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어음 없는 사회’, 상생결제제도의 활성화로 앞당기자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송창범 기자
입력 2018-07-25 08: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권기홍 동반성장위원장.]


올초 정부는 ‘어음 없는 사회’의 점진적 실현을 선언한 바 있다. 우리 경제의 결제 관행, 그리고 상거래 전반에 걸친 혁명적 변화를 예고한 셈이다. 어음은 현금 없이도 결제가 가능해 상거래를 활성화한다는 본래의 장점이 점차 퇴색하는 과정을 겪었다. 을의 위치에 있는 납품기업에 대해 갑인 구매기업의 횡포 수단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연쇄부도의 위험과 높은 할인율로 인해 수직적 기업생태계의 주범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어음은 당나라에서 시작됐다. 당시 화폐였던 동전은 안전성 문제와 무게 때문에 먼 거리로 대량수송하기에 부적합했다. 장안의 거상들은 중앙재정기관에 동전을 납부한 뒤 그 증명서를 지방으로 보냈고, 지방상인들은 동전을 수령했다. 이른바 어음이 등장한 것인데, ‘빨리 결제되는 돈’이라는 뜻에서 비전(飛錢)이라 불렀다. 당에서 시작된 어음제도는 송대에 이르러 수수료가 붙게 되고, 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결제수단으로 발전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어음은 문헌상 17세기 후반에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음은 1960~1970년대 자금이 부족하던 고도 성장기에 현금을 대체해 상품의 유통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우리 기업들의 자금순환에 큰 도움을 줬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어음은 배서제도의 남용 등으로 인해 금융질서를 어지럽히고 기업의 연쇄도산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낙인 찍히면서 사용이 줄어들게 됐다.

2016년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73%가 ‘어음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고, ‘즉시 폐지’(18.6%)보다는 ‘단계적 폐지’(54.4%)를 선호했다. 어음제도 폐지 이유에 대한 응답을 보면 ‘결제기일 장기화’가 가장 많았고, ‘부도로 인한 자금 미회수’, ‘할인수수료 비용 과다’ 순으로 밝혀졌다.

어음을 폐지하려면 대체수단을 마련해야 하는데, ‘상생결제제도’가 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가 2015년에 도입한 상생결제제도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을 근거로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협력재단)이 참여 은행들과 함께 운영하는 기업 간 대금 결제시스템으로서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외담대)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현재 기업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는 외담대는 상환청구권으로 인해 어음과 유사하게 구매기업이 도산할 경우 납품기업이 구매기업 대신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 이와 달리 상생결제제도는 구매기업이 상환청구권이 없는 채권을 발행함으로써 외담대의 이런 문제점을 해소, 납품대금 미회수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기 현금화를 원하는 경우 1차 이하 모든 협력사들이 대기업 수준의 낮은 할인율로 납품대금을 조기에 현금화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1차 협력사들의 참여가 대단히 부진하다는 데 있다. 대기업들은 지난 3년간 약 250조원에 이르는 대금을 1차 협력사에 상생결제했으나, 1차 협력사는 이 중 겨우 1.2% 정도만 2차 협력사에 상생결제로 지급하고 있다.

이처럼 1차 협력사의 참여가 부진한 것은 결제수단 변경에 따른 부담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2차 협력사에 지급할 대금을 협력재단 명의의 상생결제 전용계좌에 예치해야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유동성을 묶어 두기에는 인센티브가 너무 약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상생법이 개정돼 오는 9월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구매기업으로부터 상생결제로 대금을 지급받은 납품기업은 자신의 납품기업들에도 동일 비율 이상으로 상생결제 또는 현금결제를 통해 대금을 지급하도록 의무화됐다. 또한 세액 감면, 지급보증의무 면제, 장려금 지급 등 참여기업들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1차 협력사들이 적극 참여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금융거래는 경제 환경에 따라 변한다. 어음제도는 신용을 바탕으로 한 결제수단으로 주목받았으나, 오늘날 중소기업에 부도위험을 전가하는 등 태생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어음을 대체하는 상생결제제도가 확산되면, 신용도가 우수한 대기업들과 거래관계로 연결돼 있는 협력중소기업들에는 대금결제 환경 개선의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제도의 확산을 위해서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1차 협력사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