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하이브리드角] '기승전경제'…평양회담과 추석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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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정치사회부 부국장
입력 2018-09-2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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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은 국가와 히로뽕(필로폰·마약의 일종)이 합쳐진 신조어다. 처음에는 '무조건 한국과 한국인이 최고'라는 편협하고 극단적인 민족주의, 즉 국수주의를 뜻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다르게 쓰인다. 국가가 주는 큰 즐거움과 행복, 애국심을 말할 때 사용한다.

예를 들면 지난 아시안게임이다. 축구 결승전에서 손흥민, 황의조, 황희찬, 이승우 등의 활약으로 결승전에서 일본을 격파하고 금메달을 땄을 때 많은 젊은이들은 '국뽕 맞았다', '국뽕에 취했다'는 표현을 쓰며 열렬히 환호했다. 폐막식에서 슈퍼주니어, 아이콘 같은 대한민국 아이돌 노래에 인도네시아 관중들이 떼창하는 모습에 '국뽕이 차오르는 무대'라는 말이 나왔다.

이번 '2018 남북 정상회담 평양'에서도 많은 장면들이 '국뽕'의 감동을 선사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손을 맞잡은 사진을 보고 '이게 실화냐'라고 되뇌었다. 또 두 정상이 평양 시내를 함께 카퍼레이드하며 환영하는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한 장면 역시 비현실적이었다. 문 대통령이 능라도 5·1체육관에서 15만명의 북측 주민 앞에서 연설한 것은 역사적 장면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이 전 세계로 송출되는 생중계 방송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한 육성은 강렬했다.

북한 사람들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여러 차례 평양시민들에게 '90도 폴더 인사'를 한 것은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의 친근하고 겸손한 이미지를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한 탈북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90도 인사를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아주 깜짝 놀랄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대사변(혁명적 변화를 일컫는 북한식 표현)의 와중에 올해도 여지없이 한가위, 추석 민족대이동이 시작됐다. 이번 추석 연휴 민심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남북 정상회담과 경제일 것이다. 가족, 친지들이 함께하는 밥상머리에서 이런 '국뽕' 장면들이 오르내릴 텐데, 결국 모든 일의 결론은 나와 우리의 살림살이, 경제가 되는 '기승전경제'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의 경제분야 합의내용이 우리 살림살이와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연결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평양선언은 4·27 판문점선언에서 두세 걸음 더 나아갔다는 평가다. 1차 정상회담 후 판문점선언에서 남북경협 관련 내용은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을 취해 나가기로 했다"는 항목이 사실상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 3차 정상회담 평양선언은 내용을 더 구체화했다.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연내 개최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 우선 정상화, 서해경제공동특구·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 환경 및 산림협력 등이다.

철도·도로 등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은 국내 대기업은 물론 중소하청업체의 SOC 특수를 불러올 수 있다. 선언에 그치지 않고 '착공식'이라는 확정적 단어를 쓰고, '연내'라고 시기를 특정했기 때문이다. 연내 착공 이후 실제로 공사에 들어가면 내년 건설업계에 적지 않은 일자리가 생길 전망이다.

개성공단 정상화는 중소기업에 새로운 활로를 찾을 기회다. 닫힌 개성공단을 열고 서해경제공동특구와 동해관광공동특구에 제2, 제3의 개성공단이 만들어지면 중소기업이 저임금을 찾아 베트남 등 동남아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2004년 개성공단 개장 이후 10년간 개성공단관리위원회 법무팀장을 지낸 김광길 변호사는 "과거 고도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됐던 저임금, 하청업체 갑질 등의 관행 등을 한꺼번에 다 해결할 수는 없다. 최저임금 인상, 공정거래 정착 등을 위해 일종의 완충지대와 시기가 필요한데 남북경협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북한 육로를 통해 중국·러시아 등으로 진출할 수 있다면 무수히 많은 사업 기회가 열릴 것"이라며 "경협단지는 남한의 기술과 북한의 노동력, 지리적 이점을 결합해 수출 경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공간"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현대아산의 매출은 2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직원 수는 1000명에서 15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고성군 등 금강산 가는 길, 강원도 접경지역 경제는 초토화됐다. 금강산관광이 정상화되면 당장 최소 수천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강원도 지역경제가 활력을 되찾게 된다. 금강산관광 재개는 내수 활성화에 기여한다.
 
한반도 신경제지도가 공염불이 아니라 우리 경제를 다시 생생하게 하고 나의 홀쭉한 지갑을 두툼하게 채울 수 있는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고 미국 등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풀어야 현실화할 수 있는 사안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우리 기업들을 다시 뛰게 하고 우리네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할수 있는 희망,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남북경협에 대해 "차분하고 질서 있게 준비하겠다. 여건이 조성되면 남북 경제협력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정부는 더 나아가 남북관계 해빙, 한반도 비핵화가 가져올 평화가 우리 살림살이와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를 제대로, 잘, 쉽게 설명해야 한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깜짝발언이 우리 개개인의 삶에 전혀 대박스럽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던가. 추석 귀성길에 오르는 서민과 중산층, 청년들, 중소기업인, 자영업자들에게 실제적으로 한반도 평화가 가져올 더욱 윤택하고 행복한 살림살이, '기승전경제'를 설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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