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실에서 아주경제 취재진의 질문에 이종엽 변호사협회장이 답변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시민들이 일생일대에 한 두번 겪어볼까말까한 그런 재판에서 억울함이 없도록, 실체적인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도록 '증거개시제도'를 적극 도입해야 합니다."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지난 23일 서울 역삼동 변협회관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디스커버리(Discovery·증거개시제도)의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변론이 시작되기 전에 소송 당사자가 소송과 관련된 사실관계나 증거자료 수집하는 절차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이 협회장은 출마 당시부터 미국식 증거개시제도 도입을 공언해왔다. 개인이 국가·기업·의료기관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낼 경우,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워 소송을 포기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증거개시제도는 이 협회장이 기치로 내건 '사법권력의 시민화'를 구현하기 위한 여러 요소 중 하나다. 현 51대 대한변협 집행부는 △대배심제 △전관 변호사 수임기간 제한 등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이 협회장은 "디스커버리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검찰의 반박논리 근거가 되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일부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이 협회장은 취임 당시부터 '할 말은 하는 대한변협’을 표방해왔다. 올 한해 굵직한 사회 이슈로 떠오른 사건마다 대한변협은 쓴 소리를 냈다. 그는 “법치와 정의, 인권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소신껏 소리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이 협회장은 최근 대장동 특혜 의혹과 관련해서도 "특검 도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다.
 
국회를 뜨겁게 달궜던 세무사법 개정안과 관련해 이 협회장은 “법무사·노무사·세무사·행정사 등 법조인접 자격사 숫자가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상태에서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방관하고 있는 상황이 무책임하고 안타깝다”며 “국민들에게 양질의 법률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적극 해결에 나서야 된다”고 했다. 세무사법 개정안은 변호사에게 세무대리 업무는 허용하되, 장부작성 대리와 성실신고 확인 등 2가지 업무는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변호사들은 이러한 세무사법 개정안이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반발해왔다.
 
사회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이 협회장도 안타까움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법조삼륜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한변협 수장으로서 "선배 변호사들이 겪어보지 못했던 치열한 경쟁과 가혹한 시장 환경을 이해하고 후배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협회장과의 일문일답.
 
-협회장으로 취임한 지 9개월 가량 지났다. 협회장으로 취임한 뒤 법조계에서 많은 일들이 많이 발생했는데, 그간의 소회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올 한 해도 법조가 여러 논란의 중심이 선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법관 인사 과정에서 불거진 사법부 독립성 문제 △중수청 설치 △검찰총장 임명을 둘러싼 갈등 △검경수사권 조정 및 실시 등 조용하지 않은 날이 드물었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이슈가 쏟아질 때마다 세간의 이목이 대한변협에 쏠렸다. 그만큼 무겁고 중압감이 드는 자리다. 하지만 지난 9개월을 돌이켜볼 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변호사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고,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고 자평한다.
 
-출마 당시 '할 말은 하는 변협'이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지금의 변협에 몇 점을 주고 싶나.
 
80점 정도 주고 싶다. 현안에 대해서는 여러 사정을 감안해서 신중하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변협 입장에서는 특정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한 가지 측면만 보고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소신대로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대한변협은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 직역을 대표하는 법정단체다. 법치와 정의 인권 부문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가감 없이 할 말을 하겠다.
 
-공공영역을 시장에만 맡기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변협의 공공플랫폼 출시 진행 상황은 어떤가.
 
매달 변호사들은 사기업인 법률플랫폼에 키워드별로 적지 않은 돈을 납부하고 있고, 돈을 낸 변호사들을 프리미엄 로이어(premium lawyer, 최근 로톡은 active lawyer로 이름을 변경)라고 소개하면서 이들이 실력이 있든 없든 유능한 변호사처럼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로톡 변호사들의 경력이 플랫폼 서비스에서 마치 사실인냥 소개되면 법률소비자들한테 피해가 갈 수 있다. 아울러 이들은 투자자본에 제한이 없다. 한번도 흑자가 난 적이 없는 로톡이 구성사업자와 소비자를 종속시키기 위해 수년간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고 버틸 수 있는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법무부는 여기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다. 법률시장에 진입한 자본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누구도 규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현재와 같은 민간 사기업의 플랫폼 서비스를 허용하면 공공성은 물론이고 사법 정의마저 건전하게 유지된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민간 플랫폼을 대체하는 '변호사 정보센터'는 내년 상반기 쯤 출시 예정이다. 변협은 엄밀한 검증을 거쳐 확인된 정확한 변호사 정보를 법률소비자인 국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할 계획이다.
 
-취임 당시부터 ‘전관 변호사‘ 사건 수임 기간·고문 활동 제한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전관을 찾는 풍토는 재판에서 법관 한 사람에게 사법 권력이 집중돼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다. 법관의 부담을 줄이면서 재판 제도를 개선하면 점진적으로 개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디스커버리 제도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면 '사실인정' 단계에서 승패가 좌우될 수 있다. 그러면 불필요한 항소가 줄어든다. 대법원의 높은 상고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사실인정 권한을 법관 한 명이 담당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힘 있는 기관과 개인이 소송을 할 때 약자인 개인이 다양한 증거에 접근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법원으로서도 '좋은 재판'을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며, 전관문제 개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배심제 등도 중요하지만 미국식 디스커버리 제도, 우리 말로 하면 증거개시제도가 더 시급하다.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양분화 돼 있다는 지적이 있다.
 
정치권부터 너무 갈등 구조다.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과 과도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은 자제했으면 한다. 예를 들어 국민들을 위해 바람직한 법안이라면 여야가 함께 공동으로 발의하고 처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법안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다른 당이 발의에 참여하기 때문에 나는 동참할 수 없다, 이런 모습은 참 안타깝다. 사회 주도 세력들이 이와 같은 불협화음을 극복하고 불식시키려 노력하면 보다 합리적인 풍토가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조계에서도 후배 변호사들은 과거 선배 변호사들이 겪어보지 못했던 또 다른 환경에 처해있다. 경쟁이 매우 치열해졌고, 그만큼 법률시장 상황이 엄혹해졌다. 젊은 변호사들은 우리 법조계를 이끌어나갈 미래 주역들이다. 선배들이 솔선수범해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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