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 감독의 인생, 극장] '집시의 시간' 우울과 유쾌의 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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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8-03-1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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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영화의 힘은 세다. 한 편의 영화는 누군가에게 좌표이자 안내서가 되기도 한다. 저마다의 이유, 저마다의 감성이 담긴 한 편의 영화. ‘인생, 극장’은 감독들이 꼽은 인생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다. 감독들에게 지침이 된 혹은 그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영화는 무엇일까?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남쪽으로 튀어’, ‘제보자’,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에게 물었다.

“인생 영화를 딱 하나만 꼽기는 그런데…. 좋아하는 감독님들이 너무 많아서요. 그래도 한 작품 뽑는다면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1989년 제작된 ‘집시의 시간’은 집시들의 삶과 애환을 다룬 작품이다. 고슬라비아의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가 연출을 맡았으며 다보르 듀모빅(Davor Dujmovic)·보라 토도로빅(Bora Todorovic)·리주비카 아드조빅(Ljubica Adzovic) 등 연기 경험이 없는 실제 집시들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집시 어머니에게서 사생아로 태어난 10대 소년 페란. 그는 할머니 하티자의 손에 자란다. 자상한 할머니, 다리를 저는 여동생 다니라와 행복한 삶을 살던 페란은 이웃에 사는 아즈라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페란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결혼을 허락하지 않고 페란은 크게 상심한다.

한편 페란의 할머니가 병에 걸린 아메드의 아들을 심령술로 고쳐주자, 아메드는 그 대가로 다니라의 다리를 고쳐 주겠다며 달콤한 제안을 해온다. 그는 다니라를 입원시킨 뒤 페란을 이태리로 데리고가 극악한 행위를 강요, 큰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큰 돈을 만지게 된 페란은 불안감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메드는 페란을 “최고의 동업자”라고 부르며 새로운 사업을 찾아주고 “고향에 저택을 지어주겠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페란은 아메드가 다니라의 다리도 고쳐주지 않았고 더구나 행방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페란은 큰 배신감을 느끼고 고향인 유고로 돌아오지만 그가 약속한 저택 역시 거짓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었다. 비슷한 시기 아즈라는 페란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페란을 믿지 않은 그는 사내아이를 낳은 뒤 숨을 거두고, 페란은 그녀가 아이 때문에 죽었다며 아이를 버리게 된다.

임순례 감독이 인생 영화로 꼽은 '집시의 시간'[사진=영화 '집시의 시간' 스틸컷]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은 집시 특유의 민족적 정취가 짙게 배어있다. 쿠스트리차 감독은 토속적인 미신과 신비주의를 혼합해 독특한 영화적 문법을 만들었으며 초월적인 것, 세속적인 것을 비롯해 산문적, 시적인 표현들로 균형을 이뤄냈다. 특히 연기 경험이 없는 실제 집시들을 출연시킨 것이 눈에 띄며 작품 전체 분량의 90% 가량을 집시의 방언인 로마니어로 촬영하였다.

“‘집시의 시간’은 묘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요.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님은 기본적으로 그런 정서를 가지고 계시죠. 보통 우울이 기저에 깔려있으면 밝은 에너지를 찾기 힘든데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은 흥(興)과 우울이 함께 뒤섞여있어요. 그런 영화들을 많이 보진 못했어요. 아웃사이더적 감성에 우울한 슬픔이 깔려있지만 표현 방식이 흥겹고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있죠. 창작가로서 ‘어떻게 두 에너지가 공존할까?’ 궁금해요. 항상 좋아하는 감독님이고 아직까지 인생 영화라고 꼽는 작품이에요.”

임순례 감독의 말처럼 ‘집시의 시간’은 기본적으로 슬픈 감성을 안고 있지만 밝고 유쾌한 표현 방식으로 풀어나가려 한다. 집시였던 경험을 스크린으로 옮기며 시각적 디테일과 음악에 주목해 눈길을 끌기도 한다. 1989년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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