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新 중국 사용 설명서가 필요하다

이달 열린 미·중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중국의 '판정승'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은 정치·경제·안보 측면에서 중국의 팔을 꺾는 데 힘에 부치는 모습이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회동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팀 쿡 애플 CEO 등이 대거 배석한 게 눈길을 끌었다. 대중 견제 기조 속에서도 반도체, 인공지능(AI), 공급망 등 측면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어려운 미국의 현실적 고민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시계를 2개월 전으로 돌려보자. 지난 3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포럼(CDF)은 중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무대였다. 방중이 잦은 쿡 애플 CEO를 비롯해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 회장,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 앨버트 불라 화이자 회장, 롤란트 부시 지멘스 CEO, HSBC·UBS·BNP파리바 등 금융 기업 수장들까지 글로벌 경제 거물 86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산업별로 봐도 금융과 광물, 에너지, 물류, 바이오, 의료기기, 소비재, 반도체, 화학, 컨설팅까지 글로벌 산업 지형도가 망라돼 있다. 기업 본사 소재지별로는 미국이 36개, 독일과 영국이 각각 9개와 7개였고 스위스 기업도 6개나 포함됐다. 이 자리에 초대받은 우리나라 기업인은 반도체 부문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등 2명뿐이다. 

중국이 한국에 기대하는 전략적 가치가 반도체에 집중돼 있다는 걸 의미한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 기업은 '협력 대상'보다 '경쟁 대상'이고, 그것도 '열위의 경쟁 대상'에 가깝다. 전기차와 배터리, 디스플레이, 철강, 석유화학, 스마트폰, 조선 등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서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분위기는 더이상 감지하기 어렵다. 

반도체는 사정이 좀 다르다. 첨단 메모리와 HBM, 초미세 공정 기술에서 중국 기업이 아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대체하기 어렵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가 강화될수록 한국 기업의 전략적 가치가 더 커지는 이유다. 중국이 삼성전자 시안 공장과 SK하이닉스 우시 공장 운영에 유독 민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철저히 실용적이다. 경쟁력이 부족한 영역은 글로벌 기업과 손을 잡고, 경쟁 가능한 분야는 빠르게 내재화한다.

폭스바겐·BMW는 중국 전기차 생태계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BHP와 리오틴토, 포테스큐 같은 글로벌 광산 기업들은 중국 철강·배터리 업체와의 공급망 협력을 강화 중이다.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로슈 등 글로벌 제약사들도 중국 바이오 시장 공략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도 새로운 '중국 사용 설명서'가 필요하다. 작금의 중국은 기술과 제조업 경쟁력을 동시에 키우며 글로벌 산업 패권까지 넘보고 있다. 단순 제조업 협업 모델은 한계가 분명하다.

답은 기술 초격차다. 반도체와 AI, 첨단 소재, 바이오, 방산, 소부장 등에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려야 한다. 동시에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공급망 다변화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협력하되 종속되지 않는 전략적 균형 감각이 절실하다.

정부 역할론도 있다. 최근 글로벌 산업 경쟁은 기업 간 거래(B2B)에서 정부와 기업 간 거래(B2G)를 넘어 정부 대 정부(G2G) 영역으로 확장하는 추세다. 미국은 IRA와 반도체법 등 산업 정책을 총동원하고 있고, 중국 역시 국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국도 외교·통상·산업 정책의 유기적 통합이 시급하다.

중국은 여전히 거대한 시장이다. 동시에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이기도 하다. 막연한 기대도, 감정적 거리 두기도 무용하다. 달라진 중국을 정확히 읽고 그에 맞는 전략을 새로 짜는 게 중요하다. 과거의 중국 사용 설명서로는 현재 중국을 상대하기 어렵다.
 
이재호 산업부 부장
이재호 산업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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