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마리아 사랑 병원을 배경으로 어느 날 한 장의 엑스레이(X-RAY) 사진이 공개된 뒤 벌어지는 일들을 따라간다. 그 안에는 남녀가 성관계를 하는 듯한 모습이 담겨 있는데, 직원들은 저마다 사진 속 인물을 추측하기 시작하고 확인되지 않은 의심은 삽시간에 퍼진다.
주인공인 간호사 윤영(이주영) 역시 이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병원 사람들의 추측은 어느새 진실처럼 굳어지는 듯 하다. 사람들은 확인보다 추측을, 진실보다 편견을 먼저 믿는다. 사람들은 엑스레이 사진을 찍은 범인을 찾는 것보다 성관계를 한 커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만 궁금해 한다.
의심은 보다 빠르게 사람들 사이를 파고든다. 확인되지 않은 온라인 게시글 하나에도, 짧게 편집된 영상 하나에도 사람들은 쉽게 마음이 흔들리고 기운다. 추측은 먼저 사실이 된다. 모든 것이 기록이 되는 시대지만 역설적으로 믿음은 점점 희미해진다. 영화 ‘메기’는 그 틈을 파고든다.
시작되면 멈출 줄 모르는 ‘의심’이라는 싱크홀
영화 속 또 하나 눈에 띄는 장치는 싱크홀이다. 처음엔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싱크홀은 가장 현실적인 장면으로 다가온다. 이 싱크홀은 의심이 커지는 구덩이이자 취업과 주거, 미래에 대한 불안 등으로 한 치 앞을 모르는 청년들의 불안을 상징한다.
모두가 불안하기에 끊임없이 확인하려 하고 확인할 수 없기에 쉽게 의심한다. 윤영과 성원 사이에 의심이라는 씨앗이 자라기 시작한 건 윤영이 성원의 전 여자친구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는 말을 들은 후 부터다. 윤영은 ‘설마’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이들의 관계에는 의심이라는 씨앗이 자라기 시작했다. 얼마 후 일어난 사건으로 윤영은 성원의 폭력성을 확신하고 이별을 통보한다. 단단할 것 같은 사랑 안에 스며든 의심은 쉽게 균열을 만든다.
결국 헤어진 후 성원은 “전 여친을 때린 적이 있다”고 인정하고 윤영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어 성원이 선 자리가 내려앉으며 큰 싱크홀이 된다. 윤영은 그 자리에서 싱크홀 안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우리 주변의 ‘메기’
영화의 장르는 미스터리 펑키 코미디다.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장면들에서 구교환 특유의 재치가 번뜩 날카롭게 빛난다. 이 영화는 국가인권위원회 인권 영 저 장 화 프로젝트 14번째 작품으로, 경쾌한 인권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제안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 감독과 구교환이 직접 각본을 쓰고 공동으로 편집하는 등 두 사람의 완벽한 호흡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수상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영화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영화 전반에 흐르는 내레이션인데, 내레이션의 주인공이 병원 한 켠 어항 속 ‘메기’라는 점이다. 메기는 3인칭 관찰자로서 이 모든 상황을 전하며 ‘의심’과 ‘믿음’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부분을 현실로 옮겨와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배우 천우희가 차분하고도 밝은 목소리로 메기의 개성을 표현해냈다.
89분이라는 러닝타임 끝에 사실 해결이 되는 건 없다. 커플의 엑스레이를 몰래찍은 범인도 알 수 없고 윤영과 성원의 관계도 어떻게 흘러갔을 지 알 수 없다. 윤영이 가만히 싱크홀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나지만 그 안에는 명백하지 않기 때문에 무어라 단정할 수 없는 많은 의미가 내포돼있다. 결국 관계도, 우리가 딛고 있는 세상도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우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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