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365]5달러를 버린 미국, 1달러를 버린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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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4-1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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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산업부 차장

“1달러를 위해 5달러를 버릴 것이다.”

2001년 미국 최고의 기업 가운데 하나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아홉 번째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GE의 발전 방향을 이렇게 제시했다.

여기서 말하는 1달러와 5달러는 일반 산업(인더스트리)과 금융, 두 사업의 차이를 설명하는 기준이다.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인 미국은 일류 대학을 졸업한 가장 똑똑한 인재들이 월 스트리트에 진출해 자신의 책상 위에 명패를 놓고 일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그러한 미국에서도 국민들은 금융사업으로 번 돈보다는 인더스트리 사업으로 거둔 수익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고 한다. 인더스트리 사업으로 번 1달러의 수익이 금융사업을 통해 번 5달러와 같다는 의미다. 월 스트리트로 향하는 젊은이들만큼이나 실리콘밸리에 뛰어드는 인재들이 많은 이유는 기업가 정신을 존중하고 응원하는 미국인들의 양식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인들 사이에서 친구, 자녀, 친척이 GE에 입사하면 “최고의 기업에 다닌다”는 칭찬을 받을 만큼 GE는 존경받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제는 위대한 기업으로 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GE가 왜 이런 비전을 내놓은 것일까. GE에 따르면, 1달러와 5달러의 차이는 이멜트 회장과 GE에 아주 심각한 고민을 안겨줬다고 한다.

전임 잭 웰치 회장은 화려한 실적과 리더십을 통해 GE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올려놨다. 하지만 웰치 전 회장의 업적은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다. 바로 금융 사업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돈으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인더스트리 사업의 실적을 덮어버린 것이다. 그가 부임했을 때에는 부각되지 않았으나 이멜트 회장이 CEO에 오른 뒤 높은 금융사업 비중은 주식시장에서 GE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주 원인이 됐다.

GE가 금융사업을 시작한 배경은 인더스트리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회사 설립자이자 발명가인 토머스 A. 에디슨은 자신이 개발한 전구를 팔아 큰돈을 벌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전기가 대량 보급되기 전이었다. 발전소를 만들고 전구를 대량생산하는 공장도 GE가 모두 책임져야 했다. 이러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금융사업에 진출했다. 이후 금융사업은 미국 경제발전과 함께하며 성장을 거듭해 GE 총매출의 40%, 수익의 절반을 차지했다.

금융사업은 GE에 안정적인 고수익을 보장해줬다. 하지만 고객과 투자자들은 GE가 위대한 기업으로 거듭나려면, 도전과 창의를 발휘하는 인더스트리 사업에서 성장해주길 희망했다. 고민 끝에 이멜트 회장은 금융사업 비중을 30%대로 줄이면서 역할도 인더스트리 사업을 지원하는 쪽으로 개편했다. 이후 GE는 대대적인 사업 개편을 진행, 현재는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가 결합된 ‘4차 산업혁명형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멜트 회장의 결단은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기업을 인정하고 기업가의 결정을 존중하는 미국인들의 인식 덕분이었다고 본다. GE가 금융사업을 발전시켰다면 주주들은 더 많은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GE에 인더스트리 사업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고, 금융사업 축소를 지지했다. 이러한 국민적 공감대는 미국 산업이 발전하는 주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한국기업이 1달러를 위해 5달러를 버리는 것과 같은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국내 분위기상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지난 수십년간 대우조선해양이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로와 부가가치는 무시한 채, 나라 경제를 망친 주범이라며 대우조선해양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숫자로만 회사를 평가하는 금융기관들의 난도질 때문이다.

이러한 평가가 여론에 먹히는 것은 기업에 대한 반감이 큰 국민정서도 한몫했다. 삼성전자가 9조4000억원대에 미국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하자, 인수금액만큼을 국내에 투자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나라가 한국이다. 대선후보들조차 대기업을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세금 탈루, 사익편취의 주범으로 보고 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한국은 5달러를 위해 계속 1달러를 버리고 있다. 1달러를 버린 후유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날 것이다. 그때 가서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애정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사실만 봐달라.” 기업인들의 요즘 하소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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