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이수완의 월드비전] 베이비부머가 바라본 아이를 안 낳는 대한민국
필자와 같이 한국전쟁 직후 태어나고 자란 베이비붐 세대에겐 콩나물 시루 같은 비좁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할 것이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전북 전주시 구도심의 학교는 언제부터인지 입학 인원이 계속해서 늘어나자 오전과 오후 2부제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학교 종이 울리고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엔 답답한 교실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로 가득했다. 공놀이, 구슬치기, 술래잡기에 몰두하다 보면 금방 해가 붉은빛으로 변해 서쪽 하늘로 넘어가고 있었고, 흙 묻은 손으로 서둘러 책가방을 챙겨 집으로 향하곤 했다. 지난해 추석 명절 때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어릴 적 추억을 더듬어 학교 교정을 둘러볼 때 느꼈던 적막감인지 허탈감인지 딱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은 지금도 내 뇌리에 박혀 있다. 본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모교 홈페이지를 보니 교원 10명에 전체 학생 수는 고작 77명이었다. 내가 이곳 학생일 때 한 학년에 10개 반 정도였고 한 반에 60여 명으로 그때와 지금의 전체 학생 수를 비교해 본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 학교 건물엔 2005년 중학교도 들어섰다. 지금 그 중학교는 교원 16명에 학생은 67명에 불과했다. 이번 달부터는 두 학교를 묶어 통합 운영된다는 소식이다. 동일 부지 내에서 초등학교·중학교를 교장 1명이 운영하고 행정실, 급식실, 체육관, 운동장 등 인적·물적 자원을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내가 어릴 때 꿈을 키웠던 모교가 인구 감소가 불러온 '폐교의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변했다. 빗나간 인구 폭발론 영국 고전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1766~1834)는 18세기 중엽 산업혁명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빈부 격차, 물가 상승, 실업 등 각종 경제와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인구 증가 억제에서 찾으려 했다. 그는 1798년 처음 펴낸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과 1826년까지 이어진 6차례 개정판을 통해 인구가 식량 생산보다 빨리 증가하기 때문에 출산을 강력하게 억제하지 못하면 인류가 영원히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경고했다. 그는 결혼은 되도록이면 뒤로 미루고, 하류층 임금을 최저 생계비 수준으로 억제하고, 심지어는 창궐하는 질병에 대한 맞춤형 치료약까지 배척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의 책은 영향력이 대단했다. 1800년엔 영국에서 10년마다 인구 센서스를 실시하는 법이 제정됐고, 인류학자인 찰스 다윈과 앨프리드 러셀 윌리스가 펼친 진화론에서도 언급되었다. 기술 혁신과 농업 혁명으로 생산성이 크게 개선된 오늘날 맬서스의 이론은 신빙성이 없는 구시대 유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내가 지방 도시에서 초·중·고교를 다니던 1960~1970년대, 또 서울로 올라와 직장을 잡고 두 자녀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인구 폭발 종말론은 유행했다. 당시 우리 정부가 내놓은 각종 산아제한 정책 중에서 가장 효과를 본 것은 남성 정관 수술이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1980년대 정관 수술을 받고 예비군 동원훈련을 면제받은 남성이 매년 수만 명에 달했다. 나에겐 올해 다섯 살 된 잘생기고 애교도 넘치는 (외)손주가 있는데 2년 후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요즘 내 일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저출산 시대 귀하게 얻은 손주를 돌보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손주가 태어난 2018년은 우리나라의 결혼과 출산 기피 현상이 이미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던 때다. 그해 합계출산율이 0.98로 마침내 1선이 무너졌던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이미 우리나라는 학령인구 급감에 따라 입학생이 '0'인 초·중·고교가 이제 농어촌 읍.면지역 뿐 아니라 대도시에서 크게 늘고 있다. 올해 내 고향 전북 지역에선 27개 초·중·고가 올해 신입생을 단 한 명도 받지 못했다. 폐교나 학교 통폐합은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인구 전문가인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유튜브 강연을 통해 현재 65세 인구가 전체의 30%에 육박하고 있는 일본의 지방 마을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그곳의 폐교된 초등학교는 이미 요양시설로 바뀌었고, 70대 딸이 90대 노모와 함께 옛날의 교실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그 옆방에는 동창생이 거주하고 있다는 전 교수의 설명은 '노인 대국'의 모습을 더욱 실감나게 느끼게 했다. 지방의 소멸, 그리고 텅빈 교실···. '인구절벽'은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한 단어가 된 지 오래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우리 경제는 물론 국방·교육·조세 등 모든 분야에서 거대한 후폭풍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물론 당장 국방을 담당할 병력 부족 문제까지 대두되면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모병제' 논의도 현실화할 조짐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강압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는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배치된다. 출산과 육아 지원금이 매년 늘고는 있다지만 효과는 '글쎄요'다. 지금의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자녀를 낳고 가족을 구성해 나름대로 희망찬 미래를 가꾸어 나간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실은 비정상적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기성세대가 청년과 미래 세대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며 소통하려고 노력을 다했는지 묻고 싶다. 성년이 된 우리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는 첫 번째로 경제가 저성장의 침체기에 진입하면서 청년들의 안정된 일자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우리 베이비붐 세대들은 고성장 시대를 살았다. 열심히 노력해서 몇 년 저축을 하면 집도 마련하고 훗날 자식들이 대학을 나와 취업하면 팔자도 펼 것이라는 희망의 끈으로 버티며 삶을 지탱했다. 반면 지금 많은 젊은이들의 현실은 그런 희망의 끈이 없는 상황이다. 과도한 경쟁 속에서 생활고와 불안의 늪에 빠진 수많은 청년들에게 우리 세대의 '헝그리 정신' 또는 '애국심' 타령이 귀에 들릴 리는 만무하다. 시대는 이제 크게 변했다. 효(孝)라는 개념을 통하여 남성과 가장에 대한 복종이 요구되던 가부장제 사회는 오래전 이야기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work-life-balance)' 사회에서 이제 결혼과 출산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젊은 여성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요즘 젊은이들이 왜 이리 이기적으로 변했냐고 원망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세상 바뀐 것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우리나라 여성은 평균적으로 4명의 아이를 낳았다. 내 아들과 딸이 태어난 1980년대 2명 안팎이던 합계출산율은 1990년대 중반에는 1.5명으로 내려갔다. 2016년(1.16명)을 기점으로 합계출산율은 7년째 하염없이 내리막길을 걷더니 작년에는 0.7명대로 '불명예' 세계 신기록을 다시 갈아 치웠다. 고성장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세계적으로 출산율 하락은 전반적인 추세다. 하지만 한국보다 훨씬 일찍 저출산 문제를 경험했던 선진국들은 출산율 감소가 완만하게 진행되거나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감소 속도는 '인구 쇼크' 수준으로 세계 인구 전문가들의 연구 대상까지 된 상황이다. 이는 그동안 정부의 대처가 너무 무책임할 정도로 비효과적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단 대책 변곡점에 선 한국·일본 우리나라 고령인구는 급속히 늘어나면서 미래 세대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연금 개혁, 노동 개혁, 교육 개혁 등 국정의 3대 개혁 모두 그 실마리를 찾으려면 출산율이 다시 반등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국가의 소멸까지 우려하는 지나친 비관론도 문제 해결에 도움은 되지 않는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우리보다 훨씬 일찍 경험한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이민 정책을 대폭 완화해 외국인 노동자를 유입하거나 육아 휴직 의무화와 제도적 변혁을 통해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사례도 많이 있다. 또 인구 감소가 인구 팽창 이후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으로 시간이 지나면 출산율 증가를 위한 사회적인 환경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인구가 다시 늘어날 것이라며 낙관론을 펼치는 학자도 많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는 일본과 더불어 지금 당장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매우 중차대한 변곡점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 최고령 국가인 일본은 지난해 출생아 수가 40년 전의 거의 절반인 80만명 아래로 내려갔다. 또 앞으로 30년 정도 지나면 인구 10명 중 4명은 노인이고 어린이와 청소년은 1명뿐이라는 전망이다. 위기감을 느낀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달 의회 연설에서 일본이 저출산으로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또 오는 4월 1일 아동가정청 출범과 함께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출산율 제고 대책을 논의 중이다. 일본의 합계출산율(2021년 기준 1.3)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10년 전에 비해 절반 수준인 25만명 아래로 내려갔다. 통계 당국의 예측이 맞는다면 2050년쯤 대한민국 인구 10명 중 4명 이상이 65세 이상인 노령층으로 OECD 국가 중 일본을 제치고 최고령 국가로 등극한다. 그동안 우리의 백화점식 저출산 대책이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함께 진지하게 종합적으로 점검할 때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16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기존 저출산 대책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아이돌봄 서비스 고도화 방안"을 내놓았다. 긴급 및 단시간 돌봄 등 맞춤형 서비스로 질적 개선을 도모하고, 국가자격제도를 통해 돌봄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고, 민간 서비스 제공기관 등록제를 내년부터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아이돌봄 서비스 현재 직장을 가진 젊은 부부들의 최대 고민거리는 매일 같이 어린 자녀를 누군가에게 안심하고 맡기는 일이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남녀 직장인들이 일과 양육을 병행하며 어린아이를 키우기 힘든 상황은 우리나라 출산율 급락의 최대 이유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여성은 높은 교육 수준에도 불구하고 취업률(50%대)은 70%대를 넘는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등 다른 회원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또 육아 휴직 제도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유럽 국가들을 보면 육아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이자 여성 취업률이 높아지고 출산율도 차츰 회복되는 모습을 보인 사례가 많다. 재원 마련 문제 때문에 저출산 관련 예산을 정부가 큰 폭으로 한번에 늘리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모든 정책과 예산은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정부의 지원책을 최대한 돌봄 서비스 등 육아 친화적 인프라 구축에 우선을 두어야 할 때다. 필요하다면 지난해 민주당이 제안한 '국가 돌봄 책임제' 도입도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정치권은 물론 민간과 사회단체에서 진지한 토론을 활발하게 전개할 때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기후변화처럼 단번에 해결책이 나올 수는 없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미래 세대와 교감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출산율도 상승곡선을 탈 것으로 기대한다. 1990년대 초·중반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하던 X세대인 내 아들과 딸은 20년 정도 지나면 은퇴를 하고 노후 생활로 접어들게 된다. 살다 보니 20년이라는 세월은 금방이다. 20대 중반을 넘긴 우리 손주와 그 또래들은 결혼과 출산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 칼럼을 마무리하면서 나의 모교(완산초등학교) 교훈을 소개하겠다. '큰 꿈을 품고 즐겁게 배우며 씩씩하게 자라는 어린이'. 언젠가 학교 운동장에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다시 가득차길 희망하면서..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
[이수완의 월드비전] 일대일로· 페트로 위안 …중동에 펼쳐진 '차이니스 드림'
1945년 밸런타인 데이(Valentines's Day·2월 14일)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에서 기념비적인 날이다. 크림반도 얄타에서 미·영·소 연합국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그는 수에즈 운하에 정박한 미 해군 ‘USS 퀸시’호 갑판 위에서 압둘 아지즈 이븐 사우드 국왕을 만난다. 사흘간 진행된 선상 회담에서 양국 간 지정학적 동맹 관계에 대한 기본 프레임에 합의한다. 당시 대규모 석유 개발과 함께 전제적 군주정치의 기반을 다져가던 이븐 사우드 국왕은 루스벨트에게 왕실의 안위와 군사적 지원 약속을 받는다. 대신 사우디산 원유를 원하는 만큼 ‘합리적 가격’에 미국에 공급해주기로 약속한다. 안보와 경제의 전형적인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이 성사된 것이다. 사우디-중국 밀착에 요동치는 중동 정세 두 사람 간 만남은 지구촌의 '화약고'로 꼽히는 중동에서 80년 가까이 지속된 미·사우디 동맹 관계의 역사적 출발선이다. 최근 미국과 중동의 디커플링, 미국의 빈자리를 파고드는 중국의 행보는 역내 경제는 물론 국가 안보 측면에서 다자간 복합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 이후 미국과 불편한 외교 관계를 이어가면서 중국·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의 앙숙으로 중동의 패권을 두고 다퉈온 이란은 미국과 체결한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가 무산되고 반정부 시위 탄압에 대한 서방의 비판에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미국 견제'라는 목표 아래 공동 전선을 펼쳐왔던 중국이 사우디 등 걸프만 왕정국가들과 에너지 분야 혁신 등 경제 협력뿐 아니라 호르무즈 해엽 3개 섬에 대한 영토 분쟁과 군사·안보 협력 문제까지 논의를 하자 이란은 발끈했다. 이에 당황한 중국은 황급히 이란 달래기에 나서기도 했다. 중동 내 외교 질서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형국이다. 2010년대 셰일(shale) 혁명 이후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변한 미국은 원유 수입이 감소하며 중동과 디커플링이 심화되고 있다. 이를 틈타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 중국은 한걸음 한걸음 세계 원유시장을 통제하는 힘을 키우고 있다. 수입 원유 중 50%가 중동산인 만큼 중국은 이 지역에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 확보에 공을 들이면서 다각적 경제 협력과 무역 파트너십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특히 석유 의존 경제 탈피와 경제 개혁을 위해 산업 다각화와 대규모 국책사업을 추진 중인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등 다수의 중동 국가에서 항만, 산업단지, 배후 도시 건설을 주도하며 현대판 육해상 실크로드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불을 댕기고 있다. 사우디와 걸프만 국가들이 중국과 밀착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관심을 돌리자 중동 국가들의 소외감은 커지고 있다고 CNN 등 주요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 특히 군사력이 미약한 걸프만 국가들로서는 미국이 지역안보에서 손을 뗐을 때 새로운 안보 협력 파트너가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은 일종의 위험 회피 카드인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이나 러시아와 달리 시리아 내전이나 이란의 핵 개발, 아랍과 이스라엘 간 평화 협상 등 중동 지역 주요 골칫거리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었다. 소위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외교원칙이 중동에서는 지켜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12월 시진핑 주석의 사우디 방문은 중동에 대한 적극 개입으로 방향 전환을 공식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 주석의 방문은 지난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 위기 타개 차원에서 석유 증산을 요청하기 위해 사우디를 찾았다가 '빈손'으로 돌아간 것과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또 1945년 루스벨트-이븐 사우드의 'USS 퀸시’호 회동과는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3박 4일 순방 기간에 시 주석은 제1회 중국·아랍 정상회의와 중국·걸프협력회의(GCC) 콘퍼런스에 참석해 연설하고 최소 17개국 정상과 연쇄 정상회담을 하며 아랍권과 관계를 다졌다. GCC는 사우디, UAE,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등 6개 산유국의 협력기구다. 사실상 수니파 이슬람 국가의 모임으로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중국은 2020년 EU를 제치고 GCC의 최대 무역 거래국이 되었다. 현재 GCC 6개국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마무리하고 있다. 시 주석이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난 후 발표된 4000자에 달하는 공동성명은 에너지 분야 혁신, 우주 개발, 디지털 경제, 인프라 건설, 이란 핵 프로그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우호 협력을 다짐하고 있다. 사우디와 중국의 밀착은 사우디·미국 관계뿐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질서의 대변화를 의미한다.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 외교장관은 미국과 중국 두 나라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우린 결코 이를 제로섬 게임으로 여기지 않습니다(We don’t see it as a zero-sum game by any means)." 그의 말이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과 사우디의 뉴파트너십 구축은 양국에 중동의 복잡한 역학구조에 얽매이지 않는 실익 추구와 새로운 기회 창출을 위한 도전임에 틀림없다. 페트로 위안 시대 올까?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자신들 룰에 따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 손꼽힌다. 미국은 엄청난 군사력으로 중동의 원유 공급을 좌지우지했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은 경제와 화폐의 연결고리였던 금본위제를 일방적으로 폐지한 후 달러는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하지만 1974년 사우디와 손을 잡고 원유 대금을 달러로 지급하는 데 합의하면서 지금의 기축통화국 위치를 공고히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을 계기로 양국이 달러화 대신 위안화를 통한 원유 결제, 즉 '페트로 위안(petro yuan)' 체제 등 세계의 새로운 에너지 질서 구축을 위한 작업에 나섰다고 평가하고 있다. 졸탄 포자르(Zoltan Pozsar) 크레디트스위스은행 애널리스트는 고객들에게 보낸 투자 메모에서 중국이 최근 급변하는 지경학적 변환을 틈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룰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이 달러화 외환보유액을 무기화하자 중국은 세계 각지에서 비(非)달러화 원유 결제를 늘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미 산유국 협의체인 오펙플러스(Opec+)의 주요 회원국인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3국은 이미 중국에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원유를 팔고 있다. 중국이 이들 3개국과 맞먹는 원유 매장량을 가진 GCC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한다는 것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한다고 할 수 있다. .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제재에 시달려온 러시아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달러화로 거래하는 스위프트(SWIFT) 국제은행 간 금융서비스 대신 중국 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로 갈아탔다. 이란,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도 현재 중국과의 일부 거래를 위안화로 결제하고 있다. 미국 달러화 리스크의 위험 분산을 위해 CIPS를 선택하는 국가들이 늘어난다면 오랫동안 에너지와 상품시장을 기반으로 기축통화 자리에 오른 달러화의 지위에도 차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SWIFT 자료에 따르면 위안화는 국제결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 이내지만 최근 엔화를 추월해 달러, 유로, 파운드화에 이어 세계 4대 결제통화로 등극했다. 중국은 최근 일대일로를 명분으로 중동뿐 아니라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등 전 세계 저개발 국가에 통화스와프를 통한 구제금융성 자금을 제공하거나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들 국가의 위안화 사용도 크게 늘리면서 궁극적으로 '위안화의 기축통화' 진입을 노리고 있다. 즉, 일대일로와 기축통화 구상은 중국의 글로벌 패권국 도약을 위한 두 개의 큰 기둥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지만 아직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우디가 50년간 이어온 미국과의 '페트로 달러 협정'을 깨고 원유 대금을 달러화 대신 위안화 결제로 전면 변경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직 대외적으로 사우디와 중국은 양국이 '페트로 달러'의 포기와 위안화 표시 원유 계약 문제를 논의했다는 소문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들은 사우디가 중국으로 수출하는 원유 일부에 대해 위안화 결제를 허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페트로 달러 협정이란' 중동의 1차 오일 쇼크 이후 미국과 사우디가 1974년 6월 원유 대금 결제를 달러를 통해서만 하겠다고 합의한 것을 이른다. 석유를 달러로만 사야 하면 세계 각국은 더 많은 달러가 필요할 테고, 달러 가치는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중동 산유국은 원유 판매 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미국 금융기관에 예치하거나 미국 국채에 투자했다. 미국은 다시 이 돈으로 상품을 수입해 세계에 돌려주는 달러 순환 체계가 세계경제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1971년 미국이 금 태환을 중지한 이후 가치가 폭락한 달러가 다시 한번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공고히 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달러는 막강한 군사력과 함께 미국의 패권을 지탱하는 든든한 두 개의 기둥이 됐다. 만약 사우디가 중국과 위안화로 원유 거래를 시작하고 다른 국가들도 이에 동참하면 중국의 '페트로 위안화' 시대라는 꿈은 현실로 성큼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직 자본시장 자유화 수준이 선진국들에 비해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페트로 위안 시대를 향한 당근책으로 중국은 무역과 금융거래에서 위안화의 금태환을 추진 중이다. 중국의 금융 안전망(financial saftey-net)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완화시키기 위해서다. 중국의 페트로 위안화 드라이브가 성공하려면 금 태환뿐 아니라 투자가들로 하여금 무역 거래는 물론 비무역 분야에서도 위안화를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바로 국내 자본시장 육성이다. 외환 헤지 등 대규모 외자 유출에 필요한 금융 시스템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세계 각국의 정책 입안자와 기업들 그리고 투자가들은 세계 에너지 시장의 혁신과 페트로 위안화를 향한 중국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페트로 달러 유입이 미국에서 금융 사업을 크게 성장시켰듯이 페트로 위안화가 중국의 금융 혁신에도 일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에너지 혁신으로 중국에 값싼 에너지가 충분히 공급된다면 중국으로 이동하는 세계의 기업들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
[이수완의 월드비전] 매서운 경제한파..그래도 올해 희망을 품어야 하는 이유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작년 이맘때 대부분 전문가들은 2022년 세계 경제를 팬데믹 이전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회귀점으로 규정했다. 2021년 글로벌 경제는 코로나19 쇼크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국의 무차별적인 경기 부양책 덕분에 5% 넘게 V자 반등을 했다. 지난해는 '위드 코로나'라는 일상 회복과 2021년 남발했던 각종 완화정책의 축소가 공존하는 한 해였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경제가 4.1%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3% 내외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대란, 중국의 '제로 코로나' 봉쇄 조치와 미국 연준의 초강력 긴축과 금리 인상 등 우리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사실 3% 정도 성장이라도 아주 절망적인 수치는 아니다. 팬데믹 발생 이전인 2018년·2019년과 엇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2023년도 전망보고서를 보면 대부분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과 힘든 싸움을 계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작년보다 성장률이 다소 둔화되겠지만 심각한 경기 침체는 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잠재성장률로 추정되는 2%를 밑도는 1.6%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몇 가지 긍정적인 신호 새해 벽두부터 실물경제에 한파가 몰려오면서 올해에도 가계든 기업이든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하는 상황임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와 다른 몇 가지 긍정적인 신호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지난해 그토록 세계 경제를 억눌렀던 고물가와 가파른 금리 인상 속도에 대한 우려가 점점 수그러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수요 감소와 재고 증가 그리고 주택 가격 하락으로 지난해 4분기 이미 정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3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7.1%로 아직 높은 수준이지만 하향 안정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올해에도 인플레이션 통제를 위한 중앙은행들의 긴축 강도가 각국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성장 둔화와 함께 인플레이션도 함께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10월 말(4.23%) 대비 크게 하락한 3.8%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이리하여 달러화 급등세도 주춤한 상태다. 달러화 가치와 미국 국채 수익률 하락은 한국은행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에 향후 금리 인상 속도를 완화시킬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있다. JP모건체이스는 최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피크를 3.75%에서 3.5%로, 인도 준비은행의 기준금리 피크를 6.75%에서 6.25%로 하향 조정했다. 세계 3대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의 글로벌 수석 경제분석가 세스 카펜터(Seth B. Carpenter)는 지난해 세계 경제를 짓눌렀던 공급망 차질과 노동시장의 대혼란이 완화되면서 인플레이션도 하락하고, 중앙은행도 긴축의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등 각국이 성장률을 회복시키기 위한 정책적 선택지를 늘려갈 수 있다고 최근 전망했다.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전 세계 경제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있지만, 지난해 미국 연준의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현재 연방기금(FF) 금리 목표치(4.25~4.5%)는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공개된 위원들의 전망을 나타내는 이른바 점도표는 금리 인상이 5.1%(중간값) 수준에서 멈출 것임을 예고했다. 이를 보면 이번 달 31일 개최될 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추가 인상한 뒤 이후 한 차례 더 금리 인상에 나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더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올해 상반기 중 금리 인상을 일단 멈추고 물가 상승률과 고용 수준을 점검해가며 금리 인하로 피벗(Pivot·정책 전환)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고금리로 인해 미국 경제 침체가 가시화한다면 조기에 통화정책 완화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경제 연착륙(soft landing)을 위해 연준이 이번 달 0.25%포인트 또는 0.5%포인트 추가 인상을 마지막으로 단행한 이후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조정하지 않고 유지했다가 내년부터는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월가에서 나오는 이유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5% 또는 그 아래에서 멈춘다면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 미국 금리를 어느 정도 추종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올해 기준금리를 3%대 중·후반에서 안정화시킬 수 있는 호재다.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급격한 내수 경제 침체와 주민 반발에 직면했던 중국 당국이 지난달 방역과 통제를 대폭 완화한 것도 올해 우리에겐 주요 변수다. 일단 입국자 격리 조치 폐지로 인해 한국, 일본, 태국 등 주변국 관광산업이 수년 만에 다시 활기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춘제(설) 연휴 귀성 기간 전후로 혼란이 당분간 가중될 수 있지만 올해 1분기를 지나 '위드 코로나' 정책이 정착되면 중국은 소매판매 증가와 함께 경제 회복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세계 주요 투자은행들은 앞다퉈 중국 성장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올해 중국 성장률이 지난해 2.7% 내외에서 4.9%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시진핑 체제 3기 출범과 함께 경제를 안정적 성장 궤도로 올리겠다는 중국 당국의 강력한 의지는 지난달 15~16일 열린 연례 중앙경제공작회의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지난해 시 주석의 핵심 경제 어젠다인 '공동 부유'라는 단어가 거론되지 않은 것도 중국이 규제 대상으로 꼽았던 '빅테크' 기업에 대한 통제를 서서히 풀고 있다는 신호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하의 핵심 정책 중 하나로 대외 개방이 언급된 것은 세계 최대 무역대국인 중국이 폐쇄경제로 회귀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로 수출 대국인 우리에겐 긍정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공급망 혼란과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기록적인 물가 상승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은 곳은 유럽일 것이다. 유로존 대표 국가인 독일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축소와 경기 침체로 힘든 한 해를 보냈으나 소비자 심리나 기업체감지수가 최근 급락세를 멈추고 바닥을 다지는 모습이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유로존 경제가 긴축정책과 에너지 위기의 영향으로 0.2%포인트 정도 수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특이한 것은 고물가와 경기 침체 충격에도 불구하고 유로존 실업률이 6.5%대로 꾸준히 하향 안정화됐다는 사실이다. 올해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은 거세질 전망이다. 겨울철 혹한으로 전쟁 수행이 극도로 힘들어지고 중국과 인도까지 서서히 러시아에 대해 '거리두기'를 하는 모습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평화협상론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무르익고 있다.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 영향으로 유로화와 엔화, 파운드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해 크게 올랐던 '킹 달러(King doallr)' 현상이 지난해 말부터 연준의 비둘기파적 피벗 기대감으로 퇴조하고 있는 것도 우리 경제에 청신호다. 지난해 10월 1444원대까지 치솟았던 환율은 현재 1270원 아래로 안정을 찾았다. 지난달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의 스티븐 추 수석 전략가는 보고서에서 올해 달러 가치가 추가로 하락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여하튼 올해에는 긴축에 대한 연준의 속도 조절로 지난해와 같이 국제 외환시장이 급격하게 흔들리지는 않을 전망이다. 아시아 고성장 시대 새해를 맞이하면서 또 하나의 특징은 아시아 지역에 대한 경제 전망이 타 지역에 비해 긍정적이라는 사실이다. 먼저, 앞에서 언급했지만 중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 폐기로 인한 민간소비 회복에 힘입어 5%가까운 수준으로 성장률이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수십 년간 인구 고령화와 장기 저성장 또는 역성장으로 평균 0.8%대 성장률을 보였던 일본 경제는 올해 1.2% 성장할 것으로 모건스탠리는 전망했다. 일본은행은 오랫동안 일본 경제를 견인해온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전 총리의 경제정책)의 한 축인 금융 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에 대해 궤도 수정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아베노믹스를 지지해온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 임기가 4월 종료되면서 국가 경제에 부메랑이 된 아베노믹스 철회를 공식화할지 여부가 큰 관심사다. 특히 인도는 올해와 내년 6% 이상 고성장을 이어가고 10년 내로 세계 3위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국제통화기금(IMF) 등 다수 기관들이 전망하고 있다. 인도가 선진국 수준인 디지털 인프라 환경을 기반으로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는 오프쇼어링(offshoring), 제조업 투자, 에너지 변환이라는 경제 호항의 3가지 메가 트렌드 물결을 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구로 볼 때 중국, 인도에 이어 셋째로 큰 이머징 마켓인 인도네시아도 경제 개혁과 제조업 육성으로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며 경제 규모가 한국을 추월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IMF는 글로벌 공급망 혼란으로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보았던 개발도상국 경제가 올해에는 선진국에 비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아시아 경제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인다는 것은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 극복과 성장률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일조하는 긍정적인 요소다. 아시아 경제의 정상화는 유럽 국가의 수출 수요를 증대시킬 뿐 아니라 세계적인 공급망 위기를 해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기를 쌓아라 지난해에는 팬데믹 이후 세계 경제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회귀점으로 예상됐지만 세계적인 석학인 애덤 투즈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교수 말처럼 전쟁과 인플레이션 자연재해 등 '복합 위기(polycrisis)'의 한 해였다. 올해도 경제 한파를 이겨내기 위한 힘든 한 해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경제는 미래 세대 먹거리 찾기에도 매진할 때다. 또한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혁과 노동시장과 임금체계 개편 등 우리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과감히 제거하면서 힘찬 도약의 기회를 노려야 할 때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 손흥민은 오랫동안 아버지의 혹독한 기본기 훈련을 통해 실력과 자신감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자신의 실패를 딛는 힘, 긍정의 에너지 그리고 겸손한 태도까지 모두 아버지의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아버지 손웅정씨는 프로 선수 시절 스피드가 뛰어난 측면 공격수였다. 그의 저서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를 보면 손웅정씨는 자신은 상대 선수 한 명 제칠 발기술이나 개인기를 완성하지 못한 채 그래도 성적을 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가 몸이 금방 망가져 조기 은퇴한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우리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가계는 눈앞의 단기적 이익에만 급급하지 말고 좀 더 멀리 내다보며 기본기를 차곡차곡 쌓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
-
-
[이두수의 절차탁마] 명품 한류의 근원, 홍익인간 정신과 '코리안 드림'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US News & World Report에서 발표한 2022년 세계 10대 강국(the World's most powerful countries)에 한국이 6위로 랭크되었다(1위 미국, 2위 중국, 3위 러시아, 4위 독일, 5위 영국, 6위 한국, 7위 프랑스, 8위 일본, 9위 아랍 에미리트, 10위 이스라엘). 믿기지 않는 순위지만 산출 근거로 대상 국가의 세계 주요 뉴스에 노출되는 빈도, 정책결정권자의 영향력, 세계 경제에 대한 기여도, 외교정책, 군사예산 규모, 국제사회에 주는 신뢰도 등을 주요 고려 대상으로 하여 매긴 순위이기 때문에 신뢰성이 꽤 높아 보인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이 밖에도 문화 영향력(Cultural Influence)에서는 세계 7위,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선 세계 6위를 차지한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이제는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춘 선진국이라고 하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외부에선 이렇게 우리나라를 높이 평가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국제적 순위평가에서 높은 평가를 대하면서도 우리 자신은 이런 결과를 잘 믿으려 하지 않으며 우리가 선진국 시민이라는 그런 느낌도 없다. 남들은 우리나라가 세계를 리드할 만한 리더십과 뉴스 생산력 그리고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었다고 보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엔 아직도 이 나라가 미국이나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남아 있으며 봉건적 형태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반제·반봉건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노사 문제를 해결해 가는 능력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와 배분 문제, 그리고 정당 간 극한 투쟁을 보면 솔직히 우리는 선진스럽기보다는 후진스럽기 짝이 없다. 그것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나라라는 자부심이 국민적 자부심이 되지 못하고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되었고, 그 국민적 성과에 나라고 하는 개인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늘 우리는 어느 계층에 있든 소외감을 느낀다. 우리라는 우리 우리는 조직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면 ‘내부총질’이라는 거친 용어를 쓴다. 내부 비판을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은 작은 조직이나 큰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는 ‘왕따’라는 따돌림으로 나타나고 종교계에서조차 다소 다른 의견을 내거나 의견 일치가 되지 않으면 상대를 ‘이단’으로 몰아세운다. 이렇게 나와 같지 않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하고 조직의 ‘순혈’ 혹은 단일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아무래도 이런 사고를 가지게 된 데에는 우리의 생활환경이 협소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국토라는 공간만이 아니라 외부와 교류가 적어지면서 우리는 작은 우리 안에 갇혔기 때문이다. 국토의 분단은 우리의 의식까지 이렇게 소심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가 ‘우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지만 우리라는 말에는 너와 나라고 하는 구분이 있어야 함에도 너와 나는 언제나 같은 시각, 같은 사고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잠재해 있다. 엄연히 너와 나의 생각이나 취향이 다른데도 말이다. 우리라는 말은 너와 나로 분립된 자기 주도적 독립된 자아가 다시 만나 우리가 되는 것이다. 각자의 독립된 자아가 서로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필요가 있어야 하며 인정과 배려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는 해외에서 이주해온 다문화가정, 중국의 조선족, 그리고 북에서 온 탈북민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는 다양해졌다. 갑자기 찾아온 이 다양함에서 우리는 우리의 단일주의 의식을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가가 우리 사회의 가장 긴급한 문제가 되었다. 며칠 전 나는 한 탈북민을 만났다. 1997년에 왔으니까 벌써 25년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 그이지만 그는 여전히 탈북민이다. 북한처럼 이남에도 출신 성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자신에게 붙은 꼬리표를 뗄 수 없는 사회라면 탈북민을 대하는 남한 사람들의 시각이 변하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소박한 바람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정치 이야기를 좋아해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탈북민이 어느 정당이나 정치인을 비난하면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지면서 상대가 엄청 화를 낸다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본인들도 한국 정치와 정치인들을 맹비난하면서도 탈북민이 그들을 비난하면 “너는 뭐 하러 남에 왔니? 그리 싫으면 북으로 돌아가라”며 화를 낸다는 것이다. 자신을 같은 주민이나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방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탈북민을 도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우린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우릴 ‘먼저 찾아온 통일’이라며 우리를 치켜세우지만 그 말은 우리를 이용해먹으려고만 하지 통일의 동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선물을 주려고 하지 말고 사명감을 주어라. 동정이나 온정을 베풀지 말고 일자리를 주어라. 탈북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들어보려 하지 않고 정부나 교회는 우리에게 교육만 시키려 한다.” 탈북민들이 ‘먼저 온 통일’ 맞다. 통일은 나의 삶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의 삶을 존중해주면서 더불어 사는 삶이다. 지금 북에서 살고 있는 조선 인민들을 생각하면 탈북민들은 자기 삶의 의지와 결정권을 더 강하게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과 하나 못 되는데 어떻게 북한과 통일할 수 있겠는가. 교육은 우리가 받아야 한다. 성장과 삶의 환경이 전혀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교육은 우리가 필요하다. 같이 사과도 따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같이 체육대회도 하고, 같이 김치도 담그며 사고의 방식은 다르지만 더 나은 나라와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비전으로 같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민족의 비전, 코리안 드림 우리 민족의 시원이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먼 옛날 단군이라는 분이 ‘세상의 모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자’는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셨다는 역사 기록으로 우리는 반만년 전 옛 조선을 우리 민족의 시원으로 보고 있다. 반만년 역사를 이어오며 우리 선조들은 국난을 당할 때마다 이 건국정신을 되새기며 견디고 싸워 이겨 나왔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내외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이때에 우리를 다시 하나 되게 만드는 것은 역시 우리 역사의 첫 출발지인 건국정신을 되새겨보는 것이다. “온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하겠다(홍익인간). 그러기 위해 참된 진리로 다스리겠다(제세이화)”며 빛나는 아침의 나라(조선)를 열었다는 이 이야기는 사실 서구 민주주의 기틀이 된 미국 독립선언서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이 한 문장보다 더 미려한 선언문이 아닌가. 이 건국의 비전은 현재 남이나 북이나 같이 배우고 있고 나아가 동아시아 전역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는 이야기다(단군신화와 홍익인간 정신은 중앙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도 비슷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실제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지 모른다. 한류가 얼마나 세계인들의 가슴을 감동으로 물들이는지 잘 모른다. 멋 옛날 주변국에서 우리 민족을 평할 때 ‘접화군생’ ‘군취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라고 말할 때 그 말이 그저 집단적으로 음주가무를 좋아했다는 말로 그 의미를 축소 해석해 그동안 우리 스스로를 열등민족으로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접화군생(接化群生)이란 말 속에는 집단 속에 파묻혀 갈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대중 사회에서 창조적 개인으로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개인과 집단이 유기적이고 교호적 상호관계를 맺으며 이를 협동적으로 진전시킨다는 화합과 상생의 사상이 깃들어 있으며, 요즘 한류는 이러한 사상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이 민족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고 평했다. 우리는 이집트처럼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거나 로마의 도로와 건축물, 중국의 만리장성 같은 빼어난 유산을 만들거나 거대한 제국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역사의 뜻이 ‘아가페’라고 한다면 우리는 신의 사랑을 제대로 찾아 나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가시 없는 장미를 볼 수 없듯이 아픔 없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도 만날 수도 없기 때문에 인류역사 자체가 고통의 길이요, 수난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 역사를 타고르의 <기탄잘리>에 빗대어 이렇게 말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야말로 큰 길가에 앉은 거지 처녀다. 수난의 여왕이다. 선물의 꽃바구니는 다 빼앗겨버리고 분수 없이 왕후를 꿈꾼다고 비웃음을 당하고 애끓는 지친 역사다. 그래도 신랑은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 역사가 고난의 역사라고 말한 것은 우리 건국의 선조들의 건국이념이 실현되지 못한 채 외세에 의해 고조선이 망하고 400년 만에 다시 일어섰으나 삼국으로 쪼개지고, 다시 고려로 쪼그라들고 조선에선 더 왜소해지고 약화돼 끝내는 일본에 국체를 빼앗기고 신음하다가 마침내 독립을 이루었으나 우리의 꿈과 기상은 일어나지 못하고 다시 분단되는 이 슬픔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뜻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관통하는 그 뜻이란 무엇이냐, 바로 홍익인간의 비전을 실현하여 하늘이 곧 사람이라는, 모든 사람들이 하늘의 마음으로 인류를 위해 봉사하여 이 땅에 평화세계를 실현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한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역사를 통해 패망과 죽음과 온갖 실패의 시련을 겪게 하고 견디게 하며 이 민족을 길러왔다는 것이다. 이 민족을 세계적인 선도국으로 만들기 위해 하늘은 어떤 뜻을 한반도에서 진행해 왔는지 최근의 역사를 돌아보자.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유행으로 검역(Quarantine)과 격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쿼런틴의 어원은 40일 분립을 의미하며 그 어원은 성서에서 왔다. 성서에서 40일의 예를 보면 노아 때에 방주(方舟)가 아라랏산에 머문 후 비둘기를 내보낼 때까지 40일 기간, 모세의 바로궁중 40년, 미디안광야 40년, 가나안 복귀의 광야(曠野) 40년, 예수의 광야고난 40일, 부활 후 40일 등 40수는 고난을 통한 분립 혹은 새롭게 나아감의 의미가 있다. 이 40수의 의미를 우리 역사에 대비해 보면 1905년 을사늑약은 실제로 국권이 상실된 것으로 보아 1945년 광복될 때까지 40년간은 일본에 의한 식민통치기로 민족의 암흑기, 1985년까지 한반도의 분단기, 그리고 2025년까지 통일기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보면 2025년까지는 우리는 어떻게 하든 통일의 전기를 마련해야 하는 역사의 뜻이 있다. 선조들이 독립을 위해 많이 애썼지만 우리 힘으로 독립을 맞이하지 못하고 외세에 의해 갑자기 찾아온 독립은 광복 후 엄청난 혼란기를 가져왔다. 이 혼란의 와중에 남과 북은 3년 후 정식으로 정부를 출범시키고 전쟁까지 치르게 되어 분단은 고착화되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1985년 남과 북의 이산가족이 처음으로 상봉하고 예술단의 상호 교환 방문으로 남북 화해의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3년 후인 1988년엔 서울 올림픽을 치르면서 공산과 민주 진영의 냉전 종식의 전기를 마련한다. 이제 3차에 걸친 40년이 지나는 2025년까지 3년 남았다. 지금 상황은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쏘며 핵개발로 세계를 위협하는 매우 불안한 상황이지만 지금 이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갑자기 나타난 코로나 바이러스의 팬데믹 현상 추이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국의 대만 침공설 등 국제 상황은 어떻게 요동칠지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혼란한 때에 우리는 노자가 말하듯 우리 민족의 근원, 원점으로 돌아가 민족의 비전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옛적의 어느 날, 만주 평원의 거친 풀밭 위에 먼동이 틀 무렵 훤히 밝아오는 그 빛이 흥안령 마루턱을 희망과 장엄으로 물들일 때 몸집이 큼직하고 힘줄이 울툭불툭하고 널따란 이마에는 어진이의 기상이 서려 있고 눈빛에는 날쌤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사람들이 솟아오르는 해를 향해 “홍익인간이다!”라고 외치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진리의 빛으로 하나님 같이 서로를 섬기며 광명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 위대한 함성. 이제 지난했던 고난의 역사를 뚫고 홍익인간이라는 ‘코리안 드림’이 전 세계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때가 된 것이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필자 소개 - 이두수(54)는 5년 전부터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노동 현장의 삶과 애환을 그림과 글씨로 표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건설 노동자로 일하기 전 시민단체인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8년간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
-
-
[이수완의 월드비전] 팔순에도 건강은 이상무? 바이든, 트럼프와 '운명'의 재대결 선택할까
지난달 18일 CBS 일요 TV쇼 '60 Minutes'에서 스콧 펠리 진행자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재선에 도전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했느냐고 물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답변은 솔직했다. 다시 출마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그건 의사일 뿐이다. 그러나 나의 재선 출마가 확고한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But it's just an intention. But is it a firm decision that I run again? That remains to be seen)."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 달 20일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팔순을 맞는다. 미국 중간선거가 실시된 후 2주 정도 지날 무렵으로 80세 생일을 계기로 미국 언론은 그의 건강 상태와 재출마 의지를 본격적으로 파헤칠 것으로 보인다. 그는 50년 전인 1972년 29세 나이에 최연소 상원의원 당선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그에겐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 당선인이라는 타이틀이 더해졌다. 역대 대통령과 달리 취임 직후부터 바이든의 재출마는 지대한 관심사였다. 바이든은 지난해 79세 생일을 가족과 함께 델러웨이주 윌밍튼의 고향집에서 조용히 보냈다. 올해는 큰손녀딸 나오미 바이든(28) 결혼식이 백악관에서 80세 생일 바로 전날인 11월 19일 열릴 예정이다. 나오미 결혼식 참석차 이미 워싱턴에 도착한 가족과 친지들을 위해 바이든 대통령의 생일 파티는 백악관에서 치러질 예정인지라 언론의 집중 조명을 피할 수가 없다. 바이든이 자신의 재선 도전 가능성을 열어 놓은 상태에서 나이와 건강 논란이 다시 불붙지 않을까 백악관 참모들은 걱정하는 분위기다.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2년 후 대선에 출마해 승리한다면 82세 나이에 2기 임기를 시작하고 그의 후계자가 취임식을 할 때는 86세다. 2020년 대통령 선거운동에 뛰어들기 전부터 그에겐 '실언 제조기(gaffe machine)'라는 별명과 함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대해 의문부호가 따라다녔다. 이를 의식해 선거 운동 기간 자신을 차세대 리더들과 연결고리, 즉 '가교 후보(bridge candidate)'라고 일컫기도 했다. 그리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러닝메이트였던 카멀라 해리스(57) 현 부통령이나 다른 젊은 인물이 2024년에 대선 주자 배턴을 이어받으리라는 분석도 적지 않게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몸이 더욱 수척해지고 머리도 더 빠졌으며 걸음걸이도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지난 4월엔 연설 직후 허공에 손을 내밀고 악수하는 듯한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백악관은 대통령의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야당과 일부 보수 언론은 공개석상에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할 때마다 건강이상설이나 치매설을 제기하곤 했다. '60 Minutes' 인터뷰에서 바이든은 자신은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문제 없이 대통령 일정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반도체산업 육성법, 인플레리션 감축법(IRA)과 같은 입법 성과에 대해서도 "늙은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나"라고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10일 후 사회 각계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최근 교통사고로 사망한 재키 월러스키 하원의원 이름을 부르며 "재키, 여기 있나요"라며 찾는 듯한 모습을 두고 백악관 기자회견실에서 입씨름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선 재출마와 관련해 바이든 발언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오랜 정치적 역정에서 모든 결정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바이든의 성격상 그는 실제로 최종 결심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의 결단은 오는 11월 8일 실시되는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그는 '60 Minutes'에서 "내가 할 일을 하다가 다음 선거 뒤에 알맞은 시간에, 내년으로 접어들 때 무엇을 할지 결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달 초 'CNN Tonight'의 제이크 테퍼와 인터뷰하면서 만약 자신이 다시 출마한다면 트럼프를 이길 자신이 있다고 했다. 나이보다 능력으로 유권자들이 대통령을 판단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하면 트럼프가 출마한다면 고령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출마해서 '운명'의 재대결을 생각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2024년 대선 전초전인 미국 중간선거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패배에 대한 불복 운동과 연방수사국(FBI)의 트럼프 자택 압수수색, 낙태권에 대한 대법원 판결 등으로 미국 사회의 분열과 정치적 양극화가 극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치르는 이번 선거는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2024년 대선을 위한 '전초전' 성격이 강하다. 결국 선거 이후 정치적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공화당 내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화당의 중간선거 예비선거에 지지 후보를 거듭 발표하면서 지난 대선이 도난당했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트럼프의 대선 불복 사태와 관련해 공화당 내부에서 그를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파 간 갈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지만 트럼프는 현재로선 공화당 대선 후보 1순위로 꼽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현재 1·6 의사당 폭동 사태를 선동했다는 혐의와 탈세 등 각종 수사와 소송에 휘말려 있지만 이번 중간선거를 치른 이후 여론의 향방을 살피며 2024년 대선 출마를 최종 결심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도 트럼프의 결정에 따라 자신의 중요한 정치적 결심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만약 공화당이 이번 선거에서 상·하원 모두 다수당이 된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차기 대권 출마 구도를 굳힐 가능성이 크다. 의회 권력을 되찾은 공화당은 탈세 논란에 휘말린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추진해 정국이 소용돌이에 휩싸일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국 주도권을 빼앗기며 급속히 레임덕에 빠지면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치권의 모든 이목을 차기 민주당 대선 경쟁으로 쏠리게 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바이든의 불출마를 전제로 해리스 부통령, 피터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등 여러 명이 잠재적 후보군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6년 임기인 상원의원 100석 중 35석, 2년 임기인 하원 435석 전체를 다시 선출한다. 공화당은 하원에서 6석, 상원에서 1석만 더 확보하면 양원에서 다수당이 될 수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공화당 양당 구분 없이 대통령 소속인 정당이 승리한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유권자들이 중간선거를 현직 대통령의 집권당에 대한 웨이크업 콜 (wake-up call)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 민주당은 의료보험 개혁에 반발한 공화당의 '티 파티' 세력에 의해 하원에서 63석을 잃는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도 집권 2년 만에 하원을 민주당에 넘겨주기도 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하원의 공화당 우세는 굳어졌고, 상원을 민주당이 수성할 것인지가 최대 관건이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가 초박빙 승부를 벌였던 5개 경합주(애리조나, 조지아,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는 이번 선거의 최대 승부처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이곳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선거 예측 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는 이달 9일 기준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할 가능성을 70%로 예측한 반면 민주당은 상원 다수당을 고수할 가능성을 67%로 보았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이번 봄만 해도 인플레이션 우려와 바이든의 지지율 폭락으로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이 되는 '붉은 물결(Red Wave)'을 예상했던 분위기와 크게 달라진 것이다. 올여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 등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법안 통과와 함께 연방 대법원의 낙태법 폐지 후폭풍 영향으로 바이든 지지율이 반등한 결과다. 낙태법 폐지, 학자금 탕금···민주당에 기회 주나 사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 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각종 악재 속에 어떤 문제로 유권자 표심을 자기들에게 끌어올지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올해 6월 24일 연방대법원은 지난 49년간 낙태권을 보장했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었다. 그동안 줄기차게 낙태권 폐지를 주장했던 공화당 손을 들어준 것이다. 현재 연방 대법관 9명 중 6명은 보수 성향이며 이 중 3명은 트럼프 대통령 시절 임명된 인물로 이번 판결이 트럼프 전 대통령 작품이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연방대법원의 낙태법 판결에 대한 반발에 힘입어 민주당이 결집하고 여성 유권자 투표율은 이번 선거에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선거의 주요 변수 중 또 하나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발표한 학자금 탕감 조치다. 바이든 대통령은 장고 끝에 1인당 최대 2만 달러(약 2900만원)를 탕감해주는 이 조치를 의회와 협의하거나 승인하는 절차 없이 행정명령 형태로 내놓았다. 미국 내 학생에 수천만 명게 혜택을 주는 이번 조치는 향후 10여 년에 걸쳐 예산이 약 4000억 달러 소요되는 조치로 공화당은 선거를 앞두고 청년층 표심을 잡기 위한 포퓰리즘 행보라고 비난하고 있다. 안 그래도 심한 인플레이션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여론과 함께 이번 조치로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경제적 고통을 크게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여론이 팽팽하다. 민주당은 학자금 탕감 조치 등 각종 포퓰리즘 정책, 낙태법과 트럼프에 대한 논란이 그동안 인기 없는 대통령과 집권당이 패배하던 중간선거의 역사적 전통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은 미국 유권자 마음이 그들에게 쉽게 돌아서지 않을 것으로 자신하는 모습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바이든 행정부의 초라한 경제 성적표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금리를 '자이언트 스텝'으로 연속해서 올려도 장바구니 물가가 잡히지 않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는 유권자 표심은 결정적일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 공화당에 넘겨주는 참패를 한다면 ‘트럼피즘’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허리케인이 다시 미국을 두 동강 낼 것이 분명하다. 민주당이 만약 상원이나 하원 중 한 곳이라도 승리한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2024년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예상을 완전히 깨고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을 지킨다면 바이든은 나이는 오직 숫자에 불과하다며 대선 출마를 조기에 공식화할 수도 있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
-
-
[이수완의 월드비전] 핑크빛 짙어지는 美 '텃밭' 중남미... 중국 탓인가?
지난달 8∼10일 로스앤젤레스(LA)에서 미주 정상회의(the Summit of Americas)가 열렸다. 아메리카 대륙 35개국 대표들이 모여 경제 협력, 무역, 이민, 기후변화 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로 약 3년마다 개최된다. 이 회의를 미국이 본토에서 개최한 건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1994년 1차 회의 이후 처음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미국과 감정의 골이 깊어진 중남미 국가들을 달래고 미국의 '텃밭'으로 불리는 이 지역을 숨가쁘게 잠식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 회의는 최근 중남미의 복잡한 지정학적 변화에 따른 미국의 리더십 공백,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의 중남미 외교에 대한 심각한 난맥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성급한 미군 철수와 더불어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적 낭패 사례로 꼽힐 정도이다. 미국이 1차 미주 정상회담을 개최한 28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베를린 장벽과 소련의 붕괴 이후 지구상에 사실상 미국의 패권경쟁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중남미도 정치적 대전환기를 겪으며, 거의 모든 국가에서 군사독재자가 사라졌고 각국의 민주 정부는 미국에 우호적인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1차 회의에 참석했던 각국의 정상들은 클린턴 대통령과 같은 테이블에 자리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당시 미 행정부는 거의 1년 동안 멕시코와 브라질 등 주요 중남미 국가들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회의 준비에 완벽을 기했다. 그러나 올해 회의는 바이든 행정부의 준비 부족으로 개막식 전부터 파열음이 요란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독재국가인 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 정상들의 초청을 저울질하다 민주당 내 강경파를 의식해 회의 개최 수 일을 앞두고서야 공식적으로 초청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멕시코의 좌파 정권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AMLO) 대통령은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의 연대와 결속이라는 원칙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며 회의를 보이콧 했다. 미국이 여러 차례 그의 입장을 바꾸려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불참 대열에 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볼리비아 정상도 동조했다. 현재 브라질은 멕시코와 달리 극우파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 그는 정상회담 개최 직전 바이든 후보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에 승리한 것에 대해 공정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가 이번 정상회의를 보이콧 할 것이라는 보도에 미국이 당황해 황급히 보좌관을 급파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사태를 겨우 마무리했다. 미국이 중미 최대 교역국인 멕시코에 이어 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 정상까지 이번 회의에 불참한다면 주최국 미국의 체면은 더욱 망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국은 브라질에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연출해야만 했다. 바이든과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양자 회담을 개최했지만 서로 불편한 듯 멀리 떨어져서 악수도 하지 않는 등 분위기는 냉랭했다. 지난해 12월 보수우파 정권을 몰아내고 집권한 칠레의 좌파 대통령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은 LA에 도착하면서 "미국이 특정국가를 배제한다면, 긍극적으로 해당 국가 지도자들의 행동만 강화시킬 뿐"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이번 회의는 1994년과 비교해 중남미에서 미국의 패권이 크게 쇠퇴했음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브라질은 오는 10월 대선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 대선에서 '중남미 좌파'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6) 전 대통령이 각종 여론 조사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크게 앞서고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세계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우림의 산림 파괴 문제에 대해서는 바이든 행정부와 협력을 강화시켜 나갈 전망이지만 전반적으로 미국에 비우호적인 정권이 탄생될 전망이다. 룰라 전 대통령은 2004년 7명의 각료와 450여 명의 비즈니스맨을 대거 동원, 중국을 방문해 양국간 무역과 경제협력의 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친미파인 보우소나르 대통령은 집권 전에는 "브라질이 중국의 손아귀에 있다"며 중국을 경계했지만 2019년 10월 중국을 방문, 시진핑 주석을 만나 양국간 우호협력을 다지는 등 양국간 관계가 최근 실용적 접근방식으로 크게 개선된 모습이다. 현실적으로 중국은 브라질의 원자재와 농산물 최대 수입국이자 최대 투자자로 브라질은 중국과 전략적 동반자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2차 핑크 타이드(Pink Tide) 미국이라는 초강대국 이웃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중남미 국가들은 원자재나 농축산물 수출에 의존하는 불안한 경제 탓에 극단적 좌파·우파 정치 실험을 반복해왔다. 지난 1999년 베네수엘라에 반미(反美)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이후 남미 12국 중 10국에 좌파정권이 등장하는 소위 '1차 핑크 타이드(pink tide)'가 나타났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인한 재정파탄으로 신자유주의 물결이 거세지며 2015년쯤부터 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 등에 우파정권이 속속 들어섰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민생난과 경제적 불평등 심화 등으로 중남미에 다시 좌파정권이 득세하고 있다. 더군다나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과 자국우선주의를 앞세운 남미 홀대 정책으로 미국과의 중남미 관계는 균열이 커졌다. 멕시코 (2018), 아르헨티나(2019), 볼리비아(2020). 페루(2021) 칠레(2021), 콜롬비아(2022)에 이어 올해 10월 브라질에서 정권이 바뀐다면 '2차 핑크타이드'의 위력은 더욱 커진다. 과거 미국의 든든한 우방으로 핑크 타이드 물결에서 비켜 서 있던 콜롬비아에서 최초로 좌파 후보인 구스타보 페트로(62)가 승리한 것은 의미 심장하다. 이번 미주 정상회의에서 미국은 2023~2024년 회계연도에 중남미 난민 2만명을 자국에 정착 시킬 것이라는 '과감한 액션'을 제시했다지만 매달 미국 남부 국경을 넘어오는 20만명을 감안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공식 출범시킨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성격이 유사한 ‘경제적 번영을 위한 미주 파트너십’(APEP) 구상을 내놨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의에서 관세인하·시장접근 확대 등 실효성 있는 조치는 논의가 안돼 중남미 국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결국 미국의 '텃밭' 외교는 체면만 구긴 셈이다. 미국에 대한 중남미 국가들의 불만이 노골화 되면서 중국은 그 틈새를 잘 공략했다. 2015~2021년 유엔 무역데이터를 분석한 로이터 통신은 중국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미국의 '텃밭'인 남미를 더욱 효과적으로 공략하면서 미국을 제치고 남미의 최대 무역파트너가 됐다고 보도했다. 2021년 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지역과의 무역규모는 2470억 달러에 달해 미국(1740억 달러)을 크게 앞섰다. 특히 중국은 중남미 20여 개국에서 글로벌 경제영토 확장구상인 ‘일대일로’ 사업을 벌이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경제적 지원과 인센티브에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며 대만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중남미 국가도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국영 기업들은 남미 지역에서 에너지, 인프라 건설, 우주 산업 분야에서 주요 투자자로 나서면서 외교와 문화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은 이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백신과 의료장비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다. 세계는 미국이 아태지역과 중동에 초점을 맞추는 사이에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 여타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커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은 중남미에서 베네수엘라 등 반미 독재 국가에 제재를 가하거나 자금지원을 축소하면서 이들 정부가 중국에 더욱 밀착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은 중국이 쿠바나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의 독재국가에서 "포퓰리즘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가 중국식 권위주의를 세계 각국에 퍼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주의, 기후변화 대응 등의 어젠다를 내세워 중남미국가들과 관계강화를 시도하지만 향후 중남미에서 급부상하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먼로 독트린 미국이 중남미 국가들을 자신의 영향력 안에 있다고 여기고 중국의 서반구(Western Hemisphere) 대진격을 심각한 위협으로 여기는 것은 미국의 전통적 외교정책인 '먼로 독트린'과 맥이 닿아있다. 미국의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1758~1831)는 독립전쟁 시대의 마지막 대통령으로 1823년 연두교서에서 "미국은 남북미주 대륙의 주인이니, 유럽이나 다른 나라는 간섭하지 말아라. 우리도 역시 다른 대륙의 일에는 참견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고립주의 외교 원칙, 소위 '먼로 독트린'을 천명했다. 먼로 독트린은 오랫동안 중남미 국가에 대한 미국의 배타적인 영향력 행사와 각종 내정 간섭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경찰국가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도 라틴 아메리카 이슈만큼은 '이웃집' 논리를 들이대며 사사건건 협박하며 자기 일처럼 간섭한 것은 이러한 '먼로 독트린' 전통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 수십년 동안 미국은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영토에서 소련과 냉전을 치렀다. 이제는 '차이나 머니'가 몰려오는 그곳에서 소련 대신 중국과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이 라틴 아메리카의 중국 쏠림을 견제하기 위해 지난달 준비 없이 성급하게 개최한 미주정상회담은 미국 외교의 '자책골'이 되었다. 미국이 이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먼로 독트린' 논리대로라면, 동아시아는 중국의 '텃밭'이다. 그리하여 미국이 동북아에서 군사력과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중국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
[이수완의 월드비전] 대통령 생사를 가른 그날의 2초 .. 응급실 뒤집은 '로니'의 유머
1981년 3월 30일 오후 2시 27분. 워싱턴 힐튼 호텔 인터내셔널 볼룸(International Ballroom)에서 오찬 연설을 마치고 대통령 전용 출입구를 통해 나와 활짝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리무진으로 향하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 위해 잠시 멈췄다. 경찰의 로프 라인(rope line) 맨 앞에 서 있던 마이크 푸첼 AP통신 기자가 "Mr President"라며 질문을 시작하려는 순간 바로 근처에서 풍선이 갑자기 터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펑! 펑! 펑! 펑! 펑! 펑! 울렸다. 단지 2초 만에 총알 6발이 날아왔다. 비밀요원 제리 파(Jerry Parr)는 첫 번째 총성이 울린 것과 거의 동시에 대통령을 방탄 리무진 차 안으로 밀쳐 넣었다. 동시에 다른 비밀요원 팀 매카시(Tim McCarthy)는 총알받이가 되어 리무진 앞을 가로막았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6번째 탄환은 리무진 차체에 맞고 튀어나와 대통령의 왼쪽 겨드랑이를 뚫고 들어갔다. 탄환은 폐를 살짝 건드리며 심장에서 겨우 1인치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 당시 취임한 지 두 달을 갓 넘긴 70세 고령의 레이건 대통령은 이날 암살당하는 5번째 미국 대통령이 되는 걸 가까스로 모면했다. 그는 인근 병원에서 1시간 넘게 총탄 제거 수술을 받았다. 로하이드 다운(Rawhide Down: The Near Assassination of Ronald Reagan) (2011)의 저자이며 LA타임스 안보 전문 에디터인 델 퀜틴 윌버(Del Quentin Wilber)는 총격 순간 레이건 대통령 위치와 앵글을 보면 제리 파 요원이 몇 분의 1초만 늦었더라도 탄환은 대통령의 머리에 명중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레이건 대통령이 부상에서 회복되어 다음 달 11일 백악관에 복귀하면서 전 세계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이 암살 미수 사건은 레이건 대통령의 인기와 지지율을 치솟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 덕분에 그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힘에 의한 위대한 미국의 재건'과 각종 국가 개혁 프로그램은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베트남전 이후 경제난과 히피 문화 그리고 패배주의에 빠졌던 미국은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할리우드 배우 시절 그리 대단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백악관의 주인이 된 이후 어느 역대 대통령들보다 높은 인기와 존재감을 뽐냈다. 그는 미국 근대사에서 '공화당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장에서 체포된 저격범은 정신병력이 있는 대학 중퇴자 존 힝클리 주니어였다. 영화 ‘택시운전사’(1976)를 15번 이상 보며 10대 창녀로 출연했던 여배우 조디 포스터에게 병적으로 집착했던 힝클리는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영화의 주인공 트레비스 비클(로버트 드니로)처럼 대통령 암살을 기도했다. 힝클리는 이후 재판에서 심신 상실 상태를 인정받아 형사 처벌 대신 워싱턴에 있는 정신병원에 수감돼 치료를 받았다. 2016년부터는 당국의 보호관찰 아래 버지니아주 자택에서 노모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허용됐다. 현재 67세인 힝클리는 지난달 자택 보호관찰에서도 풀려나 41년 만에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됐다. 그는 보호관찰 중 유튜브 채널과 트위트 등을 통해 기타 연주와 노래 등 예술적 재능을 뽐내며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이번 달 8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콘서트를 열 예정이었다. 표가 매진되었지만 주최 측은 안전을 이유로 공연을 취소했다. 브래디 총기 규제법 힝클리가 발사한 독일제 22구경 리볼버 탄환 중 첫 발은 제임스 브래디 당시 백악관 대변인의 왼쪽 눈 위 이마를 뚫고 들어갔다. 뇌 손상이 너무 심해 의사들도 고개를 흔들었고, 당시 주요 방송사는 초기에 브래디가 사망한 것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는 수술과 재활을 거듭한 결과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나 말을 심하게 더듬는 반신불수가 됐고 휠체어에 의지해 여생을 보내야 했다. 18개월에 걸친 치료와 재활 후 그는 레이건 대통령이 퇴임한 1989년 1월까지 대변인이라는 타이틀 유지했지만 상징적인 백악관 복귀에 불과했다. 레이건 대통령 취임 후 유머 만점인 명대변인으로 기자단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브래디는 아내 새라의 도움으로 불행과 좌절을 극복하며 새로운 소명을 찾아냈다. 새라 브래디는 남편을 휠체어에 태워 전국을 돌며 총기 규제 운동에 앞장섰다. 총격범 힝클리는 댈러스의 한 전당포에서 위조신분증을 제시해 29달러를 주고 권총을 구입했다. 그는 사건 6개월 전 지미 카터 대통령 암살 목적으로 총을 갖고 비행기에 타려다 체포된 적이 있었다. 브래디 부부는 제대로 된 신원조회를 의무화하는 총기규제법 추진을 위한 여론 형성에 앞장섰다. 평생 총기협회 회원이었던 레이건 대통령도 브래디 부부의 총기 폭력 방지를 위한 켐페인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의회는 총기 구입자에 대한 전과 조회를 위해 대기 기간을 의무화한 '브래디 총기 통제법'을 탄생시켰다. 1993년 11월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휠체어에 앉은 브래디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 법안에 서명했다. 2000년에는 백악관 서관(웨스트윙)에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브래디 프레스 브리핑룸'이 신설되기도 했다. 그는 2014년 8월 73세 나이로 타계했다. 그의 아내도 8개월 후 그의 곁으로 떠났다. 그러나 '브래디법'은 시간이 흐르면서 상당 부분이 미국 총기협회 로비와 압력에 의해 유명무실해졌다. 지난 5월 뉴욕주 버펄로 식료품점에서 10명, 텍사스주 유밸디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이 사망한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미국에서 총기 규제 강화 요구가 거세졌다. 마침내 지난달 미국 의회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초당적 합의로 18~21세 젊은이들이 총기 구매 시 신원조회를 강화하고, 당국이 위험한 인물로 판단되는 사람에 대해 총기를 일시 압류하는 '레드 플래그'법을 도입하려는 주(州)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법안을 의회 표결로 통과시켰다. 헌법에 의해 개인에게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매년 수만 명이 총기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다. '브래디법' 탄생 이후 거의 30년 만에 미국에서 총기 규제에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인 것이다. 힝클리가 쏜 두 번째 탄환은 경찰관 토머스 델라한티 (Thomas Delahanty)의 척추를 관통했고 그는 왼팔 마비로 경찰을 결국 은퇴해야만 했다. 레이건 대통령을 가로막는 총알받이가 된 매카시 비밀 경호 요원은 하복부에 총상을 입었으나 심각한 후유증 없이 건강을 회복했다. 제리 파 요원과 더불어 대통령을 구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매카시 요원은 경찰 간부로 오래 일하다가 2020년 은퇴했다. 원래 매카시는 레이건 대통령 암살 기도 사건 당일 자기 근무 일이 아니었으나 워싱턴 힐튼 호텔 대통령 오찬 행사 직전에 요원 한 명을 추가 배치하라는 상부 지시에 비번이던 다른 동료 요원과 '동전 던지기 게임'에서 진 벌(?)로 호텔에 긴급 배치됐다. 레이건의 응급실 유머 레이건 대통령은 총상을 입은 직후 4분 만에 인근 워싱턴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으로 이송된 후 미국 언론에 보도된 소위 레이건의 '응급실 유머'는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미 내부 대량 출혈로 약 40%에 달하는 혈액을 잃은 심각한 상태였다. 레이건 대통령은 수술을 담당한 의사 조셉 지오다노에게 물었다. "당신은 공화당원입니까?" "오늘, 우린 모두 공화당원입니다." 간호사들이 지혈을 하기 위해 레이건 대통령 몸에 손을 대자 "우리 낸시(아내)에게 허락을 받았나?"라고 농담을 했다. 병원 의료진은 1㎝도 되지 않는 총알 자국을 발견했고, 1시간 10분 만에 총알은 제거됐다. 수술 직후 아내 낸시 여사에게 "여보, 고개를 수그려야 하는데 총을 피한다는 것을 깜빡했어(Honey, I forgot to duck)"라고 다독인 일화도 너무나 유명하다. 레이건 대통령은 응급실에 모인 침통한 표정의 보좌관들과 경호원들에게 "할리우드 배우 시절 내 인기가 이렇게 폭발적이었다면 배우를 때려치우지 않았을 텐데"라고 말해 응급실을 뒤집어 놓기도 했다. 이렇게 생사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대통령의 재치 있는 유머와 용기는 연일 미국 언론의 주목과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남긴 일기장에는 낸시 여사에 대한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일기장에 "난 눈을 뜨자 낸시를 발견했다. 그녀가 내 앞에 보이지 않는 날이 절대 오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녀를 나에게 준 것은 신이 내게 내린 축복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적었다. 1994년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이 알츠하이머병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을 대중에게 솔직히 알려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10년간 투병한 끝에 2004년 6월 5일 향년 93세로 작고했다. 낸시 여사는 전국을 돌며 남편이 앓던 알츠하이머병 퇴치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2016년 3월 누구보다도 헌신적인 아내였던 마미(낸시 여사 애칭)는 12년 먼저 숨진 '로니'(레이건 대통령 애칭) 무덤이 있는 캘리포니아 시미밸리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서관 뜰에 함께 묻혔다. 힝클리의 총격 사건은 레이건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크게 힘을 실어주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오랜 배우 생활로 갈고닦은 그의 원숙하고 위트 있는 이미지는 정치적으로 그를 반대하던 사람들한테서도 호감을 얻게 만들었다. 그는 위기의 순간에도 번뜩이는 유머로 국민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집권 8년간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고 미·소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최대 무기는 그의 뛰어난 대외 소통 능력이었다. 레이건 혁명 레이건 대통령 취임 전후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 침체)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덕이고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고질적인 인플레이션과 전쟁을 벌이면서 세금 인하와 과도한 규제 철폐, 작은 정부를 내세운 소위 '레이거노믹스'를 통해 미국을 친시장 경제로 복귀시키고 경제 회복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경제정책에 있어서 정치적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은 지도자였다는 점에서 그를 무척 높게 평가하는 경제학자들이 많다. 레이건 대통령은 카터 대통령 시절 임명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폴 볼커의 '인기 없는' 고금리 정책을 끝까지 지지했다. 볼커 의장은 무려 3년 동안 진행된 무자비한 금리 인상과 경기 후퇴(recession)을 택하면서 미국은 1983년부터 비로소 물가를 통제할 수 있게 됐다. 1981년 8월 경제 불황 시 미국 항공 관제사들이 대규모 불법 파업에 나서자 단호한 대처로 노동개혁과 법치주의 수호의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뼛속까지 반공주의자였던 레이건 대통령은 강력한 압박과 끈질긴 대화로 소련의 붕괴를 유도하며 명실공히 미국의 패권을 공고히 했다. 무엇보다도 빼놓지 못할 레이건 대통령의 최대 치적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반규제·친시장·친기업정책일 것이다. 1980년대 '레이건 혁명'으로 미국 스타트업과 민간기업들은 새로운 '창조적 파괴'를 향한 힘찬 행진을 시작했다. 현재 세계 최고 기업으로 우뚝선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등이 이때 태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집권 시 부의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미국에서 사라졌던 낙관주의, 역동성, 기업가 정신이 되살아난 것은 분명하다. 레이건 대통령 퇴임 시 지지율은 63%로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높았다. 힝클리가 정신질환을 앓지 않았고, 1981년 그날 독일제 22구경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면 지금의 미국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많은 미국 전문가들이 지금도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