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영의 우.다.세] 당신이 마주 앉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영화 '더 테이블'

  • 카페 테이블, 그 자리에 남겨진 사연들

▲ ‘다양성 영화’는 단순히 장르를 뜻하기보다 상업 중심의 주류 영화와는 다른 시선·형식·주제를 가진 영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양한 국적, 장르, 소수성 등을 포함하는 범주를 갖고 있다. 누군가는 불편하다며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마주하는 역할을 기대해본다. '우'리들의 '다'양한 '세'상을 위해.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진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사진=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때로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홀로 무언가를 할 때 옆 테이블의 대화가 들릴 때가 있다. 주식과 부동산 이야기, 사소한 문제로 싸우는 커플, 안부를 주고 받는 선후배 등 불특정한 사람들의 대화가 들려올 때면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기울이게 된다.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리지만 이들 이야기의 종착지가 어디일지 내심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영화 ‘더 테이블’은 한 카페 한 테이블에 앉은 네 쌍의 인물이 나누는 대화로만 그려지는 옴니버스식 영화다. 영화에선 큰 사건도 이렇다 할 반전도 없다. 그저 대화하는 이들을 묵묵히 지켜보며 이들의 사이를 유추할 수 있다. 관객은 합법적으로(?) 이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게 되고 여덟 명의 보이지 않는 감정선에 집중하게 된다. 관객 또한 이들의 상황 속으로 어느샌가 빨려 들어가 바로 곁에서 인물들의 표정을 보며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에 빠져든다.

낯선 이들의 대화가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는 건 이들의 이야기에 담긴 익숙한 감정선 때문일 것이다. 카페에 마주 앉은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만의 서사를 갖고 있다. 이들은 카페에 마주 앉아 커피 한 잔이 식어가는 동안 과거로 돌아가 그리움, 원망, 연민 등의 감정을 드러낸다.
 
[사진=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사진=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서촌의 한 카페. 골목에 자리한 조용한 이곳에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쓴 여성 유진(정유미)이 들어선다. 오래전 헤어진 전 남자친구 창석(정준원)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배우가 된 유진을 창석은 신기한 듯 바라보며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말로 거리감을 나타낸다. 그러면서도 창석은 어쩐지 오랜만에 만난 유진의 안부를 궁금해하기보다 그녀를 둘러싼 가십거리를 확인하기에 바쁘다. 이러한 창석의 모습에 실망한 듯 유진의 표정도 굳어간다. 

과거의 관계는 과거에 두는 것이 옳았을까. 끝난 관계를 굳이 돌아보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이렇듯 기억 속의 그와 다른 그를 마주하고 씁쓸함만 느끼게 될 뿐이라면 말이다.

기분이 상한 채 카페를 나서려는 유진의 눈에 창석이 회사 동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는 장면이 눈에 띈다. 창석은 유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기보다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트로피처럼 대하고 창석과 유진의 추억은 창석의 어리석은 모습으로 막을 내리는 듯 하다.
 
사진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사진=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오후 2시. 인도와 유럽으로 몇 달간 여행을 다녀온 민호(전성우)와 잡지사 에디터 경진(정은채)이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세 차례 뜨거운 만남 이후 민호의 긴 여행으로 오랜만에 마주했고, “좋은 거 보면 사진 한 장이라도 보낼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는 경진의 말에선 서운함이 뚝뚝 묻어난다. 

그래서일까. 경진은 민호를 향해 날카로운 말들을 늘어놓기 바쁘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민호에 대한 호감과 미움이 뒤틀려 만들어낸 감정 섞인 말은 어쩌면 아직 민호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이 남아있다는 희망으로도 읽힌다.

민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경진의 날카로운 말을 받아낸다. 기분 나빠하는 기색보다 오랜만에 만난 경진과의 대화에 집중하던 그는 태엽을 감아야만 시간이 가는 낡은 시계를 선물한다. 손가락 하나면 뭐든 할 수 있는 시대에 이토록 낡은 시계를 선물하는 것은 굳이 태엽을 감아 이 관계를 이어가 보고 싶다는 창석의 의지로도 보인다.

“우리집에 파스타 먹으러 갈래요?” 
이내 웃음이 터진 경진과 수줍은 듯한 민호의 모습에서 앳된 커플의 분위기가 전해진다.

오후 5시. 해가 뉘엿뉘엿 지기 전 모녀로 보이는 은희(한예리)와 숙자(김혜옥)가 테이블에 앉아 있다. 결혼식장과 상견례 등의 대화를 하는 이들은 가짜 모녀 사이다. 사기 결혼을 통해 돈을 벌어왔던 은희는 숙자에 ‘자신의 엄마로서 알아야 하는 수칙’들을 읊는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시부모가 부자도, 남편이 자수성가한 타입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결혼을 왜 하느냐는 숙자의 물음에 은희는 “스포츠용품점 대표에게 작업을 하려다 막내 사원과 눈이 맞은 케이스”라고 담담히 말한다. 비록 결혼식에 참석하는 이들은 모두 가짜일지언정 그 의미만은 진짜라는 듯 말이다. 결혼식은 5월 30일이다. 숙자는 같은 날에 결혼한 죽은 딸을 떠올리고 딸의 결혼식에 입으려던 옷을 꺼내입겠다고 말한다. “어렸을 적 별명은 거북이”라는 은희에 숙자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며 은희의 앞날을 축복해 줄 것임을 예상케 한다.
 
사진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사진=영화 '더 테이블' 스틸컷]

저녁 9시. 카페 창가로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결혼을 앞둔 혜경(임수정)은 전 남자친구 운철(연우진)을 만나 자신과 바람을 피우자고 당당히 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놓친 것이 아깝냐는 혜경의 말에는 운철을 향한 미련이 가득하다. 운철은 “아깝지”라고 짧게 대답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지 않는다. 그저 놓아버린 혹은 놓쳐버린 관계 앞에서 어떤 말도 무력해질 것을 알기에 원론적인 대답만 할 뿐이다.

종이를 뜯는 습관이 있던 운철이 테이블 위에 놓인 꽃의 꽃잎을 하나하나 떼 놓자 혜경은 “여전하네”라며 핀잔을 주곤 꽃잎을 그러모아 물잔 위에 떨어뜨린다. 그러자 “뭐 어때. 이미 죽은 꽃인데”라고 맞받아치는 운철의 말에서 관계의 끝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두 사람의 감정선이 마치 대비되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같은 감정 속에 매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 건지 모르곘어”

운철은 카페를 나서서야 “꿈속에 혜경씨가 나왔어”라며 자신의 남은 그리움을 털어놓는다. 혜경을 잡을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털어내려는 듯 못다 한 감정을 폭발시킨 그는 먼저 돌아선 혜경을 뒤로한 채 반대편으로 성큼 걸어간다. 

어쩌면 두 사람은 이제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혹은 어느 이별 노래처럼 서로의 다른 연인을 옆에 두고 모른 체하며 지나가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관객의 상상이다.

‘더 테이블’을 연출한 김종관 감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카페의 풍경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포착한 뒤 인물의 표정과 대화에 집중했다. 영화 속 카페에서 네 쌍의 인물은 현재 끈끈하게 이어지지 않은 미완의 관계로 남아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이들은 대표적인 소통의 공간인 카페에서 소통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고, 숨겼던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 가장 중요한 말은 끝내 삼키게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더 테이블’은 어쩌면 머문 자리의 의미를 너머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끝내 서로의 삶에 녹아들 수 없는 경계선이자 서로의 삶에 다시 섞일 수 없는 이들이 완전한 남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머무는 ‘관계의 환승역’ 역할을 한다.

상실과 그리움, 연민이 깃든 자리엔 오늘도 또 다른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간다. 오늘은 누가 그 자리에서 어떤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당신이라면 저 테이블에 누구와 앉고 싶은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