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팩트와 진실] '반민특위'발언 자책골…나경원, 너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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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아주경제 논설고문, 서울시립대초빙교수
입력 2019-03-1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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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고문 [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국회교섭단체 대표 연설 전문을 읽어보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실패, 성장동력의 추락, 예산을 퍼부어도 회복되지 않는 실업률, 세계 최고수준의 원전산업을 붕괴시킬 우려가 있는 탈(脱)원전, 4대강의 보(洑) 철거, 민노총과 전교조에 끌려다니는 정부 정책 등등···.

여당 의원들은 나 원내대표가 각종 경제지표를 들어가며 정부의 정책 실패를 조목조목 비판하자 불편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여당 의원들이 폭발한 것은 남북관계에 관한 대목이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주십시오”라는 부분에서 여당 의원들은 고성을 지르고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의장석으로 올라가 항의했다.

나 원내대표의 연설은 블룸버그 통신이 작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수석대변인(top spokesman)이 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되짚은 것이다. 블룸버그 기자는 “수석대변인이 됐다”고 썼는데, 풍자나 아이러니 같은 저널리스틱한 표현이다. 나 원내대표는 “수석대변인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로 바꾼 것이니 한결 순화했다고 볼 수 있다.

나 원내대표의 연설 중 “헌정 농단 경제정책”이나 “70여년의 위대한 대한민국 역사가 좌파정권 3년 만에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같은 말은 태극기부대의 집회에 어울릴 듯하다.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로서 핵심 지지세력을 위무하는 발언도 필요했을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나 원내대표를 ‘국가원수 모독죄’로 국회 윤리위에 회부할 일은 아니고,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의 논평 정도로 건드리고 지나가면 족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14일 나 원내대표가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에서 한 ‘반민특위’ 발언은 역사공부의 부족에서 생긴 실언(失言)이다. 그는 국가보훈처의 서훈 대상자 재심사 계획에 대해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 모두 기억하실 것이다. 또다시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친일행위를 하고도 독립운동가 반열에 오른 가짜 유공자를 가려내기 위해 기존 독립유공서훈자를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나서겠다는 국가보훈처의 발표를 겨냥한 것이다. 보훈처는 독립유공자 서훈이 보류된 광복 후 사회주의 활동 경력자 298명에 대해서는 재심사를 통해 서훈 대상자를 가려낸다고 한다. 나 원내대표는 국회연설 하루 뒤인 15일 방송 인터뷰에서 가짜 유공자는 들어내는 게 맞지만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한 세력에까지 독립유공자 서훈을 줄 경우 국론분열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독립운동을 했더라도 월북해 김일성 밑에서 고위직을 지낸 이들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준다면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야당 원내대표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나 원내대표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약칭 반민특위)로 인한 갈등과 국론분열에 비유한 것은 부적절했다.

제헌헌법과 법률에 따른 반민특위의 설립 취지는 일제에 빼앗겼던 국권을 되찾고 새 나라를 세우면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었다. 1948년 9월 7일 국회를 통과한 반민특위법은 조사 대상을 일제의 국권 강탈에 적극 협조한 자, 독립운동가와 가족을 악의로 살상·박해한 자 등으로 한정했다. 위원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과 문화부장(장관)을 지낸 김상덕씨였다.

미 군정은 치안유지를 중시해 총독부나 공공단체에 종사하던 직원들은 물론 일제 경찰에 복무했던 조선인들이 그대로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승만 대통령도 북과 연계된 남한 공산주의자들의 폭동과 테러를 단속하기 위해 일제 때부터 경험을 축적한 경찰을 활용했다. 이 대통령은 1949년 2월 ”경찰 중에 그들의 기술을 상당히 이용해서 모든 지하공작과 반란 음모를 예방해야 하는데, (반민특위) 조사위원들은 이것이 꿈에도 생각이 없으니···”라는 담화를 냈다. 평생 독립운동을 한 그는 친일파를 싫어했지만 공산당을 때려잡고 나라를 세우기 위해 친일파나 일제경찰로 복무했던 조선인들과 손을 잡은 것이다.

반민특위 특경대가 일제 악질 고등계형사였던 노덕술을 체포하는 등 친일경찰에 대한 조사를 해나가자 이에 반발한 경찰이 특경대를 무장 공격했다. 국회도 반민특위의 활동시한을 단축하는 입법을 해 특위는 1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 이때 반민특위가 이승만 정부와 경찰의 방해로 문을 닫지 않고 계속 활동을 했더라면 후일 친일파 진상규명 논란이 재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친일파는 동시대를 함께 산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2004년 16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이때는 이미 해방된 지 59년이 지나 당사자들이 대부분 사망했다. 특정 정권의 재단보다는 학계의 연구로 넘겨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나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방송에 출연해 “반민특위 활동은 당연히 제대로 됐어야 한다. 반민특위 활동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친일=우파’라는 프레임으로 역사공정을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그의 반민특위 발언은 정작 그런 프레임을 거들어주는 모양이 됐다.

3·1운동 100주년에서 4월 11일 상해임시정부 100주년까지 일제 식민지 지배의 잔혹성과 독립운동을 위해 몸바친 선열들에 대한 추모와 기념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시기에 반민특위를 부정적으로 언급한 것은 시기적으로도 좋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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