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억의 밤' 장항준 감독, 이미지에 반(反)하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최송희 기자
입력 2017-12-04 15:46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영화 '기억의 밤'을 연출한 장항준 감독[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제 이미지의 8할은 예능에서 나온 거예요. ‘저 웃기는 사람이 왜 스릴러를 만들었지?’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점이 (관객들에게) 더 재밌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다르면 더 재밌잖아요?”

다르니 더 재밌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 등 재기발랄한 스토리와 독창적 연출력을 자랑했던 장항준 감독은 자신의 전작 또는 이미지에 반(反)하는 스릴러 장르로 9년 만에 관객과 만나게 됐다.

납치된 후 기억을 잃고 변해버린 형(김무열 분)과 그런 형의 흔적을 쫓다 자신의 기억조차 의심하게 되는 동생(강하늘 분)의 엇갈린 기억 속 살인사건의 진실을 담은 영화는 관객에게 어떤 낯섦을 느끼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영화 ‘기억의 밤’의 만듦새를 예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앞서 몇 편의 드라마로 밀도 높은 서스펜스를 선보인 바 있는 장 감독인 만큼 ‘기억의 밤’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이미 예견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주경제는 최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장항준 감독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오랜만에 대중 앞에 나선 장 감독의 여러 고민과 철학, 작품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영화 '기억의 밤'을 연출한 장항준 감독[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다음은 장항준 감독의 일문일답이다

9년 만의 신작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기쁘기도 하겠지만 부담도 클 텐데

- 심하게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 나이가 먹으면서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갈리더라. 걱정만 늘어가는 사람과 걱정만 해봤다 쓸모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방향을 어느 쪽으로 정하느냐가 나이를 잘 먹는 것으로 생각한다. 저는 후자 쪽이라서 그렇게까지 걱정하거나 조바심내지 않는다.

장 감독의 스릴러 영화라는 점에서 많은 팬이 놀라워했는데
- 제 이미지 때문일 거다. 이미지의 8할은 예능에서 나온 거니까. 그리고 그것들은 제가 만든 이미지니 어쩔 수 없다. 보는 분들이 ‘어? 뭐야? 웃기는 사람이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지?’라고 할 수 있는데 오히려 그런 점이 더 재밌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다. 다르면 재밌지 않나.

‘기억의 밤’의 시작점이 흥미롭다. 신선한 발상이었지만 이것들을 글을 통해 실현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서야 하는데 쓸 수가 없는 거다. 장황한 이야기를 정리하는 데만 한 달 정도 걸렸다. 그러다가 ‘가족을 잃은 남자의 비극적 이야기를 쓰자’고 생각, 방향을 정했다. 어차피 장르는 정해졌고 이걸 말이 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려서 1997년 IMF를 배경으로 가족들의 비극을 구상해나갔다.

“말이 되게 만드는 작업”이 중요했겠다
- 처음에는 대충 최면이라는 설정을 썼는데 나중에 국과수에서 자문을 받다 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더라. 굉장히 놀랐었다. 영화적 설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도 가능하다니. 급속도로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정신분석학자를 만나서 심리 상태를 오래 체크하면서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1년 만에 시나리오를 쓰게 됐고 제작사 대표가 재밌다고 해서 영화를 만들게 된 거다. 창작에는 여러 갈래가 있는테 무에서 유를 만들 때 가장 짜릿하다. 모델이 있는 경우보다 없는 것을 만들 때 신선하고 재밌는 것 같다.

영화 '기억의 밤'을 연출한 장항준 감독[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이번 작품 속, 장 감독만의 인장이 있다면?
- 극 중 유석이 납치되던 차의 번호다. 제가 타던 차의 번호고 급한 순간 빨리 외치고 되뇌기 좋은 숫자다. 딱 떨어지는 숫자거든. 또 극 중 설정과 딱 맞게 1997년도에는 없던 번호판이라서 설정과도 잘 맞았다. 거기다 제가 타던 차라서 분쟁에 휘말리지도 않을 거다. 지금은 가족이 타고 있다. 아마 이건 스태프들도 몰랐을 거다.

유석을 표현할 때 가장 가까운 사람만이 알고 있는 미세한 차이를 그리는 것도 꽤 섬세한 작업이었을 텐데
- 그렇다. 여러 가지를 넣었다가 빼기도 했다. 대표적인 장면이 유석이 다리를 절고 진석이 수상하다고 여기는 장면이었다. 진석이 유석에게 ‘형 왜 반대쪽 다리를 절어?’라고 묻는 장면인데 연출하기가 약간 모호하더라. 잘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또 확실히 수상해서는 안 되고…. 그래서 뺐었는데 누군가 ‘허전하다’며, 그 뒤에 벌어지는 진석의 의심들이 ‘너무 단도직입적’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다시 넣게 됐다.

극 중 유석과 진석 사이의 긴장감이 좋았다. 인물들 사이의 균열을 잘 포착했는데
- 관객이 못 본 부분들을 포착하려고 했다. 영화 초반과 후반에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이 못 본 부분들을 짚어나간 거다. 초반 유석과 이삿짐센터 아저씨의 표정 같은 것들이나 진석이 유석을 미행했을 때 같은 것들.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것들을 담았다. 사건을 재구성할 때도 좋겠다고 생각했고.

[사진=영화 '기억의 밤' 스틸컷]


영화는 시작부터 많은 떡밥을 뿌려놓는데
- 그렇다. 가만히 영화를 보다보면 가족 구성원들이 굉장히 어색하고 독특하다. 가짜 가족들이 연기를 하고 있으니 일부러 연극적인 대사들을 넣었다. 눈치가 빠른 분들이라면 아실 텐데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가 상당히 어색하다. 왜 이 집에는 TV가 없나, 핸드폰을 왜 쓰지 못할까? 여러 가지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모든 궁금증을 작은 방이라는 맥거핀(macguffin, 속임수)을 통해 무마시키려고 했다.

스릴러지만 친절하다는 말이 많았다. 장점이자 단점이었는데
- 스릴러 장르의 마니아들에게는 싱거울 수 있다. 우리가 힌트를 주면 탁탁 풀어내고 싶은데 어느 순간 정답을 줘버리니까. 눈높이를 누구에게 맞추냐의 차이였다. 저는 조금 더 다양한 사람이 볼 수 있기를 바랐다.

현으로 이루어진 영화 음악도 인상 깊었다
- 음악 감독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이 작품이 첫 영화음악이었다. 헝가리에 가서 음악을 만들었는데 전자음악으로 만들었던 음악과 확실히 다르더라.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영화 말미에 삽입된 곡이었다. 유석과 진석의 결말이 담긴 장면에서 나오는 ‘형제를 위한 활츠’라는 곡이다. 비올라가 리드를 하는 곡인데 (비올라가 낼 수 있는 음보다) 너무 높았던 거지. 연주자가 ‘이 높이의 음이라면 바이올린이 낫다. 비올라는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음악 감독은 ‘바이올린이 쉽게 낼 수 있는 음보다는 비올라가 가까스로 높은 음을 내는 것이 더 애절하게 느껴진다’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결국 비올라 연주곡이 담겼고 결과물도 좋았다.

영화 '기억의 밤'을 연출한 장항준 감독[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배우들은 어땠나? “돈 받는 값”을 충분히 했나?
- 그렇다. 하하하.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그렇게 액션이 많은 줄 몰랐을 거다. (강)하늘이가 러닝타임 중 1분을 내내 뛰는데, 극 중 1분은 정말 엄청나게 찍어야 하니까. 미안하게 생각한다. (김)무열이도 고생이 많았다. 다리를 저는 신이 많은데 무리가 많이 갔다더라. 내색을 한 번도 안 해서 아픈 줄도 몰랐다. 말이라도 하지. 하하하.

누군가에게 딱 10분만 영화를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장면을 보여주고 싶나?
- 맨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 보너스트랙 같은 부분. 극 중 가장 밝은 신이기도 하다. 어차피 10분만 봐야 한다면 영화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으니 밝은 장면을 보여주며 작품을 기억하라고 하고 싶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