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 칼럼]名醫 곽옥의 '일자리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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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산업부 부국장
입력 2018-05-31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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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부국장 겸 산업부장

‘격화소양(隔靴搔痒)’이라는 말이 있다. 불가에서 많이 쓰인다. 오등회원(五燈會元),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무문관(無門關) 등 송(宋)·명(明)나라 시대 지어진 불서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신발을 신은 채 가려운 곳을 긁는다는 의미다. 일을 하느라고 애는 무척 쓰지만 정곡을 찌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말한다. 일자리 창출을 통해 경기 활성화를 꾀하려는 최근 정부의 정책이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모두발언의 절반 이상을 경제 문제와 관련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썼다. 전날 2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 열린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라는 점에서 의외였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당연히 ‘이날 주인공’은 남북 정상회담 관련 메시지일 것이라는 대부분의 예측이 빗나간 것이다.

그만큼 국내 경제 문제가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다. 특히 새 정부 경제정책의 키워드였던 일자리 창출은 실제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의 실업률(15~64세 기준)은 4.1%로 지난해 4월보다 0.1% 포인트 낮아지는 데 그쳤다. 청년층 실업률(15~29세)도 같은 기간 대비 11.2%에서 10.7%로 0.5% 포인트 줄었으나 한 자릿수 진입에는 실패했다.

이날 문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과 소득주도 성장이란 정부의 정책 기조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한 이유도 다름 아니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3조9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청년 일자리 창출에 2조9000억원을 편성했고, 조선업 구조조정 등으로 한껏 위축된 경남·전북·울산 지역에 1조원을 투입해 추가 위기를 차단한다는 목표다.

전문가들은 정부 중심의 일자리 창출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꼬집는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조차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추경을 잘 집행하면 청년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근본해결은 안 된다”고 털어놓았다. 민간의 자발적인 일자리 창출 없이는 현 상황을 돌파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를 에둘러 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놓는 각종 정책들이 기업들이 투자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새 정부가 지난 1년간 추진해온 지배구조 개선과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주당 근로시간 단축 등의 노동친화 정책을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아무리 바람직하고 필요한 정책들이라고 해도 기업들이 단기간에 풀기엔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기업들의 입장에선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은 최저임금과 관련해 가장 시급한 개선과제로 ‘산입범위 확대’(45.2%)와 ‘인상속도 조절’(41.4%)을 꼽고 있다.

검찰과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노동부 등의 칼날이 삼성을 비롯한 주요 그룹을 향하고 있다는 점도 기업을 위축시키는 또 하나의 주요 요인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월례 행사처럼 검찰과 국세청에 불려다니고 압수수색을 당하며 경영활동이 제대로 이뤄졌을 리는 만무하다. 물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일부 정치권의 문제가 기업들 단죄의 불씨가 된 측면도 적지 않다. 기업들은 억울한 것이다.

'후한서(後漢書)'에 ‘일침견혈(一針見血)’이라는 말이 있다. 명의 곽옥은 한 번 침을 놓으면 병이 다 나았다는 고사에서 유래됐다. 어떤 일의 본질을 파악해 단번에 정곡을 찌르는 해결책을 의미한다.

우리도 문제 해결이 의외로 간단할지 모른다. 일자리 창출은 기업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이를 더욱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정부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의 최근 사례도 여럿 있다.

미국은 '고용 훈풍'이 이어지면서 지난달 실업률이 3%대에 진입했다. 2000년 12월 이후 18년 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와 환경·노동·금융 부문의 규제 철폐가 주요 역할을 했다.

일본도 기업활력 제고에 방점을 둔 이른바 ‘아베노믹스’가 제대로 작동하면서 경제활성화를 이끌고 있다. OECD가 집계한 지난 3월 일본 실업률은 2.5%로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다.

반면 기업들이 보기에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각종 부담을 늘리고, 일자리 창출을 어렵게 하는 정책과 법안이 줄을 잇고 있다.

얼마 전 대기업 임원 A씨와 차 한잔을 마시며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검찰이 '우리사주 배당 오류'와 관련해 삼성증권 본사와 지점 4곳을 압수수색한 그날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어느 기업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리겠느냐”며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 등 새 정부의 전방위적인 압박을 꼬집었다. 곽옥의 침술처럼 적확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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