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 산유국, 가장 두려운 건 '불완전한 종전'…이란 통제력 고착 경계

  • 이란 협상력만 키운 채 끝나면 중동 불안 장기화

  • 호르무즈 통제 굳어지면 에너지·투자 충격 우려

사우디아라비아 라스 타누라 정유 시설 사진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라스 타누라 정유 시설 [사진=연합뉴스]
걸프(페르시아만 연안 아랍 산유국) 산유국들이 미국과 이란의 2주 휴전 합의를 마냥 반기지 못하고 있다. 전쟁 자체도 원치 않았지만,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사실상의 통제력을 유지한 채 협상 국면으로 넘어가는 상황을 더 큰 위협으로 보기 때문이다.
 
9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레프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국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을 성급하게 멈추고 휴전 협상으로 방향을 튼 데 대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이들이 가장 경계하는 대목은 호르무즈 해협 통항 문제다. 에너지 수출과 식량·생필품 수입 상당 부분을 해협에 의존하는 만큼, 이란이 통항을 협상 카드로 계속 쥐는 상황은 지역 경제에 직접적인 부담이 된다.
 
통행 제한이나 통행료 부과가 현실화하면 걸프 국가들은 물론 세계 에너지 시장 전체가 다시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피해는 이미 현실화했다.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은 걸프 지역의 미군 기지와 군사시설뿐 아니라 에너지 인프라와 상업·주거 지역까지 겨냥했다. 정유시설과 액화천연가스(LNG) 설비가 파손됐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원유와 가스 수출도 장기간 차질을 빚었다. 드론·미사일 요격 과정에서 패트리엇 등 고가 방공미사일도 대거 소진돼 추가 방어 비용 부담까지 커진 상태다.
 
걸프 국가들이 심각하게 보는 것은 눈에 보이는 피해만이 아니다. 텔레그레프는 “안정적 지역이라는 걸프 국가들의 이미지가 흔들리면서 투자자 신뢰와 관광 수요, 부유한 외국인 거주자 유입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전쟁 피해 복구보다 더 어려운 과제가 지역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전쟁이 어정쩡하게 마무리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미국이 이란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한 채 휴전으로 물러서면, 군사력만 일부 약화한 이란이 앞으로도 해협과 지역 안보를 계속 흔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걸프 측 입장은 공식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유세프 알 오타이바 주미 UAE 대사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단순한 휴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이란의 위협을 포괄적으로 해소하는 결정적 결과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와르 가르가시 UAE 대통령 고문도 “호르무즈 해협은 어떤 국가에도 인질로 잡혀서는 안 된다”며 “항행 자유 보장이 휴전 합의의 핵심 요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걸프 국가들의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호르무즈 통행료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이란의 ‘합작’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다만 백악관은 통행료 없는 전면 재개방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걸프 국가들 입장에서는 이란이 해협 통제권을 유지한 채 통행료까지 거두는 구조가 굳어질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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