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맞는 트럼프, 공세적 北 길들이기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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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4-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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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도발 억제 단기효과 있지만 긴장고조 위험 내포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분명히 말하지만,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은 이제 끝났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17일 방한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핵심 당국자들은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가리키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이 끝났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명확히 선을 그은 것이다.

전략적 인내 정책은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는 북한에 대해 점진적으로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면서 북한이 스스로 전략을 바꿀 때까지 기다리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 8년 동안 북한은 무려 4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했고 핵·미사일 기술 수준은 무서운 속도로 높아졌다.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 정책을 고수했지만,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스스로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공세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AP통신은 이를 '최고의 압박과 개입'(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으로 표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적인 대북정책은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이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엄중한 정세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북한은 작년 1월 4차 핵실험에서 수소폭탄의 전(前) 단계인 증폭핵분열탄 시험을 했고 같은 해 6월 괌 미군 기지를 사정권에 두는 무수단 중거리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데 이어 8월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에 성공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준비가 '마감 단계'라고 공언했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핵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기술을 손에 넣는 날을 눈앞에 둔 셈이다.

미국이 북한을 제재로 압박하며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군사옵션'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게 특징이다.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북한이 느낄 위협을 배가하는 전략이다.

틸러슨 장관도 방한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어느 수준을 넘을 경우 '행동'에 나서겠다며 군사옵션을 테이블에 올렸다.

미국은 이달 6일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응징으로 시리아 공군기지에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을 한 데 이어 13일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국가(IS) 근거지에 '폭탄의 어머니'라는 별명의 GBU-43 폭탄을 투하해 군사옵션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트럼프 행정부는 광범위한 파괴력을 갖춘 전략무기도 북한을 상대로 공세적으로 운영하는 양상을 보인다.

한미 양국 군이 지난달 초부터 진행 중인 독수리 훈련 기간 미국은 장거리전략폭격기 B-52를 여러 차례 한반도 상공에 전개했고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CVN 70)와 핵잠수함 콜럼버스함(SSN 762)도 파견했다.

이달 초에는 싱가포르에 있던 칼빈슨호를 갑자기 한반도 해역으로 보낸다고 밝혀 긴장이 고조됐다. 미국이 시리아에 미사일 공격을 한 직후에 내놓은 이 같은 조치는 북한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낳았다.

26일에는 미국이 발사 후 30분이면 평양을 타격할 수 있는 ICBM '미니트맨 3' 발사시험을 한다는 미국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비록 1년전에 예정된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한반도 긴장이 한껏 고조된 시점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적인 대북정책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차원에서는 일단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은 지난달부터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핵실험을 준비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며 긴장 수위를 높였지만, 아직 핵실험을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대형 도발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됐던 김일성 생일(4월 15일)과 군 창건 기념일(4월 25일)도 대체로 조용히 지나갔다.

북한은 군사옵션을 과감하게 쓰는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섣불리 도발할 경우 예상 밖의 응징 조치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수 있다.

그러나 군사옵션을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적인 대북정책을 불안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군사옵션을 쓰겠다고 공언해놓고 북한의 도발에 행동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미국이 '종이 호랑이'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최근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칼빈슨호를 싱가포르에서 한반도 해역으로 급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호주, 인도네시아, 필리핀 해역 등을 거쳐 천천히 이동시켜 논란을 낳았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수사(修辭)에 그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군사옵션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것은 당장 북한을 압박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군사옵션을 쓰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실효성이 떨어지는 위험을 내포한다.

한반도는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리아나 아프가니스탄과는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군사옵션을 내세우는 정책은 불필요하게 긴장을 고조시키는 면도 있다.

이번에도 칼빈슨호가 빙 둘러 한반도 해역으로 이동 중인데도 한반도 주변에서는 일촉즉발의 긴장이 팽배했다. 국내에서는 '4월 북한 폭격설'까지 나돌았다.

남북한의 막대한 군사력이 군사분계선(MDL)에 밀집한 상황에서 긴장이 고조되면 한순간의 오판이 걷잡을 수 없는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한반도 정세의 안정을 유지함과 동시에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포기를 끌어내는 최적의 공조체제를 구축하는 데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동맹관계인 한미 양국의 긴밀한 공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ljglory@yna.co.kr

(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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