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샌더스 날자 반기는 트럼프, '머니 파워' 블룸버그가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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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0-02-24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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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미국 대통령 선거는 유독 길고 힘든 여정이다. 다른 선진국과 달리 선거 운동 기간에 제한이 없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되는 '쩐의 전쟁'이기도 하다. 지난 2월 3일 미 대선 레이스의 첫 단추인 아이오와 당원대회(코커스)가 실시된 이후 민주당 경선의 초반 레이스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다음달 3일 14개주에서 경선이 동시에 치러지는 '슈퍼 화요일'은 미 대선의 최대 변곡점이다.  이날의 '빅 매치'를 앞두고 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여론도 급변하고 있다. 탄핵의 굴레에서 벗어나자마자 민주당 경선 '김빼기' 유세에 열을 올리는 트럼프 대통령, 초반 4개 경선을 건너뛰고 '슈퍼 화요일'부터 등판하는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의 '금전 선거' 논란, 예상과 달리 초반부터 죽을 쓰고 있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 급진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대세론,' 38세 동성애자로 아이오와에서 깜짝 1위를 차지한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  지금 미국은 온통 선거 유세와 광고로 떠들썩하다. 민주당에서 가장 먼저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보는 지금은 중도 하차한 존 델라니 전 메릴랜드주 하원의원이다. 이번 대선(11월 3일)을 무려 1100일이나 앞둔 시점이다. 이렇게 터무니없이 긴 선거 여정은 후보 검증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지만 유권자들을 지치고 혼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미국 대선의 투표율이 다른 국가들보다 저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성공한 대통령'과 '실패한 대통령'을 가르는 기준으로 재집권 여부가 첫번째로 꼽힌다. 성공한 부동산 재벌 출신이며 정치적 이단아 트럼프는 여느 역대 대통령보다 승부욕과 명예욕 모두 강하다. 트럼프는 이달 초 상원의 부결로 탄핵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자 곧바로 선거운동에 속도를 냈다.  지난 4일 하원에서 행한 대통령 신년 국정연설은 '리얼리티 쇼'의 귀재인 트럼프의 선거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이날의 연설은 트럼프의 지나친 '마이웨이'식 국정운영에 대한 민주당의 분노, 그리고 어느 때보다 깊어진 미국 사회의 분열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트럼프는 연설에서 일자리 창출과 낮은 실업률, 주가 상승, 미·중 무역 합의 등 80분간 자신의 '치적'을 열거하며 '위대한 미국의 귀환'을 강조했다. 연설 직후 트럼프의 연설문을 찢어버린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은 17일 CNN과 인터뷰에서 "만약 거짓말이 없는 연설문 페이지를 찾을 수 있었다면 그것을 찢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트럼프가 재선되는 상황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하며 민주당의 단합을 촉구했다. 민주당은 현재 진보와 중도로 갈라져서 후보들의 공개적인 상호 비방전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당 내부의 분열이 계속된다면 현직 대통령의 프리미엄을 안고 초반부터 전력 질주하는 트럼프를 물리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낸 발언이다.  

사실상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트럼프는 현직 대통령의 관례를 깨고 민주당 경선 초기부터 연일 선거자금 모금 행사 및 대규모 유세집회를 열며 지지층 결집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 경선 흥행의  '김빼기' 차원이다. 그는 하나마나한 공화당의 아이오와주 코커스에서 97%의 압도적 지지로 승리 했다. 아이오와는 대표적인 대두산지로 미 중서부 '팜벨트'의 핵심이다.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지역의 하나로 미국 대표단이 무역협상에서 중국에게 대규모 美 농산물 수입을 줄기차게 강조했던 배경엔 '팜벨트' 농민표를 의식해서이다. 10일에는 두번째 경선인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앞두고 맨체스터에서 대규모 '맞불' 집회를 열어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빚어진 사상 초유의 '개표 지연 대참사'로 인해 분위기가 초상집인 민주당을 더욱 몰아세웠다. '무죄'로 귀결된 탄핵 정국에 대한 지지층 결집 노력으로 트럼프의 지지도는 취임 후 최고치(49%)를 기록한 점도 민주당에겐 큰 부담이다.

취임 초부터 각종 막말과 추문으로 논란이 멈추지 않고 있지만, 트럼프의 지지율이 견고한 첫 번째 이유는 미국의 낮은 실업률과 높은 주가 등 양호한 경제 성적표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말부터 TV 광고를 통해 미국의 경제 호황을 대대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선거 직전까지 경제 상황이 돌변하지 않는다면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을 크게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특히 지역과 세대 갈등으로 분열된 민주당은 각종 정책 어젠다에서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최종 주자가 빨리 결정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 지금 상황이 트럼프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가?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아직 많은 미국인들은 여러 민주당 후보들 중 누구를 지지할 것인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경선이 흥행에 성공하고 최종 후보가 결정되어 트럼프와 1:1 대결이 시작된다면 유권자들의 표심이 누구에게 쏠릴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 역대 대통령과 비교하면 트럼프의 지지율은 자신의 경제적 성과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트럼프는 2018년 11월 중간 선거가 민주당의 '하원 장악'으로 귀결되면서 뼈아픈 경험을 했다. 특히 공화당은 2016년 대선 때 트럼프에게 결정적 승리를 안긴 최대 격전지이며 '러스트벨트(쇠락한 제조업 지대)'의 핵심인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간에서 민주당에게 의석을 대거 잃었다. 즉, 트럼프의 재선 가도에 경고등이 켜진 상태이다. 이 지역에서 공화당에 등을 돌린 유권자의 표심을 다시 얻는 것은 트럼프 재선 캠프의 최대 당면 과제이다. 
            
트럼프는 민주당 여러 후보 중에서 누가 최종 승자로 부각되는지를 지켜보며 구체적인 선거 전략을 수립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오는 6월까지 각 주에서 실시되는 코커스와 프라이머리가 끝나면 민주당과 공화당은 전당대회를 열어 최종 대선 후보를 결정한다. 민주당은 7월 13일부터 16일까지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공화당은 8월 24일부터 27일까지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각당의 대선후보가 정해지면 수차례 TV토론과 지역유세가 시작된다. 11월 3일 대선에서 선거인단 538명의 과반인 270명을 확보하는 후보가 승리한다. 미국에서 50개주를 돌며 9개월에 걸친 장기전을 치르려면 자금도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머니 파워'가  바로 선거의 경쟁력이라는 공식이 자리를 잡으면서 대권 주자들의 후원금 모금 경쟁은 갈수록 치열하다. 20여명의 민주당 경선 후보 중에서 벌써 현재까지 13명이 '쩐의 전쟁'에서 실탄이 바닥나 하차했다.    


 

대선 선거 운동 개시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 (노퍽 로이터=연합뉴스) 마이클 불룸버그 전 뉴욕 시장이 미국 버지니아 주 노퍽에서 첫 대선 선거 운동을 개시하며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돈의 위력은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유감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 중심엔 아직 경선 마운드에 정식으로 등판도 안한 미국 9번째 부호인(포브스 집계)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78)이다.  재산이 63조원에 달해 트럼프보다 18배나 부자인 블룸버그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초반전에서 맥을 못추자 민주당내 중도 표심이 그에게 쏠리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말 출마를 선언한 뒤 2달여 동안 후원금 없이 자비로만 4억900만 달러(약 4920억원)를 TV와 디지털 광고 등 선거 비용으로 쓰면서 전국적으로 유권자들의 인지도를 높였다. 그 결과 최근 일부 여론 조사에서는 31%를 기록한 샌더스 상원의원에 이어 19%로 지지율 2위에 올랐다. 자신의 이름을 딴 세계 최대 금융정보 미디어 그룹 블룸버그 L.P.의 사주이자 창업자인 그는 대권 고지가 보이자 '이해 충돌'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회사를 매각하고 그 자금을 자선재단에 기부할 것이라며 승부수를 띄우기도 했다. 그의 전략은 단순하다.  상대방보다 비교가 안되는 천문학적인 물량 공세이다. 이러한 전략으로 그는 뉴욕 시장에 3번이나 당선되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이 민주당 경선의 '게임체인저'로 급부상하자 민주당 대선후보들은 집중 견제에 나서고 있다. 내심 샌더스 상원의원 대세론이 확고해지는 것을 바라고 있는 트럼프도 블룸버그의 상승세에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다. 2016년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위협했던 샌더스 상원의원(78)은 미국의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부유세나 무상 대학 교육, 건강보험 대폭 확대 등 급진적인 공약으로 사회주의자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사회의 불평등에 좌절하는 많은 젊은 진보층이 그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샌더스는 지난 주말 자신의 텃밭인 네바다주에서 치러진 3차 경선에서 압승을 했다. 이로써 아이오와에서 부티지지 돌풍으로 1위를 뺏긴 샌더스는 뉴햄프셔에 이어 2연승을 달성, 초반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중도 성향의 블룸버그는 진보 성향의 유권자 지지에 의존하는 샌더스 카드로는 트럼프를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하며, 향후 민주당 경선 구도를 자신과 샌더스의 양자 싸움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결국 샌더스 vs 블룸버그 양자 대결? 

뉴욕 타임스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캠프는 샌더스가 최종 후보가 되는 것이 블룸버그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자신보다 훨씬 막대한 선거 비용을 쓰며 무당파와 공화당내 중도표를 분산시킬 가능성이 있는 블룸버그에 대한 경계심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키 171㎝인 블룸버그 전 시장을 '미니'라고 조롱하며 그가 "민주당 후보직을 불법으로 매수하고 있다. 샌더스로 부터 (대선 후보 기회를)  빼앗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블룸버그도 "당신은 왜 그렇게 버니(샌더스)와 붙고 싶냐"고 받아치자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오히려 당신과 맞붙고 싶다"고 응수했다.  대선 후보들 간의 끝없는 설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초미의 관심사는 당장 코앞으로 다가선 '슈퍼 화요일'의 결과일 것이다.  

미 대선 일정에서 코커스 또는 프라이머리를 가장 많이 실시하는 화요일을 '슈퍼 화요일(Super Tuesday)라고 한다. 올해는 텍사스, 노스캐롤라이나 등이 포함된 14개주에서 1357명의 대의원이 선출된다. 어느 후보라도 반전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자칫 중도 하차까지 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올 수 있다.  무엇보다도 초반 4개주 경선은 건너 뛰고 민주당 전체 대의원표 35%가 걸린 이번 슈퍼 결전부터 대의원 확보에 나서는 블룸버그의 선전 여부는 이번 대선의 '풍향계'라고 할 수 있다. 블룸버그가 선전을 하더라도 바이든 전 부통령, 부티지지 전 시장,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 등 만만치 않은 중도 후보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간다면  샌더스와의 양자대결 시니리오는 차질이 불가피하다. 특히 바이든 후보의 완주 여부와 진보 진영 측에서 세확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후보의 거취도 관심사이다. 민주당에서 누가 반(反)트럼프 대세론을 형성할 것인지 빠르면 다음 주엔  대체적인 윤곽이 나타날 전망이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득표율은 2.1% 뒤졌지만 선거인단수에서는 77명이나 앞섰다. 소위 경합주(swing state)로 분리된 11개주 대부분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덕분이다.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플로리다는 전통적으로 3대 경합주이다. 트럼프는 지난번 이곳을 모두 싹쓸이 하고 미국의 제조업 몰락을 상징하는 북동부 '러스트벨트'와 중서부 '팜벨트'에서 선전하면서 힐러리 후보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이번에도 미국 대선은 경합주 표심잡기 싸움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선 과정은 우리에게 초미의 관심사이다. 한국의 안보나 경제 등 모든 문제에 미치는 대통령의 막대한 영향력 때문이다. 트럼프는 엊그제 선거 유세에서 한국과의 무역 문제를 언급하면서 뜬금없이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까지 폄훼했다.  당장 CNN은 다양성을 비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를 "미국이 어떻게 생겨난 나라인지를 모르는 반(反)미국적 생각"이라고 보도했다. 어떤 미국 배우는 "백악관에 기생충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난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트럼프 캠프가 유권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여러가지 선거 전략을 수립하고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아직 분명하지 않은 것이 있다. 즉, 시도 때도 없이 부적절한 언행을 일삼으며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계속하는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가? 아니면 이런 대통령의 특이한 행동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다수인가?

 

뉴햄프셔 유세하는 샌더스 (워싱턴 AP=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6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유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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