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유배시절 고단함 담긴 서찰첩 ‘완당수찰’(阮堂手札)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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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민 기자
입력 2019-10-1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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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실대, 편지 20편, 시고(詩稿) 1편, 기타 3편 등 총 24편 엮어

  • 1840년 제주도 유배생활의 고단함 고스란히 드러는 편지 엮어

추사 김정희의 '완당수찰' 표지[사진=숭실대]

“먹는 것은 대략 가지고 온 말린 민어 건포(乾脯) 따위로 버티고 있다. 비록 읍성(邑城) 밖이라 하더라도 도살을 금하여 고기를 먹는 사람이 없으니, 고기를 구해 먹고 싶어도 어찌할 방도가 없구나. 반드시 제주성(濟州城) 100리 밖에서 사온 뒤라야 비로소 고기 맛을 볼 수 있단다. 그러나 이 또한 어찌 번번이 할 수 있는 일이겠느냐?”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시절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편지들을 엮은 서찰첩이 최초로 공개된다.

숭실대는 지난 10일 한국기독교박물관이 동 박물관 설립자인 고(故) 매산 김양선 교수가 수집한 추사 김정희의 서찰첩을 탈초·번역 및 해제한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완당수찰(阮堂手札)’을 발간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서찰첩은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된 1840년 이후 힘든 나날의 유배생활을 담아 뭍으로 보낸 편지로 구성돼 있다. 전체적으로 편지 20편, 시고(詩稿) 1편, 기타 3편 등 총 24편이 장첩돼 있다.
 

추사 김정희의 완당수찰 본문[사진=숭실대]

김정희는 북학의 종장이자, 고증학 연구의 대가, 조선 금석학 연구의 개창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서법(書法) 연구에 몰두해 추사체를 창시하기도 했다.

완당수찰(阮堂手札)에서 ‘완당’은 김정희의 별호이며, ‘수찰’은 직접 쓴 편지라는 의미로, 완당수찰은 김정희가 직접 쓴 편지‘라는 뜻이다.

여기에 수록된 20편의 편지는 작성일자나 수신자가 명확하지 않지만, 대부분 업무지시 내용이어서 김정희가 그의 집안일을 도와주던 겸인(傔人) 즉 심부름꾼에게 보낸 편지임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알려진 김정희의 편지는 가족 또는 친구에게 보낸 것이 대부분인데, 겸인에게 보낸 최초의 편지여서 주목된다.

본 서찰첩은 김정희의 초기 제주 유배생활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고 있어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자료다.
 

지난 2017년 2월 일본 교토대 서고에서 발견된 '노설첩' 표지와 내용 일부.[사진=연합뉴스]

김정희의 다른 서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단했던 유배생활의 진면목이 드러나 있는데, 유배지에서 반대파들이 보낸 수령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해 인사 청탁으로 자신의 주변에 가까운 인물을 두기 위해 노력했던 내용이 담겨 있다.

더불어 아전과 서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김정희의 유배생활을 도와줬던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 주목할 만한 내용으로는 김정희 자신이 평생 수집했던 서화(書畫) 관리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나타나 있다. 그가 중국에 관한 상당수의 정보를 얻었으며, ‘세한도’를 그려준 이상적(李尙迪)의 연행에 관한 궁금증도 잘 드러나 있다.
 

전라금석문연구회와 임실문화원이 임실군 신덕면 수천리에 있는 전주최씨 만육파 후손 최성간(1777∼1850) 묘비를 분석해 앞쪽 글씨를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지난 5월 16일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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