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은 더 이상 아저씨들의 공간이 아니다."

  • 2030 여성 팬이 바꾼 풍경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SSG 랜더스 경기에서 팬들이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SSG 랜더스 경기에서 팬들이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봄이면 설레는 이들이 있다. 꽃구경이 아니라 야구구경이다. 응원봉, 떼창, 굿즈, 그리고 춤. K-pop을 대표하던 팬 문화가 야구장으로 옮겨오면서 45년 역사의 한국 프로야구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해 프로야구는 역대 최다인 1231만 여명의 관중을 동원하며 연간 1조 원이 넘는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해 1300만 관중이라는 새로운 기록에 도전한다. 시범경기부터 약 44만 명이 몰리며 흥행 기대를 키우고 있다. 여성 팬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프로야구는 명실상부한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젊은 여성 팬층이 있다. KBO(한국프로야구협회)가 공개한 티켓링크 통계에 따르면 2025시즌 온라인 예매자 중 여성 비율은 57.5%로 나타났다. 특히 20대 예매자 중 여성 비율은 63.6%, 30대는 56.9%로 젊은 여성층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2025년 1~5월 기준 프로야구 티켓 구매자 가운데 20~30대 여성 비중은 38.3%로 집계됐다. 여성 팬의 적극적인 소비와 참여가 관람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프로야구 관중 현황 그래프. AJP 송지윤
프로야구 관중 현황 그래프. AJP 송지윤
 
달라진 야구장 풍경은 입구부터 느껴진다.
“서울 LG, 꿈을 향해 달려가자!” 포근한 주말 오후, 잠실종합운동장역 일대에는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온 팬들은 마치 약속된 동선처럼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경기 시작 전부터 이미 축제는 시작된 셈이다. 붉은 유니폼 사이로 캐릭터 협업 유니폼을 입은 20~30대 여성 팬들이 단연 눈에 띈다.

LG 팬 유은서(23) 씨는 응원가를 촬영하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느라 바쁘다. “야구 보러 왔다기보다 놀러 온 느낌이에요. 응원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루 코스예요.”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 경기에서 헬로키티 협업 유니폼을 입은 2030 여성 팬이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AJP 유나현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 경기에서 헬로키티 협업 유니폼을 입은 2030 여성 팬이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AJP 유나현
이 말처럼 야구장은 더 이상 단순한 관람 공간이 아니다. 경험을 소비하는 플랫폼으로 변했다.
  
변화는 먹거리와 굿즈에서 가장 빠르게 나타난다. 번데기와 맥주 대신 마라꼬치, 과일 음료, 디저트가 자리 잡았고, 구단 매장에는 키링, 포토카드, 캐릭터 상품이 전면에 배치됐다. 키오스크 앞에는 원하는 선수의 포토카드를 뽑기 위해 줄을 선 팬들로 붐빈다. LG트윈스 팬 유정민(24),박시현(26) 씨는 “원하는 선수가 나올 때까지 여러 장을 구매한다”며 “굿즈 자체 또한 즐길 거리”라고 말했다.

이 같은 소비 패턴은 여성 팬 증가와 맞물려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전체 관람객 중 여성 비중도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티켓 구매에서도 20~30대 여성 비율은 36.6%로 남성을 앞선다.
 
11일 서울 잠실야구장 내 LG 트윈스 굿즈샵에서 팬들이 커스텀 포토카드를 뽑기 위해 키오스크 앞에 줄을 서고 있다.
11일 서울 잠실야구장 내 LG 트윈스 굿즈샵에서 팬들이 커스텀 포토카드를 뽑기 위해 키오스크 앞에 줄을 서고 있다.
관중석의 풍경도 달라졌다. 2만3750석이 가득 찬 경기장에서는 응원가를 따라 부르는 동시에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경기 종료 후에도 팬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않는다. 슬로건을 들고 사진을 찍고, SNS에 공유하며 경험을 완성한다. 야구는 더 이상 ‘보는 스포츠’가 아니다. 참여하고 기록하는 콘텐츠가 됐다. 

선수를 소비하는 방식도 변했다. 경기력뿐 아니라 외모, 서사, 팬서비스까지 포함한 ‘팬덤형 소비’가 확산되면서 선수 개인을 중심으로 팬층이 형성되고 있다. 경기 후 선수 출퇴근길을 기다리는 팬들의 모습은 이제 일상적인 풍경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선수들이 사실상 아이돌처럼 소비되는 흐름이 나타난다”며 “개인 팬덤이 팀 전체 흥행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 경기 종료 후 팬들이 퇴근하는 선수에게 사인을 받고 있다 AJP 유나현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 경기 종료 후 팬들이 퇴근하는 선수에게 사인을 받고 있다. AJP 유나현
이에 맞춰 구단들도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선다.

특정 선수를 중심으로 한 ‘스페셜 데이’, ‘플레이어스 데이’가 늘었고, 한정판 굿즈는 출시와 동시에 품절된다. KIA는 패션 브랜드 IAB Studio(아이앱 스튜디오)와 협업했고, LG 트윈스는 유튜브 기반 브랜드 ‘빠더너스’와 협업해 의류 컬렉션을 출시했다. 

키움은 여대 특강과 대학 연계 이벤트를 통해 여성 팬 유입을 확대하고 있다. KBO 역시 MZ세대를 겨냥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대학생 마케터 운영, 팝업스토어, SNS 콘텐츠 확대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 경기에서 팬들이 굿즈를 들고 인증 사진을 찍고 있다. AJP 유나현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 경기에서 팬들이 굿즈를 들고 인증 사진을 찍고 있다. AJP 유나현
3월 30일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시민이 KBO 프로야구 협업 굿즈를 살펴보고 있다 AJP 유나현
3월 30일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시민이 KBO 프로야구 협업 굿즈를 살펴보고 있다. AJP 유나현
이 변화는 산업 전반으로 확산된다. 커피 프랜차이즈, 편의점, 식품업체까지 KBO와 협업 상품을 출시하며 팬 경험을 확장한다. 야구는 더 이상 경기장 안에 머물지 않는다.

경제 효과도 뚜렷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24년 프로야구 소비지출을 기준으로 전국 생산유발액을 1조1121억 원, 취업유발 인원을 9569명으로 추산했다. 구단 입장 수입은 2000억 원을 돌파했다.

또한 카드사 분석에 따르면 야구 경기일 야구장 주변 주요 업종 매출은 경기 없는 날보다 약 9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경기 후 외식 매출이 대전 46%, 대구 42% 증가하는 등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이제 프로야구는 기업 의존형 구조를 넘어 자생적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구단은 흑자를 기록하며 새로운 수익 모델을 입증했다. 올 시즌에는 경기 자체도 더 빠르고 몰입감 있게 바뀐다. 피치클록 규정 강화로 경기 템포가 빨라지면서 팬 경험은 더욱 리듬감 있게 재편될 전망이다.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 경기에서 관람객이 경기를 보고 있다 AJP 유나현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 경기에서 관람객이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AJP 유나현
결국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팬’이 있다. 특히 20~30대 여성 팬의 유입은 단순한 관중 증가를 넘어 프로야구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관람 방식은 참여형으로, 소비는 경험 중심으로, 산업은 협업과 확장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야구장은 더 이상 아저씨들의 공간이 아니다. 이제 그곳은 노래하고, 사진 찍고, 소비하고, 공유하는 하나의 문화이자 산업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단순한 유행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K-pop이 음악 산업을 넘어 하나의 문화 산업으로 확장됐듯, 프로야구 역시 팬덤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 경기 종료 후 팬들이 퇴근하는 선수를 기다리고 있다 AJP 유나현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 경기 종료 후 팬들이 퇴근하는 선수를 기다리고 있다. AJP 유나현
KBO 관계자는 “지금 야구장은 경기장이 아니라 플랫폼”이라며 “팬들이 만들어내는 경험 자체가 핵심 콘텐츠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야구의 미래는 그라운드 위가 아니라 관중석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응원가를 부르고, 사진을 찍고, 굿즈를 사는 그 순간들이 모여 하나의 산업을 움직인다.

야구는 여전히 9회말까지 이어지는 경기다. 하지만 지금의 프로야구는 그 이상의 이야기로 확장되고 있다.

문화가 되고, 소비가 되고, 하나의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 경기 종료 후 박은서30·왼쪽 씨와 이나영30·오른쪽 씨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JP 유나현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 경기 종료 후 박은서(30·왼쪽) 씨와 이나영(30·오른쪽) 씨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JP 유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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