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원전이 오랜 세월 전기를 생산하는 동안 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은 국가 전력 공급에 기여해 왔다. 동시에 원전과 이웃하며 살아가는 데 따르는 부담과 불안도 감당했다. 이제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이라는 또 하나의 문제가 지역 주민들 앞에 놓여 있다.
시설의 필요성만 놓고 보면 답은 분명하다. 원전에서 사용한 핵연료는 발전이 끝난 뒤에도 장기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현재 원전 안에 있는 습식저장조에는 용량의 한계가 있다. 건식저장은 충분히 냉각한 사용후핵연료를 저장 용기에 넣어 공기로 열을 식히며 관리하는 방식이다. 중간저장시설이나 최종 처분시설이 마련될 때까지 필요한 현실적 대안이다.
문제는 기술보다 신뢰다. 지역 주민들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정말 안전한가. 얼마나 저장할 것인가. 언제까지 둘 것인가. 임시 시설이 사실상 영구 시설이 되는 것은 아닌가. 나중에는 어디로 옮길 것인가. 그리고 왜 그 부담을 다시 지역이 져야 하는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은 채 '국가적으로 필요한 시설'이라고 말하는 순간 갈등은 시작된다. 필요성은 사업을 추진할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주민 동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안전과 지원을 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관행도 경계해야 한다. 안전은 과학과 규제의 문제다. 지역 지원은 국가를 위해 특정 지역이 감당해 온 부담을 어떻게 공정하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다. 지원금이 안전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는 대가처럼 보이는 순간 정책은 신뢰를 잃는다.
지원금의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얼마를 지원했는가'보다 '주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물어야 한다. 의료와 돌봄, 교육, 일자리, 지역의 장기적인 발전 기반으로 이어져야 한다. 돈을 쓰는 것과 지역이 좋아지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의견 수렴 과정의 내실화이다. 설명회와 토론회가 시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쟁점을 논의했다면 공청회는 주민들이 제기한 다양한 의견을 다루고 주요 관심사항에 대한 이해를 높여 주민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주민이 낸 의견 가운데 무엇을 받아들였고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공개해야 한다. 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면 언제,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답할 것인지 밝히면 된다.
진정한 의견 수렴에는 한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하다. 주민 의견에 따라 계획이 실제로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정해진 결론을 설명하는 데 그치기보다 주민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검토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반대 의견을 사업 추진의 장애물로 보는 시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자신의 삶과 지역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시설에 대해 질문하고 의심하는 것은 주민의 당연한 권리다. 불편한 질문을 피할수록 소문은 커지고 정보를 감출수록 불신은 깊어진다. 갈등을 없애려 하기보다 갈등을 공개적으로 다루는 편이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
건식저장시설은 원전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원전이 생산한 전기는 전 국민이 사용해 왔다. 그렇다면 사용후핵연료를 관리하는 책임 역시 우리 사회가 함께 져야 한다. 혜택은 전국이 누리고 부담은 특정 지역에만 전가하는 구조로는 어떤 정책도 성공하기 어렵다.
그래서 건식저장시설 논의와 관련한 첫 질문은 '주민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와 사업자는 주민의 질문에 얼마나 제대로 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것이 먼저다.
사회적 합의는 찬성을 이끌어내는 기술이 아니다. 안전은 타협하지 않고, 약속은 제도로 지키며, 부담에는 책임으로 답하는 과정이다. 건식저장시설의 해법은 주민을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결정의 당사자로 대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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