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실험 대상으로 전락한 ‘대한민국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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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천 금융부 부장
입력 2018-09-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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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의사협회장이 들려준 얘기다. 비아그라 관련이다. 비아그라는 혈관을 확장시켜주는 약물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남성의 발기부전 치료에 사용된다.

그러나 비아그라에 의한 혈관 확장은 비단 그곳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폐동맥 고혈압 환자 치료에도 사용된다. 해외 한 과학자는 이 점에 주목했다. 비아그라에 의해 여성의 자궁으로 가는 혈류가 증가하면 태아에게 더 많은 산소를 공급해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곧바로 쥐를 상대로 실험을 했다. 총 24마리의 쥐를 3개의 군으로 나눠 각각 임신중독증과 유사한 상황을 만들었다. 비아그라 투여군(1군)과 비투여군(2군), 그리고 임신중독증 유발물질과 비아그라를 투여하지 않은 대조군(3군)으로 나눠 경과를 살폈다. 실험 결과 비아그라는 쥐 태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쥐를 상대로 한 실험이 성공하자 이번에는 의사들이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실제 임신부를 상대로 실험을 진행했다. 네덜란드와 캐나다·호주에서 각각 별개로 실험이 진행됐고, 투여 시기와 투여량을 달리했다.

2015년에 시작해서 2020년에 마무리할 예정이었던 이 실험에는 93명의 비아그라 투여군과 90명의 비투여군 등 총 183명의 임신부가 참여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10개 병원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비아그라 투여군 임신부 93명이 낳은 아기 중 17명에게서 폐의 문제(폐동맥 고혈압)가 발견된 것이다.

이들 중 11명이 사망했고, 8명은 다른 문제로 사망했다. 실험은 곧바로 중단됐고, 이미 비아그라를 복용한 임신부들도 불안한 마음으로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캐나다와 호주에서 진행되던 실험도 올스톱됐다.

비극이고 안타까운 일이다. 의사들은 좋은 취지로 실험을 기획했지만, 임신부들과 그 태아들은 비극을 겪게 된 것이다.

실험이란 이런 것이다. 좋은 의도로 시작해도 비극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실험이다. 실험 전에 점검하고 또 점검하고 신중해야 하는 것이 실험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극을 맞게 된다.

비아그라 얘기를 한 이유는 지금 대한민국 금융이 처한 상황과 비슷해 보여서다. 정치권과 정부가 은행, 보험, 카드, 증권, 핀테크 등 전 분야를 대상으로 실험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이 실험들이 과연 신중하게 결정되었냐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만 결국 '아니다'로 귀결될 것이다.

지난달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3대 금융법안이 대표적이다. 인터넷 전문은행을 위한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제한) 완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 규제샌드박스 도입법(금융혁신지원 특별법안) 등 이른바 3대 금융법안이 국회에서 공염불로 끝났다. 실험을 하기엔 리스크가 큰 이슈들이다.

가장 관심이 쏠렸던 인터넷 은행 규제 완화 법안은 여야 3개 교섭단체가 협의했다. 하지만 인터넷 은행 지분 보유 완화 대상과 지분 보유 한도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여당은 개인 총수가 있는 자산 10조원 이상의 대기업 집단은 지분 보유 완화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야당은 모든 기업에 문호를 열어주되 금융위의 대주주 적격 심사를 통해 걸러내자는 의견이어서 합의점 도출에 실패했다.

기업을 살리는 기촉법도 부활에 실패했다.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해 비교적 긍정적이었지만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기촉법은 워크아웃으로 부실징후가 있는 기업의 회생을 지원하는 법안이다. 2001년 한시법으로 제정된 후 네 차례 연장됐으며, 지난 6월 30일로 폐지됐다.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은 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강하게 대립하며 무산됐다. 여야가 다른 규제개혁 법안들과 묶어서 처리하는 방향으로 흐르면서 다음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게 됐다. 법안 통과를 손꼽아 기다리는 벤처기업과 지자체들이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3대 금융법안 지연이 불러올 후폭풍이 상당하기에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실험에 참여했다 비극을 겪게 된 임신부들과 대한민국 금융이 처한 입장이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이유다. 3대 금융법안은 즉각 처리되어야 할 사안이지 실험대에 올라서는 안 되는 내용들이다. 사실 자발적으로 실험에 참여한 임신부들과 달리 대한민국 금융이 자의적으로 실험실에 걸어 들어간 것도 아니다.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이유다. 

실험실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은 채 살아가는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강국은 당분간 기대조차 불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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