발자의 수입 감소로 소득세도 줄어들 것이다. 현재 애플은 미국 내에서 직접 고용하는 직원만 8만명이며, 9000개 공급업체 직원 45만명과 앱 개발자 153만명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는 물론 백악관과 행정부 내에서 점점 더 고립되고 있기 때문에 애플을 필두로 한 IT 기업들의 반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만한 여유가 없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했던 밥 우드워드 기자는 '공포: 백악관 안의 트럼프'에서 백악관 보좌관과 행정부 각료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와 명령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는 걸 막기 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종료를 통고하는 2017년 9월 5일자 서한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우드워드에 이어서 현직 정부 고위 관리가 뉴욕 타임스에 익명으로 기고한 칼럼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이고 부당한 결정에 저항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 기고자로 의혹을 받고 있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의 부인 성명(사실상 충성 서약)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직접 감사 인사를 해야 할 정도로 사태는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다. 각료와 보좌관을 의심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론의 초점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더 격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7월 6일 340억 달러 규모의 818개, 8월 23일 160억 달러 규모의 279개 중국산 제품에 대한 25%의 관세 부과에도 불구하고, 8월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역대 최고 기록을 또다시 경신했다.

USTR의 2000억 달러 관세 부과 방안에 대해 7월 27일부터 9월 7일까지 4821개의 코멘트가 제기되었다는 사실을 볼 때, 만약 추가 관세가 부과된다면 많은 미국 기업들이 직·간접적인 피해를 볼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자율주행과 같은 사물인터넷((IoT)을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5G 네트워크의 구성에 필요한 통신장비의 대부분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IT업체의 우려가 심각하다. 시스코, 델, 휴렛팩커트, 주니퍼 네트워크가 합동으로 USTR에 추가 관세를 반대하며 보낸 서한에 이런 우려가 잘 반영되어 있다. 중국의 불공정 관행으로부터 피해를 보는 미국 IT기업들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반대하는 역설적 상황이 트럼프 대통령의 운신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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