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酒食雜記] 박수를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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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 칼럼니스트
입력 2018-03-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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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종권 칼럼니스트]


항룡유회(亢龍有悔)라 했다.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은 내려갈 일밖에 없다. 그럼에도 모든 잠룡(潛龍)은 항룡(亢龍)을 추구한다. 직접 겪어봐야 아는 것일까. "젊은이는 쉬이 늙고 배움을 이루기 어려우니, 촌각의 시간도 헛되이 말라"는 주자(朱子)의 가르침도 늙어서야 탄식으로 깨닫는다. 호호탕탕 흘러가던 장강(長江) 물도 바다에 이르러서야 황진이가 왜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고 했는지 가슴 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달도 차면 기운다. 활짝 핀 꽃도 열흘 붉고는 이내 시든다. 정상에 올랐다면 신발끈을 고쳐 매야 한다. 곧 하산해야 하는 것이다. 머물고 싶어도 더는 머물 수 없다. 바위는 굴러 떨어지고 시시포스(Sisyphos)는 계곡으로 내려가야 한다. 각자의 운명이 아니라, 자연법칙이다.

문제는 미련이다. 어쩐지 지금 당장은 아닌 것 같다. 조금 더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박수칠 때 떠나기는 어렵다. ‘커튼 콜’이 계속되면 심안이 흐려진다. 달콤한 착각에 빠진다. 박수는 마약이다. 알면서도 애써 잊는다. 사람은 늘 선택적으로 기억한다. 미련이 남은 게 아니라 미련스러운 것이다.

박수를 조심하라 했다. 과분한 칭찬에는 올가미와 덫이 도사리고 있다. 웃음 뒤에는 번뜩이는 칼이 숨어 있다. 소리장도(笑裏藏刀)이다. 자칫 옴쭉하지 못하고 온몸이 옥죄어질 수 있다. 깨달았을 때는 발 밑이 허공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는 법이다. 높이 올랐다면, 충격도 더 크다.

권력의 민낯은 본디 추한 것일까. 동이 틀 무렵 라스베이거스처럼, 화장이 지워진 거리의 여인처럼. 어쩌면 썩은 단백질을 자양분으로 하는 세균처럼, 부패의 악취 속에서 권력은 성장하는지도 모른다. 그 생존 방식은 ‘비겸(飛箝)의 처세’일 것이다.

비(飛)는 띄운다, 칭찬한다는 뜻이다. 겸(箝)은 쇠사슬로 묶는다, 집게로 꽉 잡는다는 뜻이다. 즉, 사람을 띄워놓고는 꼼짝 못하게 붙잡는 술책이다. 부연하면, 사람의 구미에 맞고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달콤한 말로 은근히 치켜세움으로써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비겸술은 귀곡자가 가르쳤는데, 꽤나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는 아부에 약하다. 아부가 윗사람에 대한 칭찬이라면, 아첨은 비위를 맞춰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다. 비겸술의 대표적인 인물이 진나라 상앙이다. 그는 효공을 만나 처음엔 요순의 제도(帝道)와 성탕의 왕도(王道)를 설파한다. 태평성대를 이룰 비결이자 바탕이다.

그런데 효공은 인의(仁義)의 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러자 힘과 권모술수로 다스리는 패도(覇道)를 건의한다. 구미가 당긴 효공은 크게 만족해 비로소 상앙을 중하게 쓴다. 상대의 의중을 정확히 알고, 민감한 곳을 자극해 기분을 좋게 한 후, 꼼짝없이 자신의 말을 듣게 한 것이다.

이른바 ‘입 속의 혀’를 넘어 ‘뇌 속의 혀’가 되는 것이다. 입 속의 혀는 상대가 원하는 바를 알아서 자유자재로 동시작동한다면, 뇌 속의 혀는 상대로 하여금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유세하는 자의 생각인지, 본디 자신의 생각인지 헷갈리는 경지이다. “내가 이렇게 훌륭한 생각을 하다니” 하는 식으로 자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귀곡자는 말한다. 남에게 비겸을 쓸 때는 그 사람의 지능과 재능, 기세를 파악한 후 그의 측근이 되어 따른다. 일단 상태를 칭찬하는 말로 띄워서 환영하고 따라가다 기회를 봐서 꼼짝 못하게 장악하고, 뜻으로써 친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빈 것을 보내도 실질적인 것이 돌아오는” 비겸술의 요체이다.

즉, 칭찬을 하면 마음이 풀어진 상대는 본심을 드러내면서 결국 자신을 옭아맬 말을 하게 된다. 이를 놓치지 않고 잘 살피면, 그를 꼼짝 못하게 묶어서 동서남북으로 종횡무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재상에 오른 상앙은 자신의 법을 세운다. 소위 ‘상앙변법’이다. 이를 어기면 왕자까지 처벌하면서 서늘하게 위세를 부렸다. 하지만 그의 종말은 사기열전이 전한다. 그도 그가 세운 법에 의해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에 처해진다. 그런 것이다. ‘비겸술’도 마치 각설탕처럼 잠시 단맛을 취할 수는 있지만, 생명력을 연장하는 본원적 에너지는 되지 못한다.

박수를 치는 자도, 박수를 받는 자도 박수에 속기 쉽다. 달뜬 분위기에 취해 상대를 잊고 자신도 잊는다. 칭찬 역시 그렇다. 진심에서 우러난 칭찬은 요란하지 않다. 무대 위에 선 그대, 일거수일투족 충실무진(忠實無眞)할 일이다. 박수에 취하지 마라. 박수는 이내 잦아들고, 그대의 무대도 치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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