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무주군 적상면으로 들어가는 길은 한국 산업의 중심과는 거리가 멀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도시의 소음이 사라진다. 사방을 둘러싼 산봉우리와 깊은 골짜기, 그리고 숲뿐이다. 산업단지 대신 계곡과 산이 이어지는 이곳은 흔히 말하는 ‘첨단 산업의 현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런데 바로 이 산골에 한국 우주 산업의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 현대로템이 이 일대에 항공우주 연구·시험 시설 구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30년대 초반까지 단계적으로 조성될 예정인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기업 투자를 넘어 한국 산업 지형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될 가능성이 있다.
무주라는 지역은 산업 입지라는 측면에서 보면 전통적인 선택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의 방위 산업은 경남 창원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고, 항공우주 연구는 대전과 경남 사천에 집중돼 있다. 기업과 연구기관, 인력까지 대부분 수도권과 몇몇 산업 거점에 모여 있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는 이런 산업 지리의 공식과는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이유는 지형이다.
적상면 일대는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 요새와 같은 구조다. 첨단 시험 시설이나 국가 전략 기술 연구 시설은 보안과 안전이 중요한데, 자연 지형이 방어벽 역할을 하는 곳은 드물다. 깊은 산 속에 위치한 이 지역은 외부 접근이 제한적이고, 시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이나 진동을 흡수할 공간도 충분하다.
산이 단순한 자연환경이 아니라 기술 시설의 조건이 되는 셈이다. 산업이 도시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풍경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면 이런 사례는 적지 않다. 미국 서부 사막에는 대형 로켓 시험장이 있고, 중국도 내륙 깊숙한 지역에 우주 발사 시설을 건설했다. 첨단 기술일수록 외부 간섭이 적고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지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주 프로젝트가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산업 연결 구조에 있다. 무주를 중심으로 반경 한 시간 거리 안에 여러 산업 기반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대전에는 한국 항공우주 연구의 중심 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있다. 설계와 연구,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전주에는 탄소 소재 산업 기반이 형성돼 있다. 로켓과 항공기 구조에 쓰이는 핵심 소재가 바로 탄소섬유 복합재다. 강도 대비 무게가 뛰어나 우주 산업에서 필수 소재로 꼽힌다. HS효성첨단소재가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렇게 보면 무주는 단순한 산골이 아니라 연구와 소재 산업 사이에 놓인 시험·개발 공간이 된다. 설계는 대전, 소재는 전주, 시험은 무주로 이어지는 산업 구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현대로템이 관심을 두고 있는 기술도 이런 흐름과 연결돼 있다. 최근 우주 산업에서 주목받는 기술 중 하나가 메탄 기반 로켓 엔진이다. 기존 로켓 엔진은 연소 과정에서 그을음이 남아 재사용이 어려웠다. 반면 메탄 엔진은 연소 후 잔여물이 적어 반복 사용이 가능하다.
이 기술은 민간 우주 산업에서 큰 변화를 만들고 있다. 미국의 SpaceX가 개발한 ‘스타십(Starship)’ 로켓이 메탄 기반 ‘랩터(Raptor)’ 엔진을 사용하면서 우주 발사 비용 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사용이 가능해지면 발사 비용은 크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현대로템이 추진하는 연구 역시 이런 기술 흐름과 맞닿아 있다. 철도와 방산 장비 중심이었던 기업이 이제 우주 산업으로 영역을 넓히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산업 기술보다 지역 문제에 있다.
무주는 전형적인 지방 소멸 위기 지역이다. 인구 감소와 산업 기반 부족이라는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다. 관광 산업이 있지만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지역에 첨단 산업 프로젝트가 들어온다는 것은 단순한 투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대형 기술 시설 하나가 들어오면 연구 인력과 협력 기업이 함께 움직인다. 도로와 에너지 같은 기반 시설도 개선된다. 인구 구조도 달라질 수 있다. 지역 경제의 방향 자체가 바뀌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산업 정책의 역사를 보면 이런 기대가 항상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려면 기업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연구기관, 소재 기업, 협력 업체, 인재 공급 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업 시설 하나만 남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무주 프로젝트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한 기업 투자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우주 산업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산업이 수도권 밖에서도 뿌리를 내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한국은 방위 산업에서 이미 세계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차와 자주포, 전투기 등 다양한 무기 체계가 해외에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주 산업은 아직 시작 단계다. 발사체와 엔진, 위성 기술을 모두 갖춘 국가는 많지 않다.
무주의 산속에서 시작되는 이 프로젝트는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다. 산업은 더 이상 도시 공장지대에서만 태어나지 않는다. 때로는 깊은 산골에서 새로운 기술 실험이 시작되기도 한다.
한국 산업의 다음 단계가 어디에서 시작될지는 아직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조용한 산골에 세워지는 연구 시설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한국 산업이 새로운 방향을 찾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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