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지난해 9월 SK하이닉스가 노사합의을 통해 성과급 규정을 변경했을 때만 해도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영업이익의 10%와 상한선 폐지라는 성과급 기준과 영업이익 전망치 37조원을 근거로 종업원 “일인당 1억원”이라는 보도는 문자 그대로 ‘나비의 날갯짓’이었다. 그런데 성과급 산정의 기초가 되는 영업이익이 이미 금년도 1분기에 1년 예상치를 초과해 37조6103억원이라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으로 발표되면서 ‘날갯짓’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글로벌투자은행 맥쿼리증권의 보고서에 제시된 2027년 영업이익 전망치 447조원을 기초로 “SK하이닉스 임직원의 1인당 평균 성과급 예상 액수는 12억 9,000만 원”이라는 게시물에 이어, 금년도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200조 원 이상이라는 국내 증권가 예측에 기초한 ‘2026년 성과급 1인당 평균 6억원 예약설’이 나오면서 ‘날갯짓’은 필리핀 인근 태풍의 눈으로 발전했다. 태풍의 눈이 삼성전자로 옮겨가면서 한반도에 상륙하기 직전이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성과급 상한선 폐지와 영업이익 15%의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반도체(DS) 부문 중심으로 삼성전자 직원들 사이에서 SK하이닉스로의 이직 붐이 일거나 이직 스터디그룹이 만들어질 정도로 내부적인 박탈감이 심화되면서 노조의 요구는 강경해졌다. 사측은 초과이익성과급(OPI) 재원 산정 기준을 영업이익의 10%와 경제적 부가가치(EVA)의 20%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투명화하고, 기존 OPI 제도를 유지하면서 상한이 없는 별도의 특별보상 제도를 신설하는 ‘유연한 제도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이재용회장이 ‘사과문’을 발표한 데 이어 이재명 대통령은 “노동자를 기업운영의 소중한 동반자로 대우해야 하며, 노동자와 노조도 책임 의식을 함께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노동자들 상호 간에도 연대 의식을 발휘해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정부는 한 달간 파업을 유보시키는 긴급조정권 발동에 한발씩 다가가는 모습이다. 총파업 사흘을 앞두고 법원이 사측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위법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함으로써 총파업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독일 속담처럼 ‘연기된 것은 해결된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의 천문학적 영업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두고는 기본적으로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삼성전자의 국민경제적 위상 차원, 삼성전자의 가치사슬(공급망) 차원, 삼성전자의 내부 생산조직 차원으로 구분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 ‘경쟁사’를 의식하면서 ‘대한민국 1등 기업’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노조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1등 기업’에 당연히 상응하는 ‘1등 노조’의 책임감이 따라야 할 것이다. 우선 당장 성과급 산정의 기초가 되는 영업이익이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대단히 변동성이 크다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산업은 수년간 적자를 감수하며 때로는 ‘치킨게임’을 감수하는 선행투자를 이어간 뒤 호황기에 적자를 만회하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DS부문은 ‘메모리 한파’가 휩쓸었던 2023년에만 14조8800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SK하이닉스 역시 7조730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아울러 반도체산업은 조 단위의 천문학적 설비투자가 요구되는 산업이다. 그만큼 사내유보의 필요성이 큰 산업이 반도체산업이다. 노조의 파업은 이러한 경기변동성에 새로운 변동성 요인을 추가하는 셈이다. 이 불안요인이 결국 반도체산업의 근간을 뒤흔든 사례가 독일과 유럽의 ‘반도체 산업 굴기’ 실패이다. 독일이 중심이 되어 유럽이 1990년대에 반도체산업 발전프로젝트인 ‘유럽 차세대 실리콘 공동 이니셔티브(Joint European Sub-micron Silicon Initiative)’를 야심 차게 출범시켰지만 결국 실패하게 된 가장 핵심적인 사유가 ‘24시간 365일 노동’에 대한 노조의 반발이었다. 반도체 생산의 중심이었던 일본과 한국에서는 통용되던 이 유연 노동시간이 당시 주말 휴무는 물론 ‘주35시간제’로 대표되는 ‘노동의 인간화’로부터의 퇴행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반도체 부문의 성과에는 반도체 가치사슬에서 협업과 분업의 관계에 놓여 있는 다른 기업의 노동자들의 기여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삼성전자가 가치사슬의 정점에서 협력업체는 물론 거래 중소기업이 생산한 부가가치의 최종적 수취자로서의 지위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경제에서 난무했고 지금도 난무하고 있는 ‘기술탈취’,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같은 불공정 거래행위의 피해자들이 아닐지라도 여태껏 매번 경기침체의 ‘고통을 전담하는 완충장치’였던 1700개 협력업체에게 적절한 특별보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반도체 소부장산업은 물론 반도체 후공정의 보강을 위한 투자를 통해 한국 반도체산업의 공급망의 안전성과 안정성을 강화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에는 당연히 이미 합의된 자동차용 반도체공장의 설립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며, 작금의 천문학적 영엽이익으로 연구개발 등에 필요한 재원도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미중대결 양상이 심화되는 흐름 속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은 경제안보를 위해서도 전후방 공급망의 ‘내재화’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이다.
삼성전자의 성과급 협상에서는 한국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 역시 이해당사자에 포함되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정부와 전 국민이 나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한국경제에게 반도체산업은 국가전략산업이 되었고 반도체기업은 국민기업으로 간주되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산업 특별법’을 제정하여 반도체산업에 대한 금융, 세제 지원 등을 명문화했고, 반도체학과를 계약학과로 지정하여 ‘인재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반도체 산단을 지정하고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용인에 천연가스발전소 3기를 건설하는 계획마저 수립했다. 탄소중립 목표는 물론 당면한 ‘RE100’ 달성에 앞장서야 할 반도체 산업이 기업의 이익을 위해 수도권에서 탄소배출에 앞장서는 것은 ‘사회적 비용(전기, 용수, 인구집중)’을 유발하는 행태이다. SK하이닉스는 사익(이윤)을 위해 공익(온난화 저지)을 희생시키는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그럴수록 삼성전자에게는 용인산단이 아닌 ‘지산지소’에 부합하는 책임있는 선택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이번 성과급 협상은 한국 제조업에서 인공지능(AI)의 활용을 촉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만큼 기존 일자리는 줄어들고 신규 일자리 창출은 축소될 것이다. 그래서 고숙련 일자리가 있는 소수와 일자리가 없는 다수로 분화된 계급사회를 전망하는 견해가 주목을 끌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를 나누자는 제안도 있다. 워라밸에 대한 관심이 부활될 수 있다면 일단 ‘임금 삭감 없는’ 주 35시간제 또는 주 4일제노동에 대한 사회적 논의부터 시작할 수 있다. ‘자산기회’와 ‘소득기회’ 뿐만 아니라 ‘노동기회’를 가능한 한 균등하게 분배하는 전망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 된 것 같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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