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비운의 '신종 코로나' 세대

베이징=이재호 특파원입력 : 2020-02-13 04:00
취업시장 한파, 기업 60% 채용 연기 中경제, 무역전쟁 이은 초대형 악재 일자리 감소폭 사스 때 훨씬 웃돌듯 통제·억압 재확인, 사회적 불만 고조
중국 장시성 난창에서 대학을 다니는 멍예(孟葉·21)씨는 방학을 맞아 고향인 충칭으로 돌아갔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이 발생하면서 발이 묶였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게 만든 바이러스도 무섭지만 그보다 더 그녀의 마음을 짓누르는 건 신종 코로나 사태로 취업 시장에 불어닥친 한파다.

올해 졸업반인 멍씨가 방학 전 응시했던 몇몇 기업의 인턴 채용 전형은 무기한 연기됐다. 3월 초 난창 각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공개 채용 행사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멍씨의 대학은 특수한 상황이라는 이유로 성적표 등 각종 증명서 발급 업무까지 중단했다. 학교에 돌아가더라도 장시성 정부의 방역 정책 때문에 다른 지역에 가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다. 취업 전선에 뛰어들자마자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중국의 3~4월은 채용과 구직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기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이 적극적으로 구직에 나서는 데다 인구 대이동이 이뤄지는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 직후라 도처에 인력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이 시기를 '금삼은사(金三銀四·3월이 취업 시장 극성수기이고, 4월이 그 다음이라는 뜻)'라고 부른다.

올해 취업 시장에 새로 유입될 대학 졸업생은 사상 최대인 874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구직난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해질 전망이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던 중국 경제에 신종 코로나라는 초대형 악재가 더해진 탓이다.

소비가 위축되고 공장 가동률이 낮아져 경제 성장률이 추락하면서 취업 시장까지 얼어붙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 멍씨처럼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준비를 하던 중국의 젊은이들이 자칫 개혁·개방 이후 최악의 세대로 기록될 위기에 몰렸다.
 

[지난 1월초 중국 산둥성의 한 취업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기업 채용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시작한 1월 말부터 중국 곳곳서 취업 관련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다. [사진=신화통신] ]


◆넘쳐나는 구직자, 얼어붙은 채용시장

올봄 중국의 취업 시즌은 신종 코로나의 급습으로 엉망이 됐다.

중국 인력자원부와 교육부, 재정부, 교통운수부, 국가위생건강위원회 등 5개 부처는 지난 5일 공동 명의로 '전염병 방역·통제 기간 취업 업무에 관한 통지'를 발표했다.

대형 채용 박람회와 각 대학에서 실시하는 채용 행사 등 공개 채용 일정을 잠정 중단하는 게 골자다.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많은 인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다.

중국 정부는 "전염병 통제를 위한 결정적 시기에 방역과 취업 업무는 모두 중요하다"면서도 "현장 채용은 중단하고 온라인 전형을 확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또 기존 필기·면접 시험 일정을 연기하고 대면 면접은 온라인 면접으로 대체하라고 주문했다.

각 지방정부는 이 같은 방침에 부응하는 조치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허난성은 올해 추진 중이던 대형 채용 박람회 개최를 무기한 연기했다. 칭화대와 후난성의 중난대 등 주요 대학도 교내 채용 행사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베이징의 경우 대학 졸업생이 취업 계약에 서명하는 시기를 3월 1일 이후로 늦췄고, 취업 보고 시기도 연기하기로 했다. 중국은 대졸 구직자가 취업에 성공하면 모교에 보고해야 한다.

[그래픽=아주경제]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해 기업들도 채용 시기 조정에 나서고 있다.

취업 전문 사이트인 스시썽(實習僧)이 징둥(JD)과 디디추싱, 메이디 등 24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60%가량이 채용 전형을 연기하겠다고 응답했다.

도시지역 신규 일자리의 80% 정도를 책임지는 중소·영세기업들이 대면 면접 없이 온라인으로만 채용 전형을 진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부가 운영하는 중국공개채용망 등을 적극 활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한 시점에 취업 시장에 합류한 구직자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중국의 대졸 구직자는 2014년 700만명을 넘어선 뒤 해마다 꾸준히 늘어 올해 834만명까지 증가했다.

여기에 공무원 시험에서 낙방했거나,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인원까지 합치면 1000만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신종 코로나가 취업난을 가중시키면서 대학원 진학률은 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2018년 238만명, 지난해 290만명이 대학원에 진학한 데 이어 올해는 최소 340만명을 넘을 전망이다.
 

중국 인력자원부 등 5개 부처가 지난 5일 홈페이지에 게재한 '전염병 방역·통제 기간 취업 업무에 관한 통지'. 공개 채용을 잠정 중단하는 내용 등이 골자다. [사진=중국정부망 홈페이지 캡처 ]


◆사스 때 일자리 127만개 증발, 이번에는?

신종 코로나는 중국 경제에 그야말로 초대형 악재다. 단순히 채용 시기가 늦춰지는 것을 떠나 일자리 자체가 급감할 수도 있다.

지난해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6.1%로 2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2년 가까이 이어진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가 컸다.

올 초 미국과의 1단계 무역협상 합의안에 서명하고 홀가분하게 새해를 시작하려던 중국은 신종 코로나 사태로 다시 한번 휘청이게 됐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7일 보고서를 통해 올해 중국 경제가 5%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종전 전망치 5.7%보다 0.7% 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은 일시적으로 3%대까지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나왔다. 1월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은 5.4%로 9년 만에 가장 높았다.

강도 높은 방역 조치로 인해 공장 가동이 지연된 기업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 향후 정상 가동이 이뤄지더라도 매출 감소는 불가피하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 탓이다.

전염병 창궐로 인해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부분 외의 소비는 최소화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기업들이 새 직원을 뽑을 이유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허베이성에서 화장품을 위탁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의 한국인 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신종 코로나 발생 지역에 체류하며) 아직 돌아오지 못한 직원이 수두룩하고 이들이 복귀하더라도 공장 가동률은 70%를 넘지 않을 것 같다"며 "신규 채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관영 신화통신 등 중국 언론은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로 경제가 악화하면서 사라진 일자리가 127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관광·물류·외식·숙박·문화 등 5개 업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격리와 차단을 최우선으로 하는 전염병 방역 조치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당시 중국 관광산업의 매출은 전년 대비 60% 감소한 바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중국 내 신종 코로나 확진자는 이미 사스 때 전 세계 확진자(8098명)를 5배 이상 초과했다. 조만간 확산세가 꺾이지 않으면 사망자만 수천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중국 소식통은 "제조업 위축과 서비스업 침체가 불 보듯 뻔하다"며 "채용 시장에 빙하기가 도래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미래는 어두운데 사회적 억압은 심해져 

1999년생인 멍씨는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 출생자)보다 링링허우(零零後·2000년대 출생자) 세대에 가깝다.

링링허우는 주링허우 등 이전 세대보다 교육 수준이 높고 외국과의 접촉 빈도가 많아 개방적이고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하지만 이들이 살아갈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성장률이 둔화하고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진다. 학자금 대출까지 받아 학업을 마쳐도 취업 관문을 뚫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어두운 미래만으로도 숨이 막히는데 중국의 권위주의적 체제는 이들을 쉴 새 없이 옥죈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집권한 뒤 억압의 강도가 더욱 세졌다.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가 대표적 사례다. 전염병이 창궐해 국가가 위기에 빠질 때까지 당국자들은 사실을 은폐·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철저히 묵살했다. 신종 코로나의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을 제기했다가 괴담 유포자로 몰려 처벌을 받고, 결국 바이러스에 감염돼 숨진 의사 리원량(李文亮)의 사연에 중국의 젊은이들은 분노했다.

리원량의 죽음이 알려진 지난 7일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 '리원량 사망'을 조회한 건수는 9억건을 넘었다. 하지만 '나는 언론의 자유를 원한다'는 해시태그가 붙은 글은 올라오는 족족 당국에 의해 삭제됐다.

바이러스의 기세는 언젠가 꺾이겠지만 바이러스가 남긴 정치·경제·사회적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이번 사태를 몸소 겪어낸 중국의 젊은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아주경제와 컴패션의 따뜻한 동행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네티즌 의견 0
    0 / 300

    실시간 급상승

    9.9초 더보기

    아주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