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돋보기] 원가 줄였는데...가격 더 비싼 무라벨 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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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오현 수습기자
입력 2023-01-2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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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산원가 절감에도 더 비싼 이유...재고떨이·유통채널 차이

  • "ESG 경영 실효성 위해 소비자에 구매 혜택 돌아가도록"

김포시 한 대형마트 내 생수 코너에 배치된 생수. ‘무라벨 생수는 묶음으로만 구매가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사진=최오현 수습기자]

생수 제조 업체가 '무라벨' 생수로 '플라스틱 줄이기'에 앞장서고 있지만 이를 통해 줄인 원가 절감분이 소비자가에는 반영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판매 채널에서는 생산 원가가 줄어든 무라벨 생수가 라벨이 있는 것보다 더 비싸기도 해 소비자 구매 동기를 낮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생수 제조 업체별 각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일부 무라벨 생수가 라벨 생수보다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 동원F&B에서 생산되는 동원샘물(2.0L*36병 기준)의 경우 무라벨 생수는 2만2050원에 판매되고 있다. 반면 라벨지가 둘러싸인 생수는 이보다 850원 저렴한 2만1200원에 팔리고 있다. 500㎖*20병 기준으론 무라벨이 4530원으로, 라벨(4480원)보다 50원 더 비싸다. 실제 구매평 역시 라벨 처리한 생수가 200여개 이상 더 많다. 

풀무원샘물도 무라벨 생수가 ㎖당 가격이 비싸다. 풀무원몰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라벨 생수 2L 12병(1만400원)과 500㎖ 40병(1만7200원) 묶음으로 구분되는데, 각각 ㎖당 0.43원 0.86원이다. 무라벨 생수는 330㎖ 40병(1만5400원) 묶음만 판매 중인데, ㎖당 1.16원으로 가격이 가장 높다.
 
동원 공식몰에서 판매 중인 2L 용량의 동원샘물 36개 묶음. 무라벨 생수가 라벨 생수 대비 850원가량 비싸다. [사진=최오현 수습기자]

이 밖의 업체도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롯데칠성몰 아이시스 생수는 무라벨 생수 가격이 라벨 생수보다 비쌌으나 취재가 시작된 직후 라벨과 무라벨 가격이 동일하게 변경됐다. 

반면 무라벨 생수를 제조하면서 생산 원가는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풀무원샘물은 라벨과 무라벨 생수 사이 생산 원가가 5%가량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원샘물은 라벨 길이를 20% 줄이고, 용기 경량화를 적용하면서 무라벨 생수 생산 원가가 라벨 생수 대비 1% 절감됐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업계 관계자는 "무라벨을 적용하며 정확한 생산 원가 절감분은 대외비지만 내부에선 확실히 원가가 절감되는 부분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면서 "다만 생산 원가가 줄어든 만큼 영업이익에 반영되기 때문에 절감되는 비용을 소비자가에 반영해 가격을 내리는 것을 주저하는 듯하다"고 귀띔했다.

이런 가운데 무라벨 생수 생산 규모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아이시스는 전체 약 40% 규모가 무라벨로 대체됐고, 생수 업계 부동의 1위인 제주개발공사의 삼다수도 판매량의 42%가량을 무라벨 생수가 차지하고 있다. 

플라스틱을 줄인 친환경 생수 판매 규모가 커질수록 영업이익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기업 로고 등이 양·음각으로 새겨진 무라벨 전용 용기를 위한 초기 설비 투자비를 감안하더라도 금형 수정에 필요한 투자비가 수천만원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생수 원자재에서 용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60% 내외다. 
 

김포시 한 대형마트 내 자판기에 배치된 생수 [사진=최오현 수습기자]

생수 업체들은 이 같은 가격 차이가 유통 채널 차이로 발생할 뿐 출고가는 동일하다는 설명이다.

동원F&B, 풀무원샘물, 제주개발공사 등은 "판매·유통 채널별로 가격이 상이하게 책정되는 것일 뿐 출고가는 라벨과 무라벨 생수 모두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동원F&B 측 관계자는 "동원몰은 공식 사이트이긴 하지만 자회사인 동원디어푸드가 운영하고 있어 별도의 온라인 유통 채널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풀무원샘물 측은 "같은 라벨 또는 무라벨 생수끼리도 용량이 달라지면 패키징 차이로 가격 차이를 지닌다"며 "같은 용량으로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공식몰에서는 동일한 용량의 라벨·무라벨 생수를 판매하고 있지 않아 비교가 어려웠다. 

최근 일부 제과 업체가 원가 인상 요인에도 중량을 늘려 소비자 부담을 줄인 것이 화두가 되면서, 생수 제조 업체의 이 같은 관행과 대비되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제주도개발공사는 원가 인상을 이유로 다음 달 1일부터 삼다수 출고가를 평균 9.8% 올릴 예정이다.
 

김포시 한 대형마트 내 생수 코너에 배치된 생수. 무라벨 생수는 묶음으로만 구매가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사진=최오현 수습기자]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자신의 신념과 부합하는 소비를 지향하는 '가치소비'가 트렌드지만 대다수 소비자들은 당장 저렴한 상품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30대 직장인 최모씨는 "집에서 생수를 사 먹는데 환경 보호를 위한 생각은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조금이라도 저렴한 것을 고르게 된다"고 토로했다. 20대 직장인 김모씨는 "원가 인상 요인은 소비자가에 곧바로 반영되는데 원가 저하 요인은 소비자가에 반영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대다수 소비자에게 무라벨 생수 구매 동기가 생겨야 기업의 ESG 경영 목표가 더욱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남아있는 라벨 생수 재고를 밀어내려고 하다 보니 라벨 생수가 오히려 저렴한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선 구매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아주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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