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열풍이 미국과 한국, 일본 증시의 시가총액 지형도를 바꿔놓고 있다. 과거에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플랫폼, 자동차 기업들이 시가총액 순위 상단을 차지했다면 이제는 AI 반도체와 메모리 기업들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미국에서는 엔비디아가 애플을 제치고 세계 최대 기업으로 올라섰고, 한국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증시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메모리 업체 키옥시아홀딩스가 도요타자동차를 위협하며 시가총액 상위권에 오르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코스피는 8801.49를 기록하며 1년 전(2698.97) 대비 226.1% 상승했다. AI 반도체 수요 확대에 따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급등이 지수 상승을 견인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주가는 534.7%, SK하이닉스는 1037.3% 상승하며 코스피 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2일 기준 두 종목은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52%를 차지하고 있다.
AI 수혜가 반도체 업종에 집중되면서 한국 증시에서도 반도체 기업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삼성전자는 과거 스마트폰 중심의 IT 기업으로 평가받았지만 AI 시대 개막 이후 메모리 반도체 수요 확대의 핵심 수혜주로 부상했다. 최근에는 글로벌 상장사 시가총액 순위 10위권에 진입하며 세계 주요 빅테크와 경쟁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SK하이닉스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엔비디아의 핵심 HBM 공급사로 자리 잡으며 AI 시대 최대 수혜 기업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과거 D램 업황에 따라 실적이 좌우되던 기업에서 이제는 AI 인프라 확장의 핵심 기업으로 위상이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2년 전만 해도 글로벌 시가총액 순위 100위권 한참 밖에 머물렀던 SK하이닉스는 최근 12위까지 올라서며 글로벌 핵심 기술기업 반열에 합류했다.
반도체 업황 호조에 힘입어 국내 증시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코스피 12개월 목표치를 기존 9000에서 1만2000으로 상향 조정했다. 반도체 업황이 예상보다 오래 이어지고 기업 이익 전망도 개선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달 초 목표치를 8000에서 9000으로 올린 지 한달도 되지 않아 전망치를 다시 대폭 높였다.
한국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증시를 이끌고 있다면, 미국에서는 엔비디아가 시장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최근 시가총액 5조2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에 올랐다. 2017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당시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약 1170억 달러로 미국 대표 기술주 7개 기업(M7) 전체 시가총액의 3.4%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AI 학습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기업가치가 폭증했다. 현재 엔비디아는 M7 전체 시가총액의 22.5%를 차지하고 있다. 9년 만에 비중이 약 6.6배 확대된 셈이다. AI가 미국 증시의 권력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일본에서도 AI는 증시 지형을 흔들고 있다. 주인공은 낸드플래시 메모리 업체인 키옥시아홀딩스다. 일본 증시는 오랫동안 자동차와 산업재 기업들이 주도해 왔다. 도요타자동차는 일본 제조업의 상징이자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자리해 왔다.
하지만 최근 키옥시아 주가가 급등하면서 이 같은 공식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키옥시아는 최근 장중 7% 넘게 오르며 시가총액이 한때 45조엔을 돌파했다. 이에 따라 도요타를 제치고 일본 상장사 시가총액 2위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시가총액 순위 169위에 머물렀던 기업이 일본 증시 최상위권으로 뛰어오른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AI가 바꿔놓은 증시 지형 변화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키옥시아는 데이터센터향 매출 비중 확대로 경기 민감도를 줄이고 절제된 공급 전략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구축하고 있다"며 "이 같은 변화는 메모리 업종 전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목표주가 또한 각각 55만원, 380만원으로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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