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만나 유럽연합(EU)의 전기차 보조금 등 지원 대상에 일본산 차량을 포함해 줄 것을 요청했다. 독일과 프랑스가 역내 생산 차량을 우대하는 방안에 합의하면서 일본산 전기차가 보조금 등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메르츠 총리는 29일 방한해 이재명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인 가운데 해당 문제가 논의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29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두 정상은 전날 도쿄 총리관저에서 회담하고 안보·경제안보·첨단기술 협력을 위한 공동문서 3건을 발표했다. 경제안보 공동선언에는 희토류 등 핵심 원자재와 전기차·의약품의 공급망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중요 광물은 재활용·비축 협력을 통해 중국 등 특정국 의존도를 낮추기로 했다. 메르츠 총리는 일본·영국·이탈리아가 공동 개발하는 차세대 전투기(GCAP) 참여에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메르츠 총리의 방일은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처음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일본산 전기차의 유럽 시장 판로 문제도 제기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EU의 전기차 지원 대상에 일본산도 포함하도록 요건을 수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EU 집행위원회가 지난 3월 발표한 산업가속화법(IAA) 초안에는 전기차에 보조금이나 공적 지원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역내 조립과 부품 생산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독일은 프랑스와 함께 '역내'의 범위를 정하는 합의를 주도한 당사자다.
일본 자동차업계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유럽 자동차 판매의 약 60%를 차지하는 법인차 시장이다. 유럽에는 기업이 급여의 일부로 직원에게 '컴퍼니카'로 불리는 리스 차량을 제공하는 관행이 있다. 세제 혜택과 구매 보조금이 적용되는 이 시장은 일본 업체들의 주요 판매 통로이기도 하다. 일본산 전기차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판매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영국을 포함한 토요타의 유럽 판매량 가운데 전기차는 5만 대 이상으로 약 5%를 차지한다. 2028년 체코 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지만 현재는 유럽에서 판매하는 전기차를 주로 일본에서 수출하고 있다. 닛케이는 2030년대 유럽 자동차 시장의 90% 이상이 전기차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고 전했다. 현재 전기차 판매 비중은 작지만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면 앞으로 유럽 사업을 확대하는 데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일본 업계는 유럽에서 쌓아온 생산·고용 기반도 강조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1960년대 유럽 수출을 시작한 뒤 현지 생산망을 확대해 약 17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나카타 요시히로 토요타 유럽법인 최고경영자(CEO)는 "토요타는 유럽의 '손님'이 아니다"라며 "유럽 자동차산업의 중요한 기여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의 사전 설득은 독·프 합의에 반영되지 않았다.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산업상은 지난 5월 EU 산업전략을 담당하는 스테판 세주르네 수석부집행위원장에게 법안 수정을 요청했다. 다카이치 총리도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게 일본차 배제 우려를 전달했다.
그럼에도 이달 독·프 합의에서 일본이 빠지자 이번에는 메르츠 총리에게 수정을 요청한 것이다. 닛케이는 토요타 외 일본 업체들의 유럽 판매 규모가 작아 업계가 한목소리를 내지 못한 점도 과제로 꼽았다.
법안을 수정하려면 프랑스도 설득해야 한다. 닛케이에 따르면 '유럽산' 우대를 특히 강하게 요구한 쪽은 프랑스다. 르노 등 프랑스 자동차업계가 독일 업체보다 유럽 내수시장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EU 집행위원회·유럽의회·EU 이사회는 앞으로 최종 법안을 마련하기 위한 협의를 본격화한다. 일본은 독·프를 비롯한 회원국 정부와 유럽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을 강화할 방침이다. 닛케이는 일본산 전기차 배제가 확정되면 공급망을 둘러싼 일본과 EU의 협력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메르츠 총리는 29일 한국을 방문해 이재명 대통령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한국산 전기차도 독·프 합의에서 빠진 만큼 한·독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논의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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