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렬의 인사이트] 3500억달러짜리 동맹…부작용은 한국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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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렬 전 대사: 필명 이창천]

 
고대 아테네에서는 재앙이 닥치면 희생양을 바쳐 악귀를 몰아냈다. 희생양은 양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리스어로 파르마코스(pharmakos)다. 아테네인들은 불한당 몇 명을 도시 안에 가둬 두었다가 재앙이 닥치면 성벽 밖으로 끌어내 죽였다. 시민들은 위안을 얻었고 도시는 정화되었다. 그런데 바깥의 악귀로 지목된 그들은 처음부터 도시 안에 살던 자들이었다. 아테네인들이 세금으로 먹여 살린 인간들이었다. 바깥으로 내몰리기 위해서 그들은 이미 안에 있어야 했다. 누가 성벽 안에 남고, 누가 추방당하는지는 권력을 쥔 자들이 결정했다.
 
자크 데리다가 '플라톤의 약국'이라는 논문에서 살펴본 것도 이 안과 밖의 경계다. 파르마코스는 저주받은 자이면서 시민을 구원하는 희생양이다. 비슷한 어휘인 파르마콘(pharmakon)은 약이라는 뜻과 독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얼마만큼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되고 독이 된다. 한·미 동맹이 파르마콘이다. 한국의 안보를 지켜 주던 동맹이 한국의 재산과 자율성을 빼앗는 수단으로 작동한다면 더는 약이라 할 수 없다. 미국이 국제규칙을 허물고 동맹국을 약탈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약병의 내용물을 살펴야 한다.
 
한·미 동맹이 과거에 약이었던 사실을 부정할 것까지는 없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군사력은 조선의 공격을 억제하는 데 기여했고, 미국의 원조와 시장도 한국의 산업화에 도움이 됐다. 그러나 산업화를 이룬 주역은 한국의 노동자와 기업, 국가의 산업정책이다. 미국도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면서 동아시아에서 크나 큰 전략적 이익을 얻었다. 그 교환이 성립하는 동안 동맹은 유용했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을 대중국 군사전략의 전진기지로 취급하고 미국 내 투자자금의 공급처로 보기 시작한 지금도 과거의 이해관계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믿을 수는 없다. 동맹은 일방의 시혜가 아니고 미국에 갚아야 할 영원한 은혜의 빚도 아니다.
 
시큐리티(security), 곧 안보의 본질은 내 것을 내가 지켜 내는 것이다. 국가가 지켜야 할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주권이다. 이를 위해 이웃 나라와 동맹을 맺을 수 있지만 동맹을 맺었다 해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주인이나 식민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미국의 국익을, 한국은 한국의 국익을 지키는 것이 독립국들의 협력이다. 이해가 겹치면 손을 잡고 충돌하면 주고받을 일이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자기 이익을 한국의 의무로 만들고 거절하면 더 큰 수탈로 협박하고 있다. 내 것을 지키려던 시큐리티가 동맹의 이름으로 위험에 처해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자유무역과 국제규칙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다른 나라에 시장을 개방하라고 요구했고 WTO의 규칙을 지키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2019년 WTO 상소기구 위원 선임을 막아 분쟁해결 기능을 마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후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를 무기 삼아 교역 상대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패권을 뒷받침할 때는 지키라던 규칙을 자국에 부담이 되자 걷어차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통상분쟁이 아니다. 국제경제질서를 만든 나라가 먼저 세계질서를 파괴하고 파괴가 초래하는 손실을 동맹국에 청구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청구서를 받아들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미국은 한·미 FTA가 있는데도 한국 상품에 추가 관세를 위협했고, 한국은 이를 낮추기 위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구상에 굴욕적으로 합의했다. 이 중 2000억 달러는 전략산업 투자로 정부 재정으로 투입해야 하는 현금이다. 일본이나 유럽은 미국의 터무니없는 압력에 지혜롭게 대처했다. 일본의 5500억 달러 투자 약속은 단 1~2%만이 현금 투자이고 나머지는 전부 대출이나 보증이다. 유럽은 민간 업체들의 대미 투자 의향을 합산한 수치에 불과할 뿐이어서 약속이라 칭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한국을 완전한 ‘봉’으로 잡은 미국은 지금 기세를 올리며 더욱 수탈을 몰아치고 있다.
 
트럼프는 10월 1일 한국의 돈을 자기 것처럼 발표했다. 한국이 알래스카 LNG 사업에 투자하고,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도 건설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알래스카 LNG에 투자하기로 합의한 사실은 전혀 없다. 한국이 말한 것은 사업의 상업적 합리성과 국내법상 요건을 따져보고 참여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었을 뿐이다. 상무장관 러트닉은 금액까지 500억 달러 이상이라고 못 박았다. 원전 8기 사업도 이미 모든 조건이 확정된 사업은 아니다. 같은 날 김성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마저 “국회와 국민을 속인 이재명 정부의 외교참사”라고 비판했다. 외교참사 맞다. 관세협상 때 제대로 버텼어야 했다. 굴종의 결과는 늘 참사인 법이다.
 
미국은 알래스카 사업에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의 대중국 봉쇄정책은 한국의 이익과 충돌한다. 미국은 첨단 장비의 중국 반입을 규제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대한 기존 승인 특례를 철회했다. 9월 말 존 물레나르 하원의원은 한국의 대중국 외교와 반도체 투자를 감시하라고 국무부에 요구했다. 미국에 한국은 미국의 허락을 받고 중국과 정상외교를 해야 하고, 미국의 대중국 봉쇄정책에 국가의 외교와 경제를 통째로 내맡겨야 하는 나라다.
 
미국의 2026년 국방전략(NDS)은 조선 억제의 주된 책임을 한국이 지고 미국은 중국 견제를 비롯한 미국의 광역 작전에 주한미군을 활용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2004년 미국은 이라크 전선에 주한미군 병력 3600명을 투입한 적이 있다. 대만해협에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상황이 되면 주한미군이 그곳으로 출동한다. 아울러 미국은 한국을 아태 전구(theater)의 병참기지로 만든다는 구상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미국의 전진기지요 병참기지인 한국을 중국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미·중 무력충돌 상황이라면 중국은 미군 출동거점을 선제적으로 파괴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총알받이가 된다. 그래도 한·미 동맹은 여전히 약인가.
 
더 심각한 것은 미국의 요구를 한국 안에서 앞장서 옹호하는 숭미세력이다. 그들에게 미국의 이익은 곧 국익이다. 대미 투자는 상업적 합리성 여하를 떠나 동맹의 신뢰를 위해 감수해야 한다. 중국과의 거래는 친중이고, 조선과의 대화 노력은 종북이다. 미국이 조금이라도 불만 섞인 언사를 발설하면 한·미 동맹이 붕괴한다고 아우성친다. 10월 13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 간 관계에 있어 굴종적 태도나 사대적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하자 숭미 언론들은 이튿날 일제히 한·미 동맹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사설과 기사로 지면을 덮지 않았나. 미국은 뒷짐을 쥐고 미소를 머금은 채 한국 내 대결을 지켜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이익을 취하면 된다.
 
다시 아테네의 파르마코스를 떠올린다. 한국의 국익을 지키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맹을 해치는 아웃사이더로 내몰리고 있다. 국익과 주권을 위해 미국의 관세와 군사정책을 비판하면 반미라는 딱지가 붙어 희생양으로 제단에 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으로 제단에 오를 자들은 한국의 주권을 주장하는 국민이 아니라 미국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한·미 동맹을 우리 헌법 위에 위치시키는 사람들이 아닐까. 과복 후에 일제강점기 때 ‘내선일체’와 ‘황국신민’을 외친 자들이 아니라 항일 독립투쟁에 일생을 바친 영웅들이 파르마코스의 제단에 올라갔기 때문에 지금 숭미세력이 발호해 자주인들을 핍박하고 있는 형국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1944년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을 낸 칼 폴라니는 시장의 수레바퀴 아래 깔린 사람들이 스스로 보호장치를 만들지 못하면 결국 압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제경제의 규칙을 만든 미국이 반시장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규칙을 허물고 동맹국을 수탈하고 있다면 한국은 당연히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무리한 대미 투자는 거절하고 관세 압박에는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리 의사에 반해 한국이 미·중 충돌의 희생이 될 가능성도 사전에 차단할 일이다. 우리보다 카드가 빈약한 캐나다와 스페인조차 트럼프의 무도한 압박에 맞서 당당히 투쟁하고 있지 않은가. 항일 독립투쟁을 포기했다면 한국은 일본에 흡수되지 않았을까.
 
한·미 동맹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지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 약이었던 동맹이 미국의 약탈적 정책 속에서 독으로 변하고 있다면 처방부터 바꿔야 한다. 미국에 무조건 반대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손해가 되는 요구는 단호하게 거절하자는 것이다. 국내 숭미세력이 미국의 청구서를 애국의 이름으로 떠받드는 현실도 끝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자주노선을 더욱 선명하게 해야 한다. 국익이라면 미국의 기본정책에 어긋나게 생각하고 행동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진짜 대한민국을 세우는 유일한 길이다.

필자 소개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지금은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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