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대국이 재난에 대처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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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20-01-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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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종코로나 확산, 공포 휩싸인 중국

  • 당국 안일주의에 초반부 피해 극심

  • 위기 틈타 한탕 노리는 이기심 횡행

  • 후베이 왕따 현상, 관영매체도 질타

'후베이성 사람은 악인이 아니라 동포이자 전우'라는 내용의 신화통신(왼쪽)과 인민일보의 모바일 캠페인. [사진=신화통신·인민일보]


최근 베이징 시내 아파트 단지 앞에는 하얀 비닐봉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비닐봉지 안에는 모바일로 주문한 음식과 각종 일용품이 담겨 있다.

아파트 단지 측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 확산을 막기 위해 외부인 출입을 막으면서 배달원이 두고 간 것들이다.

주민들은 배달원과의 직접 접촉을 피하기 위해 단지 앞까지 나와 주문품을 회수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인 점을 감안해도 베이징의 거리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한산하다.

어쩌다 마주친 행인끼리 지나칠 때면 서로가 꺼림칙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방역 마스크는 고사하고 생수 등 필수품을 구매하는 것도 점차 부담스러워지는 상황이다.

바이러스 전염을 우려해 장을 보러 나가지 않고 모바일 등을 통해 주문하는데, 재고가 없거나 배달이 안 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배달 시간은 3~4시간이 기본이고 한나절이 소요되기도 한다. 생수와 간단한 식자재 등 145위안(약 2만5000원)어치를 주문했는데 19위안(약 3200원)의 배송료가 붙었다.

춘제 연휴가 연장되기 전 기준으로 이미 정상 근무를 준비해야 할 시점인데 지방으로 떠난 인력이 복귀하지 않아 배달원이 태부족인 탓이다.

중국을 강타한 우한 폐렴은 바이러스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공포심까지 빠르게 전염시키고 있다.
 

지난 27일 광저우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유한 버스 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던 취객이 경찰에 체포되는 모습. [사진=웨이보 캡처]


◆정부의 사후약방문, 고통은 시민의 몫

지난 27일 신종 코로나의 진원지인 후베이성 우한을 찾은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한배를 타고 강을 건너듯 한마음으로 협력해 역경을 이겨내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리 총리의 우한행은 바이러스가 퍼지고 한달 반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처음 언급한 것은 첫 사망자가 나온 지 열흘 뒤였다.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이 제기된 것도 이즈음이다.

저우셴왕(周先旺) 우한시장은 초동 대처에 실패했다는 지적에 대해 "정보가 제한적이라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취지의 핑계를 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중앙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지방정부까지 우왕좌왕하는 동안 우한시 인구 1100만명 중 500만명이 도시를 벗어났다. 춘제 연휴의 시작과 함께 감염자가 급증한 이유다.

이후 중국은 우한을 봉쇄하고 베이징·상하이 등 주요 도시의 교통을 통제하며 인구 이동 억제에 나섰다. 이런 사후약방문이 없다.

당국의 늑장 대응 속에 제대로 된 진단·치료를 받지 못한 감염자들은 고통을 호소한다.

우한에 거주하는 한 가족의 사연을 들어보자. 주부 샤(夏)씨의 남편과 시부모, 친정 부모 등 5명은 신종 코로나 증세를 보여 2곳의 병원에 나뉘어 격리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진단 시약이 부족해 아직까지 확진 판정을 받지 못했다. 하루 종일 수액을 맞는 등 의심 환자에게 적용되는 치료법이 전부다.

집에 남아 있던 샤씨의 세 살배기 자녀에게 발열과 마른 기침 증세가 나타나 아동병원을 찾았지만 가족 대부분이 신종 코로나 의심 환자라고 밝히자 병원 측은 접수를 거부했다.

스스로도 신종 코로나 유사 증세인 근육통 등에 시달리는 샤씨는 자신을 돕겠다고 나선 지인들을 애써 만류하는 중이다. 혹시라도 피해를 줄까봐서다.

그녀는 펑파이 신문에 "나는 감당할 수 있지만 세 살짜리 아이는 어쩌죠"라고 울며 말했다.
 

저장성 이우시 시장감독관리국이 공식 웨이보 계정을 통해 가짜 마스크 제조 업자를 적발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우시 시장감독관리국 공식 웨이보]


◆버린 마스크 재판매, 판치는 한탕주의

중국 보건 당국은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인구가 많고 초기 감염 지역으로 분류된 상하이와 광둥성 등에서는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조치를 시행 중이다.

마스크 미착용자는 호텔·카페·극장·마트와 같은 공공장소에 출입할 수 없고, 권유해도 듣지 않으면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업소 관리·감독에 소홀한 경영주도 처벌을 받는다.

실제로 지난 27일 광저우에서는 버스에 탑승한 취객이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버스 기사의 권유를 무시하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전염병이 도는 시기에 마스크 등 방역 물품은 최소한의 자위 수단이다.

하지만 국가적 위기 상황이나 남의 불행을 틈타 금전적 이득을 챙기려는 이기심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지난 26일 톈진 시장감독위원회는 쉬룬후이민(旭潤惠民)이라는 약국 프랜차이즈 업체가 마스크를 판매하며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 감독에 나섰다.

이 업체 소속의 한 약국은 신종 코로나 차단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KN95 마스크를 한 팩에 128위안을 받고 팔고 있었다. 이 제품의 매입가는 팩당 12위안이다. 정상 이윤의 범위를 넘어선 바가지가 분명했다.

해당 업체는 300만 위안(약 5억원)의 벌금 처분을 받았고, 관련자는 공안에 넘겨졌다.

안후이성의 마안산 시에서는 일부 업자가 이미 폐기된 마스크를 회수해 재포장한 뒤 판매하다가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왕장핑(王江平) 공업정보화부 부부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생산 대국이지만 춘제 연휴 때문에 생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노력한 결과 40% 수준까지 회복했다"고 토로했다.

우한을 비롯한 중국 전역의 병원은 물론 약국과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도 신종 코로나 방역 기능이 있는 마스크는 동난 상태다.

그런데도 위챗 등을 통해 마치 암표처럼 수천장에서 수만장의 마스크가 거래되고 있다. 저장성 이우시의 한 수공업체는 당국에 의해 5만장의 짝퉁 마스크를 압수당했다.

시민들의 절박함을 악용해 폐기된 마스크를 재판매하거나 아예 가짜 마스크를 만들어 파는 한탕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지난 27일 우한 셰허병원의 간호사들이 환자 치료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우한 혐오증에도 헌신하는 의료진

신종 코로나로 인해 촉발된 집단적 공포는 첫 발병지인 우한, 더 나아가 후베이성에 대한 화풀이로 이어지고 있다.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스스로 안도하는 전형적인 자기 연민이다.

우한에서 대학을 다니는 궁(龔)씨는 신종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한 뒤 우한을 빠져나온 500만명 중 한명이다.

그녀는 춘제 연휴와 겨울방학을 맞아 고향인 구이저우성 준이 시로 돌아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낯선 이들이 전화를 걸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중국 온라인 상에는 우한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 이들의 정확한 신상 정보가 떠돌고 있다. 유출 경로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광둥성 잔장 시에 거주하는 린(林)씨는 "우한에서 근무하다가 돌아오자마자 집 인근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다"며 "이런 정보를 어떻게 파악했는지 여전히 의문"이라고 전했다.

중국 각지에서는 우한을 포함해 후베이성에서 온 귀향객이나 관광객을 쫓아내고 숙박을 거부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중국 내 '후베이 혐오증'이 심각해지자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사설을 통해 "격리해야 할 것은 바이러스지 후베이성 사람이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인민일보는 "우한에서 나온 500만명이 어디를 가든지 그들에게 편견을 갖거나 냉담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며 "천만명이 넘는 우한인과 수천만명의 후베이인은 우리의 동포이자 (전염병과의 전쟁을 함께 하는) 전우"라고 표현했다.

관영 신화통신도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후베이를 무서워하는 것은 방역이 아니며, 후베이인은 악인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 혼란이 극심해지는 와중에도 외부와 단절된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며 묵묵히 헌신하는 의료진이 있다.

현재 우한에는 기존 의료진 외에 전국에서 모여든 3500여명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환자 치료에 전념하는 중이다.

인민일보는 쓰촨성 제4인민병원에서 근무하는 24세의 간호사 서사(佘沙)씨가 우한 파견을 자원한 사연을 소개했다.

서씨는 2008년 발생한 쓰촨성 원촨 대지진의 생존자다. 당시 리히터 규모 8.0의 강진에 6만9000명이 사망하고 37만4000명이 부상했다.

그녀는 위챗으로 언니와 대화를 나누며 "최근 며칠간의 뉴스는 원촨 대지진 때의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며 "나는 (우한에) 반드시 가야 한다. 다른 간호사와 달리 나는 원촨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니의 만류에도 그녀는 지난 25일 실시된 2차 의료진 모집에 자진 신청했다.

이 밖에 우한에서 일하는 간호사 리후이(李慧)씨는 환자를 치료하다가 혹시라도 감염돼 사망하면 시신을 연구용으로 기증하겠다고 전해 심금을 울렸다.

15명의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에 감염됐던 우한 셰허병원의 간호사 31명은 지난 27일 병원 내에서 서로 머리를 단발로 잘라줬다.

수간호사 거린(葛琳)씨는 "머리를 짧게 자르면 방호복을 입기 편하고 전염 위험도 낮출 수 있다"며 "환자를 돌보느라 매일 샤워하고 머리를 감을 시간이 없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현장을 목격한 이 병원 의사 천산(陳珊)씨는 "우리는 목숨을 걸고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다"며 "용감하게 전진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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