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영의 우.다.세] 외로운 이들이 꿈꾸는 낙원- 영화 '꿈의 제인'

  • 불행 속에 꽃핀 따뜻함이라는 절망적 상상

▲ ‘다양성 영화’는 단순히 장르를 뜻하기보다 상업 중심의 주류 영화와는 다른 시선·형식·주제를 가진 영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양한 국적, 장르, 소수성 등을 포함하는 범주를 갖고 있다. 누군가는 불편하다며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마주하는 역할을 기대해본다. '우'리들의 '다'양한 '세'상을 위해.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진영화 ‘꿈의 제인’ 스틸컷
[사진=영화 ‘꿈의 제인’ 스틸컷]

때로 많은 인파 속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이를 ‘군중속의 고독’이라고 했던가. 1950년 발간된 데이비드 리스먼의 저서 ‘고독한 군중’에서 알려진 이 개념은 대중 속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내면의 고립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타인에게 지지와 공감을 받지 못할 때 우리는 부족한 관계의 연결성을 느끼고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맞닥뜨린다.

 영화 ‘꿈의 제인’은 이러한 외로움과 관계의 불완전성을 가출 청소년인 주인공 소현(이민지)의 상상과 현실을 오가는 연출로 그려낸다. 영화는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꿈 속을 104분 동안 함께 유영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가출 청소년인 소현은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운 소녀다. 돌아갈 집이 없고,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떠도는 가출 청소년을 무조건적인 따뜻함으로 맞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 또래 관계에서도 수현은 섬처럼 놓여 있을 뿐이다. 늘 섞이지 못한다는 생각은 외로움을 불러오고 그럴수록 더 누군가의 곁에 머물고 싶어진다. 

그래서 소현은 끊임없이 이동한다. 거리에서 거리로,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자신의 닻을 내릴 수 있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세상 어디에도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는 감각은 결국 소현을 생의 벼랑 끝으로 내몬다.

그런 소현의 절망 앞에 트렌스젠더 제인(구교환)이 마치 꿈처럼 나타난다. 세상을 떠나려던 소현의 손목을 어루만져주고 붕대를 감아준 사람. 가출 청소년들을 거두어 살며 '엄마'로 불리던 제인의 곁에서 소현은 아무 조건 없이 따뜻한 밥을 먹고 자며 안심한다.

소현은 거창한 것을 바란 게 아니었다. 그저 함께 컵라면을 먹고, 농담을 건네고, 별 의미 없지만 잠시 잠깐이라도 웃음을 띌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거대한 사랑이나 특별한 구원을 꿈꾸는 게 아니었다.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내고, 눈치 보지 않고 나를 나대로 있게 해 주는 사람들과 있는 그런 일상을 바란 것이었다. 제인은 그런 감각을 소현에 건네는 사람이었다. “밥 먹었니?”, “괜찮아” 등 평범하지만 마음이 담긴 말들로 수현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생에 대한 희망을 다시금 불 지피는 존재였다.

그것도 잠시, 소현이 제인이라는 바다에 닻을 내리려던 찰나 제인 또한 상처와 외로움에 찌든 한 명의 어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 제인 또한 무수한 상처를 받고 견디며 죽음과도 같은 순간을 마주하며 살아야 했을 터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듯 보였던 이들의 관계는 다시 절망 속으로 빠져든다. 소현이 믿고 의지했던 제인의 죽음으로 말이다. 으레 그렇듯 행복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영화 중반부를 지날수록 제인의 따뜻한 농담도, 그저 있기만 해도 괜찮은 안전함도 없다. 수현은 또 다시 떠돌고 영화 초반과는 상반되는 긴장감 속에 놓인다.
 
[사진=영화 ‘꿈의 제인’ 스틸컷]
[사진=영화 ‘꿈의 제인’ 스틸컷]
 
수현이 만들어낸 꿈속의 제인, 그 어디에도 없는 어른

영화를 보다 보면 어딘가 몽환적으로 그려지던 제인의 모습이 이해가 된다. 소현의 상상 속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제인은 소현이 아는 동네 오빠 정호를 따라 그의 일터인 트렌스젠더 바 ‘뉴월드’에서 실제로 만난 인물이다. 소현의 손목에 ‘UNHAPPY’(행복하지 않다)라는 도장을 찍어준 그는 상상 속에서 소현의 상처가 남은 손목에 붕대를 감아주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어쩌면 소현의 상상은 도피가 아닌 ‘생존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워 보인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지점은 ‘망상’으로 읽히기 쉬우나 오히려 ‘그럴 수 밖에 없는’ 생존 본능으로 받아들여진다. 현실을 부정해 도망친 것이 아닌 완전히 무너지지 않기 위한 방어막의 일환 말이다. 

영화의 제목이 ‘꿈의 제인’인 점도 이와 맞닿아 있다. 소현의 ‘꿈’은 어떠한 직업을 갖는 사람이 되는 것 보다 그저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는 따뜻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제인은 아무도 자신을 붙잡아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끝까지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마음의 피난처였던 것이다.

극중 같은 가출팸이자 소현이 믿고 따랐던 언니 지수(이주영)의 사망과 제인의 죽음 역시 소현의 현실과 꿈을 교차하는 지점이다. 현실에서 가장 의지했던 지수의 죽음과 꿈 속 제인의 죽음. 두 사람 모두 죽음을 택한 방식이 유사했던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어쩌면 인간은 평생 외로운 존재일지 모른다. 완전한 이해를 얻지 못한 채 각기 서로 다른 상처 속 서로의 마음은 알 수 없는. ‘꿈의 제인’은 그 연결의 불완전함을 이야기한다. 가장 깊은 외로움은 혼자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속에서도 나라는 존재를 나로 봐줄 사람이 없을 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외로움은 불현듯 마음속에 번진다.

영화 말미 제인은 ‘뉴월드’ 무대에 서서 말한다. 어쩌면 소현이 하고 싶었을 말이었는지 모르는 그 말을. 

“어쩌다 이렇게 한 번 행복하면 됐죠. 그럼 된 거예요.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사진영화 ‘꿈의 제인’ 스틸컷
[사진=영화 ‘꿈의 제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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