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칼럼] 지금은 성찰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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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 초빙논설위원·칼럼니스트
입력 2017-08-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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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빙논설위원· 전 관훈클럽총무                  



지금은 성찰의 시간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전후해 갖가지 정부 주관 행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른바 '각본 없는 즉문즉답' 형식의 대통령 기자회견, 280인 인수위원들이 함께한 대통령의 국민보고대회, 국무총리의 기자회견 등등. 고공비행하는 지지율이 행사장 분위기를 더욱 활기차게 만드는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시점의 지지율은 80% 정도, 같은 시기 역대 대통령 지지율과 비교하면 2위이니 잔칫집 분위기도 이해할 수 있다. 광우병 파동으로 임기 초 석달을 거의 아무것도 못한 채 대국민 담화를 준비하며 취임 100일을 맞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교해도, 대선 비자금사건 등 측근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돼 대국민 사과로 회견을 시작해야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해도 자랑스러울 것이다. 더욱이 정권이 가장 힘이 있는 임기 초의 시기에 국민 지지율이 높다는 것은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개혁 드라이브가 가능하다는 뜻이니 정말 축하할 만하다. 하지만 이 시점, 문재인 정부로서는 대통령 스스로 얘기했듯 더 큰 성공을 위해 '자화자찬'이 아닌 '성찰'의 시간이 필요한 때다. 더 잘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짚어 보기로 하자.

첫째, 지지율 과신은 독선과 오만의 정치로 이어지기 쉽다. 우리의 정치제도는 대통령중심제이기도 하지만 국회 중심의 '대의민주주의제도'이기도 하다. '촛불 민심', '광장 민주주의', '집단지성', 대통령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요즘 즐겨 쓰는 표현들인데, 혹 그 배경에 '여소야대'의 불편한 정치 환경을 극복하는 편법으로 국민 지지율에 기대어 보고자 하는 '얄팍한 계산'이 들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정부의 모든 주요한 정책은 당연히 국회에서 치열한 토론과 숙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렵고 급하고 귀찮고 심지어 비효율적이라고 '여의도 정치'를 우회하려 하면 결국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또다시 국민들이 경험하게 될 뿐이다. 구체적 정보에 접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없는 '촛불민심'을 '집단지성'으로까지 미화하려는 일각의 태도도 그래서 걱정스럽다.

광장의 '집단지성'은 자칫 '집단사고', '집단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를 물으면서 사실상 탈원전정책을 기정사실화하는 방법으로 택한 공론화위원회의 가동·운영도 국가중요정책 방향을 여론에 직접 묻는 '광장민주주의'와 같은 맥락이다. 예상되는 야당의 정치적 반대공세를 피해 우회하는 방법으로 국민의 지지와 선택에 직접 호소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결국 정권의 생명을 인기에 의존하는 포퓰리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국민지지는 덧없다. "배를 띄우는 것도 물이요, 배를 뒤엎는 것도 물"이란 옛말은 민심의 무서움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 변화의 무상함도 함께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에 취임해 얼마 전 취임 100일을 맞은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긴축정책의 일환으로 주택보조금을 매달 5유로(약 6500원) 삭감하는 정책을 폈다가 지지율이 30%대로 절반이나 떨어졌다. 지지율을 의식하다 보면 소신 있고 일관된 정책을 펼 수 없을 것이라는 점도 자명하다.

둘째, 정부의 임기는 제한적이다. 5년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세월이긴 하지만 국가대계의 큰 틀을 정하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들을 수립하고 집행하기에는 참으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빠듯한 시간이다. 그래서 먼저 임기 내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가려야 하고 바꿀 수 있는 일과 바꿀 수 없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 할 수 있는 일과 바꿀 수 있는 일의 경우도 어떤 방식의 결정과정을 거치는 것이 온당한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것이 민심에 기반해 세워졌다고 자부하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여야 한다.

국민복지의 수혜대상을 늘리고 수혜의 질을 끌어올리는 정책방향은 분명 우리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길이다. 현 정부가 최근 발표한 '문재인 케어'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 그러나 30조6000억원을 투입해 미용과 성형 등을 제외한 모든 비급여 항목을 건강보험으로 부담케 한다는 이 정책발표는 그 전격적이고 일방적인 선언 형식이 문제이다. 고령사회 진입과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미래와 관련된 문제인데도 너무나 쉽게 발표됐다. 국민들 간, 세대 간 토론 과정도, 의견 수렴도, 뒷받침할 구체적 재원에 대한 설명도 생략됐다.

복지혜택은 한 번 늘어난 규모를 줄이는 일은 불가능하다. 가역적이지 않다. 따라서 이번 정부에서 이렇게 정하고 나면 후임 정부와 미래의 젊은 세대들이 어쨌든 감당해야 한다. 이번 정부에서만 기분 좋게 생색내고 끝낼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긴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탈원전 정책도 그렇다. 대통령선거 공약에 포함됐고 그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공약을 이행한다는 식으로 설명되어서는 결코 안 될 성격의 정책결정이다.

셋째, "속도보다는 방향이 문제"라고 이전 글을 통해 지적한 바 있지만 '속도'도 문제이다. 성공에 대한 조급증은 시간이 필요한 절차를 무시하고픈 욕구를 부른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언론과 만나 "방향엔 자신 있는데 속도에는 부담을 느낀다"고 한 까닭도 정부 일각의 과속질주를 자인한 발언으로 해석 된다.

100개의 선거공약을 반드시 이행해야 할까? 국민들이 과연 그것을 원할까? 100개 공약의 방향과 실천과제들은 시간과 재원 양 측면을 모두 충분히 숙고하고 검토한 다음에 결정됐는가? 자랑스럽게 이 정부의 소통능력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야당과의 소통은 제대로 되고 있는가? 이른바 '적폐 청산'이 전 정권들에 대한 보복으로 여겨진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충분히 귀를 열고 있는가? 국가 부채가 처음으로 700조원에 육박한다는데 수십조원씩 드는 정책들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내도 되는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시기의 지지율 기록이 아니라 치적의 양과 질에서 역대 최고의 정부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이제 겸손하고 경건하게 이런 질문들을 자문자답해야 할 시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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