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여성 양미자(윤정희)는 이혼한 딸 대신 중학생 손자 종욱(이다윗)과 함께 단둘이 살며 종욱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그는 간병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간다.
미자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일상 속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외출할 땐 예쁜 모자를 쓰고 꽃무늬가 그려진 예쁜 웃을 입는 등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듣기를 원한다. 그런 그는 아름다움을 쓰고 싶다는 마음에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시 강좌를 찾는다. 이곳에서 강사로 나선 김용택 시인은 “시를 쓰려면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무렵 미자는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 현상이 반복됐는데, 병원에선 그에게 초기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내렸다. 의사는 미자에게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수 있고 기억력이 점점 나빠질 것이라고 한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미자에게 곧 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그래서일까 미자는 시에 더욱 몰두한다. 자신이 가진 언어로 시를 쓰기 위해 부단히 생각한다. 꽃을 보고 감탄하고 사과를 보며 관심을 갖고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가만히 들여다본다. 미자는 “종이와 연필을 들고 그 순간을 기다려보라”는 시인의 말을 곧잘 따르지만 어쩐지 시상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 무렵 미자는 종욱이 휘말린 사건으로 희진이라는 여학생이 한강에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희진이 약 6개월 동안 같은 학교 남학생 6명에게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해왔으며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 가해자 6명에 종욱도 포함된 것이다.
미자는 희진을 추모하는 성당으로 가 그의 사진을 갖고 와 식탁에 둔다. 희진이 성폭행을 당한 학교 실험실을 찾아가보기도 한다. 희진이 추락한 강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무언가를 글로 남기려 해보지만 미자가 펼친 노트에는 글자 대신 빗방울만 떨어질 뿐이었다.
꽃, 사과, 풍경을 봐도 아무런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던 미자가 처음 시상을 떠올린 순간은 떨어진 살구를 보았을 때다. 그는 희진의 엄마를 만나러 가다 만난 여성에게 “살구가 땅에 떨어진 것을 보고 참 간절하다고 생각했어요. 지 몸을 땅에 던져서 지 몸이 막 깨지고 밟히게 해서 다음 생을 준비하잖아요”라는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공교롭게도 첫 시상을 들은 이가 희진의 유족이었다는 사살을 알게 된 미자는 자식을 잃은 고통 앞에서 한낱 살구의 추락에 대해 이야기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황급히 돌아선다.
결국 그는 다른 학부모들과 다른 길을 택한다. 종욱에 피자를 사 먹이고 손톱과 발톱을 깎이며 깨끗하게 씻으라고 잔소리한다. 저녁엔 여느 날처럼 배드민턴을 함께 쳤고 곧 종욱은 경찰에 인계됐다.
영화 말미 미자는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어했던 자신의 욕망보다 희진의 삶을 대신 말하는 시 ‘아네스의 노래’를 남기고 사라진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미자가 남긴 시는 희진의 목소리로 낭독되고 ‘시’는 그렇게 희진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끝맺는다.
피해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가해자들은 계속 살아간다. 오직 미자만이 희진이 내지 못했던 목소리를 ‘시’로서 대신했다.
‘시’란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수면 위로 건지는 일이다. 그 일은 어쩌면 지난한 고통을 지나는 과정을 겪은 이들만이 건질 수 있는 열매일 것이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빠르게 변해가는 요즘, 느리고 힘든 과정을 감수하려 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책을 잃고 느끼는 일조차 이들에겐 너무나 느린 과정이다. 품을 들여 시나 소설책을 읽는 대신 숏츠 등 짧은 영상으로 줄거리를 익히고, 그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 작은 공백에 자리한 문맥은 사라진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 ‘시’에 대해 “더러움과 추함, 고통을 통과한 뒤, 타인의 고통마저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시를 쓰게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시인 역시 “시가 죽어가는 시대”라고 말한다. 이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잘못을 잘못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사건의 본질마저 흐려지는 오늘날 사회를 향한 메시지로 읽힌다.
그만큼 느리고 복잡한 것들은 점차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된다. 세대 갈등 속에서 노인은 사회의 짐처럼 느껴지고, 기억해야 할 역사와 사회적 참사는 어느새 가벼운 농담과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타인의 고통을 오래 바라보고 기억하는 일은 점점 더 낯설고 번거로운 일이 돼 가고 있는 셈이다.
결국 영화 ‘시’가 말하는 ‘시’는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기술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려는 인간의 태도인 셈이다.
외면하고 싶었던 슬픔과 고통을 끝내 응시하는 일. 무감각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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