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채시장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연기금 중 하나인 연금적립금관리운용독립행정법인(GPIF)이 국채를 대거 사들였다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GPIF의 운용자산은 일본 국민이 낸 후생연금과 국민연금 보험료를 바탕으로 조성된다. 최근 급등한 국채금리를 끌어내리기 위해 일본 정부가 GPIF를 움직인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가격 형성에 개입한다는 ‘관제 장세’ 논란이 불거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지난 14일 실시된 일본 20년물 국채 입찰이 2010년 이후 16년 만에 이례적인 호조를 보였으며, 이를 계기로 국채금리가 일제히 급락했다고 15일 보도했다. 시장에서는 GPIF와 같은 공적 성격의 대형 투자자가 입찰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입찰 결과가 발표된 14일 낮, 한 증권사 채권 거래실은 예상 밖의 수치에 믿기 어렵다는 반응으로 술렁였다. 입찰 수요의 강도를 보여주는 ‘테일’이 이례적으로 0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테일은 평균 낙찰가격과 최저 낙찰가격의 차이로, 수치가 작을수록 국채를 사려는 수요가 강했다는 뜻이다. 통상 10~20전 정도인 테일이 0이 된 것은 2010년 5월 이후 처음이다.
日 정부, GPIF 국채 투자 확대 시사
이같은 이례적 입찰 호조에는 GPIF의 국채 투자 확대 가능성을 내비친 각료들의 발언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에노 겐이치로 후생노동상은 입찰에 앞서 GPIF의 주식·채권 등 자산 배분 비율에 대해 “매년 전문적인 관점에서 검증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재검토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도 “지금처럼 성장전략을 강력하게 추진하면 엔화 자산의 투자 매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경제 여건이 크게 달라질 경우 GPIF의 자산 배분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타야마 재무상은 지난 10일에도 “GPIF를 비롯한 연기금이 일본 금융자산에 더 많이 투자하도록 뒷받침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시장은 두 각료의 발언을 정부가 GPIF의 국채 보유 비중을 늘리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최근 재정 악화와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지연 우려로 국채금리가 급등하자, GPIF의 막대한 자금을 활용해 국채시장을 떠받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닛케이 집계에 따르면 이번 입찰에서 낙찰 회사가 확인되지 않은 물량이 5623억 엔(약 5조1700억원)에 달했다. 6월 입찰의 2959억 엔, 5월의 1741억 엔보다 크게 늘었다. 이처럼 낙찰자가 밝혀지지 않은 물량이 많으면 GPIF와 같은 공적 성격의 대형 투자자가 매수에 나섰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GPIF는 2025년부터 일본 국채 입찰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다만 GPIF는 구체적인 투자 내용을 밝히지 않아, 이번 입찰에서 국채를 대거 사들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시장 우려는 GPIF가 실제로 국채를 얼마나 사들였느냐보다, 정부가 연금 자금을 동원해 금리를 끌어내리려 한다는 신호 자체에 쏠린다. BNP파리바자산운용의 기무라 류타로 선임 채권전략가는 GPIF가 수익률 수준을 충분히 따지지 않고 입찰에 참여해 이례적인 호조를 연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그는 정부가 GPIF를 동원해서라도 금리를 낮추려 한다는 인식 자체가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증권사 채권 딜러도 "GPIF가 시장을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시장 분위기가 식어버린다"며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으려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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